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이스라엘 공군 전투기는 시리아가 비밀리에 건설하고 있던 핵 활동 의심시설을 파괴했다.
파괴된 건물 잔해에서 채취한 환경 시료를 분석한 결과, 자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우라늄 동위원소비를 가진 미세입자가 확인됐다. 이 시설이 핵실험과 관련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였다.
시리아는 진상규명을 위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추가 사찰요구를 거절했다. 이스라엘에 보복공격도 하지 않았다.
지난달 14일 이란은 국제사회로부터 핵개발 의혹을 받고 있는 군사시설의 IAEA 핵사찰을 수용하기로 했다. 2002년 이란 우라늄 농축시설 존재가 폭로되면서 시작된 이란 핵위기가 외교적 협상을 통해 종결되는 순간이었다.
핵사찰 결과에 특별한 이상이 없다면 내년부터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 경제제재는 해제된다.
이처럼 핵사찰은 핵활동 정보를 제공해 핵확산을 억제하고 이와 관련한 증거를 명확하게 제시함으로써 국가 간 분쟁이 확대되는 것을 방지한다.
국제사회는 핵물질을 평화적으로 사용하기로 약속하고 핵사찰을 수용한 국가에는 필요한 핵물질과 기술, 장비 등을 공급한다. IAEA는 핵사찰을 수용한 국가로부터 수집한 사찰시료를 관할 실험실에서 직접 분석하고 시료를 미국·프랑스 등 원자력 선진국에 위치한 사찰시료 분석실로 보내 분석을 위탁한다. 단 사찰시료 출처와 관련한 정보는 분석기관에 제공하지 않는다.
최근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정부의 지속적 지원에 힘입어 IAEA로부터 핵사찰시료 분석 핵심기술인 ‘입자분석 분야’에서 사찰시료 분석실험실로 승인 받았다. 2012년 이미 총량분석 분야에서 승인을 받아 시료를 분석하고 있어 한국원자력연구원은 두 분야 분석을 동시에 수행하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기관에 포함됐다.
우리나라는 핵사찰 활동을 보다 확대함으로써 핵확산을 억제하려는 국제사회 노력에 일조하게 된 것이다.
사찰시료 입자분석은 정교하고 난이도가 높은 과정을 거치지만 시료는 단순한 먼지입자 형태다. 그 결과로 얻는 정보력은 엄청나다. 국가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IAEA는 분석기술 승인과정에서 해당 분석실험실 기술력을 철저하게 검증하고 있다.
사찰시료 분석기술은 매우 민감한 기술로 우방국 간에도 세부적인 기술을 공유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번 승인은 우리나라 사찰시료 분석기술 우수성을 당당히 입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국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다양한 핵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상용 원전과 연구로용 연료를 제조할 뿐만 아니라 사용후 핵연료를 재활용해 초우라늄 연료로 연구, 개발하고 있다.
우리가 보유한 핵사찰시료 분석기술은 국제사회 핵확산 억제 노력에 기여할 뿐 아니라 우리의 핵활동을 대외적으로 보다 투명하게 유지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나아가 국제 핵사찰 결과를 단순히 수용하는 것이 아닌,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
핵물질 분석을 통한 연대측정과 핵물질 기원을 추적할 수 있는 핵감식 기술로도 발전시킬 수 있다. 이와 관련한 연구가 올해부터 정부 지원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기술 역시 국제 핵물질 불법 거래, 방사능 테러 등 핵물질 및 방사성 물질을 이용한 불법행위 수사에 활용돼 국제사회 차원 핵안보 강화에 기여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원자력 기술개발은 경제적 이득을 직접 얻을 수 있는 산업분야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핵연료 국산화, 원전기술 자립, 상용 원전 및 연구용 원자로 수출, 중소형 원자로 스마트(SMART)개발, 차세대 원자로 개발 등 원자력 산업분야에서 기술 개발을 성공적으로 이룩함으로써 우리나라는 원자력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
이제 우리나라가 원자력 모범국가로서 한층 더 도약하고 국제사회에 우리의 원자력 진흥과 안전 의지를 다시 한 번 알리기 위해서는 국제사회가 공통으로 고민하는 부분을 함께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주도한 연구로용 저농축 우라늄 핵연료 제조기술 제공 프로그램과 원전 중대사고 증기폭발 국제공동연구 등은 핵사찰 분석기술과 함께 국제사회 핵 비확산 및 원자력 안전 강화에 기여하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도 이와 관련한 기술 공여국으로 위상을 공고히 해, 지속가능한 핵연료 주기를 완성하고 원자력을 안전하고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데 보다 더 힘을 써야 할 것이다.
연제원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화학연구부장 yeonysy@kae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