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내년부터 적용될 세계무역기구(WTO) 정보기술협정(ITA) 무관세 품목 협상에서 우리나라 주력 수출품인 LCD·OLED·이차전지 등이 빠졌다.
정부와 업계의 지난한 노력이 있었지만 자국시장 장악을 두려워한 중국의 방어 장벽을 넘지 못했다. 우리로선 세계 1위 품질과 기술자신감에 무관세 혜택까지 누릴 수 있는 기회였지만 아쉽게 됐다.
하지만 이번 결정이 우리 LCD·OLED·이차전지산업에 차별적 조치가 아니기 때문에 좌절할 일도 결코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아직까지는 중국, 일본에 비해 기술 우위에 있음을 국제적으로 공인 받은 측면도 있다.
결국,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등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기술집약적 첨단품목은 수출 때 관세로서 시장경쟁 우열이 가려지는 품목이 아니다. 관세가 붙어 더 비싸지더라도 브랜드와 품질로서 선택 받아온 그간의 경험이 이를 잘 말해준다. 이번 품목결정에 미국과 중국 정상의 공감이 큰 역할을 했듯이, 앞으로 세계시장은 미국·중국 주도로 형성되고 커나갈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관세’는 종속변수는 될지언정 핵심변수는 되지 않는다. 조그마한 기술 혁신이 제품 전체의 부가가치에 획기적 기여를 하는 것처럼 앞으로의 승부는 관세가 아닌 기술과 품질에서 갈린다.
세계 최고의 ICT 제조업 기술력을 갖춘 우리가, 국제사회 관세 품목협정에서 일희일비하지 말고 더 빠른 혁신과 제조 패러다임 전환, 원가경쟁력 확보에 매진해야 할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역으로 우리나라 시장에 무관세로 들어오게 될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장비, 자기공명영상(MRI) 장치, MCO(Multi-Component IC) 반도체 분야에서 전면 경쟁할 수 있는 기술기반을 갖추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이제 어느 국가든 폐쇄적으로 관세를 무기로 제품 유입을 막을 수는 없다. 더구나 소비자는 가격보다 기술과 품질, 디자인에 끌려 제품을 선택한다. 세계시장 관세 철폐에 대비한 더 혹독한 기술혁신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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