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직업병조정위 "삼성전자 1천억 기부, 공익법인 꾸려 보상해야"

삼성전자 반도체 직업병 조정위원회가 삼성전자에 사회공헌금 1000억원 기부를 23일 제안했다. 별도 공익법인을 설립해 기부금으로 피해 근로자를 개별 보상할 것을 권고했다.

조정위가 추천한 공익법인 대상자로는 친노동계 성향 단체가 상당수 포함돼 논란이 예상된다. 반도체 생산라인과 화학물질을 공익법인에 무작위로 공개하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핵심기술 누출도 우려된다. 해당 권고안은 양 측에서 10일 내 이의 신청을 하지 않으면 수용한 것으로 간주한다.

조정위원회(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는 23일 서울 충정로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이 같은 내용의 조정권고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5월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가 피해 노동자 가족에게 사과하고 보상과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한지 약 1년 만에 내린 결정이다.

◇조정위, 공익법인 설립하라

조정위는 △삼성전자가 기부금 1000억원을 내고 △이를 피해자 보상과 재발방지 대책 등에 집행하는 공익법인을 설립할 것을 권고했다.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반도체 기업이 속한 한국반도체산업협회도 소정의 사회기부금을 내고 동참할 것을 제안했다. 공익법인 참여 대상으로 대한변호사협회, 한국법학교수회, 경실련, 참여연대, 산업보건학회, 한국안전학회, 대한직업환경의학회를 추천했다.

조정위는 보상대상자 기준을 2011년 1월 1일 이전부터 근무해 최소 1년 이상 재직한 종사자로 정했다. 질환범위는 백혈병, 림프종, 다발성골수종, 골수이형성증, 재생불량성 빈혈, 유방암, 뇌종양, 생식질환(불임, 유산), 차세대 질환(선천성 기형, 소아암), 희귀질환, 희귀암, 난소암 등 12가지로 해석했다. 이를 1~3군으로 나눠 최소 근무기간 1년, 최대 잠복기간 14년에 속하는 대상자를 보상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사망자 유족에게는 1000일분의 평균 임금 상당액을 별도 위로 보상금으로 지급하는 것도 포함했다.

◇반도체 화학물질 수시로 공개하라

조정위는 삼성전자가 내부 재해관리 시스템을 강화하고 공익법인 내 3명 이상 옴부즈만이 이를 확인·점검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기존 삼성전자가 제안한 내부 재해관리 시스템 강화 방안보다 수위를 한 단계 높인 셈이다. 조정위는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모든 화학제품을 수시로 무작위 샘플링 조사하고 중대한 유해 요인이 포함됐는지 검증하는 작업을 내부 보건관리팀이 수행토록 제시했다.

공유정옥 반올림 간사는 “당초 조정위가 목표한 사과, 보상, 재발방지 대책이 상당히 상세하고 종합적으로 담겨 있어 인상적이었다”며 “구체적으로 권고안을 살핀 뒤 기간 내에 입장을 표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생산라인 및 원부자재 가공 핵심기술 누출 우려

이 같은 권고안은 삼성전자 반도체 제조 공정 핵심인 각종 원재료 공개를 의미하는 것이어서 영업비밀 누출이라는 치명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공익법인에 반도체 생산라인 및 과정을 전부 공개하는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반도체 업계는 생산라인 및 제조과정에 들어가는 각종 원부자재 등을 철저하게 비밀로 관리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조정권고안 일부 항목은 수용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권고안 핵심 중 하나인 공익법인 설립을 위한 추천단체에 친노동계 성향 단체가 대부분이어서 여러 산업계 입장을 담기 어렵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측은 “가족의 아픔을 조속히 해결한다는 기본 취지에 입각해 신중히 검토하겠다”며 “그러나 여러 차례에 걸쳐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힌 내용이 포함돼 있어 고민되는 게 사실”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