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정 분야에서 세계 4위권에 올라있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원장 신용현)이 ‘트리거링(기폭제) 신측정기술’ 개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세계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측정 난제를 풀어 미래 신산업을 위한 주춧돌을 놓겠다는 것이다. 한계에 봉착한 기술을 타고 넘을 시기는 ‘바로 지금’이라고 판단했다.
표준연은 먼저 측정기술 전 분야에서 1800개 기술을 취합했다. 이 가운데 68개 후보군을 도출한 뒤 산업체 수요조사와 전문가 의견을 모아 핵심 분야 세 개를 선정했다. 세 개 분야는 인간중심 정보기술(IT)과 미래의료, 첨단소재다. 모두 한계기술을 넘어서면 사회경제적 파급력이 클 것으로 예측되는 기술이다.
전자신문은 ‘창조경제 R&D·사업화 현장을 찾아서’ 기획 일환으로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추진 중인 트리거링 신측정기술을 3회에 걸쳐 조명한다.
인간중심 IT
표준연은 인간중심 IT 분야에서 핫이슈로 주목받고 있는 복합자유곡면 측정, 플렉시블 다층막 나노구조 측정, 내외부 형상 동시측정 과제를 트리거링 신측정기술로 선정했다. 모두 해결되지 않은 측정 난제다.
오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기초원천을 개발하는 1단계 사업으로 총 140억원이 투입될 것으로 예측했다. 또 2018년부터 2021년까지 3년간 2단계 실증 및 응용단계에서는 17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복합자유곡면 기술은 자유곡면 위에 나노패턴이 복합된 광소자 개발이 핵심이다. 전문가는 장차 이 소자가 기존 광학부품을 대체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소자 하나면 렌즈 여러 장과 회절소자 기능을 대신할 수 있다.
복합자유곡면 광소자는 기존 광학계로는 불가능한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 기존 구글 안경에 홀로그램 기능을 가진 나노패턴을 복합하면, 디스플레이 없이 안경 하나만으로 3D입체영상을 볼 수 있다. 영화 ‘아이언맨’이나 웹툰 ‘덴마’에서 보여지는 3차원 가상 전화통화가 현실이 되는 것이다.
고령자 다초점 인공수정체나, 도로 폭에 조명을 정확하게 맞춘 에너지 절감형 차세대 LED 조명광학계도 모두 복합자유곡면 측정기술이 필요하다. 최근 선보인 곡면 TV를 넘어 3D기능을 갖춘 차세대 디스플레이 산업을 꽃피우려면 대면적 복합자유곡면 측정기술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광학소자 이외에도 자유곡면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기술은 잠수함 프로펠러나 고부가 선박 형상, 고급 스포츠카 외관 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세계적으로 자유곡면 측정 연구가 본격화한 것은 최근 3년 전부터다. 자유곡면보다 한발 더 나간 복합자유곡면은 아직 뚜렷한 선도기관이 없지만, 선진국에서는 이에 대한 중요성과 파급력을 인지하고 기술개발에 착수했다.
미국은 2012년 말 국가주도로 로체스터 대학과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 자유곡면측정센터를 지정해 연구역량과 펀드를 집중하고 있다.
중국은 2013년부터 칭화대를 중심으로 자유곡면 연구에 들어갔다. 독일이나 네덜란드 등도 필립스 등 사기업을 중심으로 펀드를 조성해 아인트호벤 대학 등이 연구 중이다.
국내에서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지난 2013년부터 자유곡면 측정을 위해 새로운 개념의 미분간섭계를 개발 중이다. 현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과 공동 연구 및 공동논문도 발표했다. 하지만 복합자유곡면 연구는 아직 손대지 못한 분야다. 연구가 시급하다는 것이 과학기술계 중론이다.
플렉시블 다층막 나노구조 특정 기술 개발 분야에서는 궁극적으로 10층 이상 플렉시블 다층막 내부 나노구조물 측정기술과 나노스케일 광소자 측정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정밀도는 1㎚급이다. 이 측정기술은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나 피복형 웨어러블, 미래형 군복 등에 활용된다.
이밖에 내외부 형상 동시 측정기술 분야에서는 1㎛ 정밀도 광단층 영상 촬영기술 기반 고정밀 내외부 동시측정기술과 고초점 현미경 기술 기반 고정밀 내외부 동시측정기술 개발이 최종 목표다.
이혁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우주광학센터 책임연구원은 “삼성이나 LG 등이 매년 5억대씩 판매하는 국산 휴대폰 카메라로 다양한 기능을 구현하려면 렌즈가 자유곡면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우리는 핵심기술이 없다”며 “1~2㎜짜리 렌즈를 자유곡면으로 깎는 핵심이 바로 측정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이윤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산업측정표준본부장
“실제 산업화에서 가장 필요한 건 원천기술 개발입니다. 단순한 응용기술 몇 개 개발했다고 창조경제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이윤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산업측정표준본부장이 측정 분야 원천기술 개발 필요성을 적극 강조하고 나섰다. 지금이 골든타임이라는 판단에서다.
“우리나라는 일부분에서 세계 최고입니다. 출연연은 기반 기술이고, 표준 분야 랭킹은 세계 4위지만 산업체가 필요로 하는 측정기술은 좀 답답한 실정입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반도체를 만들어도, 측정기기는 수입해 쓰는 형편입니다.”
이 본부장은 현 상황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한계를 넘어설 트리거링 신측정기술 개발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지금 못하면, 영원히 뒤처집니다. 첨단산업에 쓰이는 한계기술이 모두 측정기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산업 전반이 퀀텀점프하려면 반드시 한계를 뛰어넘는, 기폭제 같은 측정기술이 있어야 합니다. 측정기술은 모든 산업 기반기술이기 때문입니다.”
이 본부장은 표준연이 개발하려는 9대 트리거링 신측정기술 분야 세계시장 규모를 오는 2022년 11조원, 오는 2031년께는 50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