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원전 상용화 공동 추진을 약속한 우리나라와 사우디아라비아 간 양해각서(MOU)를 교환한 지 반년이 지났다. 2012년 표준설계인가를 획득했지만 이렇다 할 판로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우리나라 스마트원전기술이 대통령 외교력으로 빛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진척이 너무 더디다. 지금은 원자력연구원을 중심으로 사우디 현지에 실제 모델을 건설하기 위한 초기 작업을 조용히 진행 중이다. 아랍에미리트(UAE) 이후 또 다른 원전 수출 모델로 주목받는 스마트원전 현재 진행 상황과 숙제, 가능성을 짚어본다.
◇이달부터 예비설계 작업 돌입
업계에 따르면 스마트원전 수출 특수목적법인(SPC) ‘스마트파워’와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이달 사우디 스마트원전 사전설계 제안을 마무리한 후 예비설계 작업에 들어간다. 사전설계는 건설을 위한 초기 도안이며, 예비설계는 여기에 수요처 요구까지 반영한 것이다. 우리가 개발한 스마트원전 설계에 사우디 측 요구를 반영하는 것으로, 지난 3월 MOU 교환 이후 반년 만에 스마트원전 건설을 위한 양국 간 협력이 본격 시작되는 셈이다.
예비설계부터 건설 작업까지 예상 기간은 약 3년. 이 기간 동안 양국은 2기 이상 스마트원전 건설을 위해 양국 법인으로 구성된 특수목적회사를 설립하고 인력양성센터 등 전문 운영인력 배출을 위한 체계를 갖춘다. 최종목표는 사우디 현지 스마트 원전을 실증사업 삼아 양국이 함께 중소형 스마트원전 수출에 뛰어드는 것이다.
원자력연구원은 지난해 4월부터 사우디 원자력·신재생에너지원과 함께 각각 5명씩 구성된 팀을 꾸려 스마트원전 도입 타당성 연구를 진행했다. 부지선정부터 설계, 안전성, 경제성 분석은 물론이고 핵연료 공급과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까지 연구하면서 공동 파트너십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 뒤 양국 정상회동에서 양해각서(MOU)를 교환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설비 자체 완성도를 높여왔다. 냉각수 대량 공급 없이 공기만으로 원자로 냉각이 가능하도록 했으며,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엔 전력공급이 끊긴 상황에서도 시스템 안전성을 지킬 수 있도록 안전계통의 전면 피동화를 추진했고 관련 시스템도 단순화했다.
◇열리기 시작한 수출 길
우리 정부는 MOU 교환 이후 사우디 사업 성공을 위한 협력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데 집중했다. 최근 원자력연구원, 스마트파워, 한국전력기술이 사우디 스마트원전 건설 협력을 논의 중이다. 한전기술은 원전을 비롯해 다양한 화력발전소 등 플랜트 설계와 시공 노하우를 갖고 있는 공기업이다. UAE 수출 원전 APR1400 모델도 한전기술이 설계했다.
올해 초엔 스마트원전 수출을 전담하는 특수목적법인 ‘스마트파워’를 발족하기도 했다. 대우건설과 일진전기 등이 참여한 스마트파워는 지금까지 정부 주도로만 진행돼 온 해외마케팅에 민간기업까지 가세한 의미를 갖고 있다.
스마트파워는 사우디 사업 건설 계획과 함께 잠재 수요국 대상 수출 사업 발굴을 전담할 계획이다.
사우디 추가 원자로 건설 추진과 함께 중동국가를 중심으로 시장을 넓히고 영역을 동남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으로 넓힌다는 밑그림이다.
정부는 이번 사우디와 협력으로 스마트원전 상용화 기반이 마련되면서 세계 중소형 원자로 시장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예상 시장규모는 18GW(기가와트) 수준으로 스마트원전 180기에 달하는 규모다. 중동시장 추가 수주 기대가 가장 높다. 사우디와 협력이 마중물 역할을 해줄 것이란 전망이 뒷받침됐다.
물이 부족하고 전력망 인프라가 부족한 중동지역 국가는 사우디 사례를 벤치마킹해 스마트 원전에 관심을 표출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제안한 스마트 원전기술은 전력 생산은 물론이고 해수담수화, 지역난방, 산업용 열 공급까지 복합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분산전원으로도 사용할 수 있어 인구분포가 많이 산재되어 있지만 국가 전역 전력망 구축이 힘든 곳에 적합하다.
◇개발도상국 수출, 협력 채널 확대 필요
수출 확대를 위해선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국가적으로는 중소형 원전 상용화 첫 사업이지만 아직 범부처 차원 협력 채널은 가동되지 않고 있다.
현재 스마트원전은 미래부와 원자력연구원이 사실상 전담하는 모양새다. 산업 육성이나 수출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산업부는 UAE와 같은 대형 상용원전 수출사업에 집중하고 있어 스마트 원전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개발 초기 함께했던 한국전력은 사업에서 손을 뗀 지 오래다. 사우디 MOU 교환 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재참여 등 관련 작업에 나설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 그동안 전력그룹사들이 해외사업으로 쌓아온 한전 브랜드 신뢰도는 상당한 수준이다. 특히 전력플랜트 시장에서 ‘KEPCO(한전)’ 이름은 잘 알려져 있다. 이를 해외마케팅에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은 스마트원전 업계로선 아쉬운 부분이다. 최근 한전기술과 협력을 논의 중이지만, 아직 사업 참여 관련 확답은 받지 못한 상황이다.
MOU 이후 상용화 공동연구에서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선 국가적 노력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현재 민간자본이 참여하는 스마트파워와 함께 관련 부처와 기관이 함께하는 전방위적 협력 채널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의견이다.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원전 수출 신호탄을 쐈지만, 제2·제3 사례를 만들기에는 아직 협력채널이 취약하다”며 “사우디 사업에서 가능성을 입증함으로써 보다 많은 기관이 참여하도록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