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업계는 ‘크리스탈 사이클’이란 말이 있다. 메모리반도체 경기가 3~4년을 주기로 순환하는 현상을 빗댄 ‘실리콘 사이클’에서 유래된 것으로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의 경기가 호황과 불황을 오가는 것을 일컫는다.
김현진 SBI인베스트먼트 벤처투자본부 상무는 “점점 사이클이 짧아지고 빨라지고 있다”며 “새로운 회사가 등장해 오래 하기가 어렵고 기존 기업도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진단했다. 김 상무는 SBI인베스트먼트에서 반도체 관련 투자를 주로 해왔다.
김 상무는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을 주도해온 반도체산업의 방향 전환 시기가 왔다고 내다봤다. 과거 삼성이 중국에 진출할 때 협력사가 함께 현지에 진출했던 것처럼 대기업-중소기업의 ‘선단형 해외진출’ 방식에도 한계가 왔다.
김 상무는 “그동안 한국의 기술력은 선진국의 기술력이나 해외 제품을 국산화하는 수입 대체제를 잘 만드는 데서 출발했다”며 “추격자 전략에서 탈피해 스스로 새로운 성공모델을 만들려니 시행착오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김 상무는 장기적으로 하이테크 산업에 대한 투자와 단기적으로는 보다 유연한 사업 전략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바라봤다. 이는 한국이 가진 반도체 부문에서의 기술적 우위를 살리면서 시장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능력을 함께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SBI인베스트먼트에서도 벤처 투자의 60%를 ICT에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아세안 지역 투자도 강화하고 있다. 2000억원 펀드 중에 1000억원 상당을 아세안 지역에 진출하는 기업에 투자했다.
김 상무는 “지속적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서는 해외 진출 기업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며 “아세안 지역은 인구가 성장하고, 한국 회사가 좋은 레퍼런스를 많이 쌓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서 TV홈쇼핑을 하는 기업을 비롯해 e커머스, 모바일커머스 기업에 두루 관심을 보였다.
앞으로 사물인터넷 시대가 본격화되면 센서나 칩 등 네트워크 기술과 제품에 대한 필요성은 더욱 높아진다. ‘경박단소’ 요구에 자동차 전장화 등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원천기술을 기반으로 특화된 기술을 적정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업만이 살아난다는 것이 김 상무의 생각이다.
그는 “반도체 기반을 잘 갖춘 나라가 기회를 갖출 것”이라며 “더욱 긴밀한 산학연 협력을 통해 소통하고 연구개발(R&D)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