삼성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 반대한 엘리엇 매니지먼트와의 50여일에 걸친 공방 끝에 완승을 거뒀다. 박빙의 승부가 될 것이라던 17일 주주총회에서 70%에 달하는 압도적 찬성표를 얻어 합병 안을 통과시켰다. 소액주주 대다수가 찬성했고 반대 기류가 예상됐던 외국인 투자자마저 일부는 삼성 측 손을 들어준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의 엘리엇 가처분 신청 기각, 국민연금 합병 찬성, 전 방위적 주주 설득과 홍보에 나선 삼성 막판 공세가 효과를 거둔 것이 분수령이 됐다.
결과는 싱거웠지만 두 달간 삼성 측과 엘리엇은 피 말리는 공방을 이어갔다. 삼성 측은 지난 5월 26일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안을 발표했다. 6월 4일 엘리엇이 삼성물산 지분 7.12%를 취득했다고 공시하고 합병 반대 의사를 개진하면서 양측 갈등은 점화됐다.
엘리엇은 합병비율(삼성물산 1주당 제일모직 0.35주)이 불공정하다며 제동을 걸었다. 삼성물산에 현물배당을 위한 정관 개정을 요구했고 삼성물산 대주주인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삼성 계열사에 합병 반대를 권고했다. 법원에 삼성물산을 상대로 주주총회 통지 및 결의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며 압박수위를 높였다.
삼성물산은 자사주 5.76%를 KCC에 전량 매각하고 백기사를 확보하며 반격에 나섰다. 엘리엇은 다시 자사주 매각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지만 법원이 기각하면서 삼성은 첫 번째 승기를 잡았다.
주주총회가 성사되면서 양 측 우호지분확보 경쟁은 최고조로 치달았다. 단일주주로는 최대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면서 승세는 급격히 삼성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엘리엇은 세계 최대 주주총회 의결권자문 기구인 ISS가 합병반대 의견을 내면서 압박수위를 높였다. 하지만 삼성 측은 이미 국내 기관투자자 및 소액주주 상당수를 우호세력으로 확보하며 승세 굳히기에 들어갔다.
양측은 막판 감성에 호소하는 선전까지 불사하며 소액주주 표심 잡기에 총력을 쏟았다. 삼성 측은 승리뿐만 아니라 격차를 벌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압도적 표차로 합병 안이 가결되면 주총 이후 엘리엇의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운용암 삼성증권 사장은 15일 기자들과 만나 “엘리엇 공세는 이제 시작”이라면서 “첫 번째 게임을 강하게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삼성은 100여개 일간지에 광고를 게재하고 1000주 이상 보유한 주주를 직접 만나며 합병 당위성을 전달했다. 해외 자본 국내 기업 경영권 침해 이슈가 부상하면서 여론에서도 우위를 점했다. 광고 이후 위임 문의전화가 갑절로 늘었고 대다수가 위임 의사를 전달했다.
엘리엇도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인 폴 엘리엇 싱어 회장을 직접 전면에 내세워 여론전에 나섰다. 폴 싱어 회장은 2002년 월드컵 기간에 붉은악마 복장을 한 채로 한국 대 독일전 당시 한국을 응원했다며 당시 찍은 사진까지 공개했다.
양 측 우호지분 확보경쟁이 정점으로 치달으면서 박빙의 결과를 예상하는 관측이 우세했지만 뚜껑을 열자 대다수 주주가 합병 찬성 의사를 밝히면서 승부는 일단락됐다. 엘리엇은 후속 대응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양측 대립이 2라운드로 접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주주총회에서 삼성은 애국심 마케팅과 대기업 경영권 방어 이슈 등을 잘 활용해 엘리엇 공세를 막아냈다”면서 “삼성이 여론전에서 승리하면서 소액주주의 찬성표를 결집시켰다”고 말했다.
[표] 제일모직 삼성물산 합병 관련 주요 일지
5. 26 제일모직-삼성물산 이사회. 합병 결의 및 공시
6.4 엘리엇, 삼성물산 지분 7.12% 취득 공시
6.5 엘리엇, 합병 반대 의사 개진 및 국민연금 등 주주에 합병 반대 촉구 서한
6.9 엘리엇, 삼성물산 주총결의금지 가처분 신청
6.10 삼성물산, KCC에 자사주 전량 매각하고 우호지분 확보
6.11 주주확정 기준일
6.12-16 삼성물산 주주명부 폐쇄 기간
6.18 공정위, 제일모직, 삼성물산 기업결합 승인
6.30 제일모직, 주주친화책 발표
7.1 법원, 엘리엇 주총결의금지 가처분 신청 기각, 삼성바이오, 사업설명회 개최
7.2~16 반대주주 의사 접수
7.3 엘리엇, 주총결의금지 가처분 기각에 항고
7.4 ISS, 합병 반대 권고 의견서 발표
7,7 법원, 엘리엇의 삼성물산 자사주매각금지 가처분 신청 기각
7.10 국민연금 투자위원회 개최, 합병 찬성 의견 방침
7.13 주총결의금지 가처분신청 항고심 심문기일
7.17 제일모직-삼성물산 임시주총 합병안 가결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기간
최호기자 snoop@etnews.com
-
최호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