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글로벌시장을 호령했던 광주 광분배기 업계가 고질적인 출혈경쟁 대신 상생카드를 꺼내 들었다. 우리로와 피피아이, 피니사코리아, 큐닉스, 네온포토닉스, 코아크로스, 피닉스 등 ‘따로 국밥’처럼 놀던 지역기업이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태스크포스(TF)까지 발족했다. 이들이 왜 뭉쳤을까? 답은 역시 생존이 걸린 경쟁력 확보에 있다. 창구를 단일화하면 기술유출을 방지하기 쉽다. 또 단가인하 압박도 공동대응이 가능하다.
광주 광통신업체는 지난 2009년 중국 댁내가입자망(FTTH) 구축사업으로 호황을 맞았다. 평판광도파로 원천기술 등으로 세계시장 80%를 점유했다. 당시 업계 매출 총액이 1조원을 넘어섰다. 고용창출효과도 3000여명에 육박했다. 우리로는 지역업계 처음 코스닥에 진출, 주목도 받았다. 돈이 되니 2년 뒤인 2011년부터 후발업체들이 우후죽순 늘었다. 이때부터 힘들어졌다. ‘제살깎기’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중국도 교란작전을 펴며 국내기업 간 경쟁을 부추겼다. 영업이익률은 추락했다. ‘엎친 데 덮친격’으로 원천기술 일부도 중국에 유출됐다.
실제 2009년 2000달러 선이던 웨이퍼 단가는 2013년 200달러까지 폭락했다. 업체마다 인력감축이라는 후폭풍이 쓰나미처럼 휩쓸고 지나갔다. 업체들이 모여 공정경쟁 시스템 도입 등으로 자구책을 마련하려 애썼지만, 협상은 번번히 실패로 돌아갔다. 협상테이블에서 모두 ‘동의’한 내용이 다음날이면 백지화되기 일쑤였다. 셈법이 제각각이었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다. 우선 공동해외마케팅단을 구성했다. 매달 CEO 정례회의와 마케팅전략 회의를 열어 최신동향도 공유했다. 최근엔 기존 웨이퍼 칩에 기업별로 특화기술을 접목한 신제품으로 신시장 개척도 모색하고 있다. 단가도 400달러 수준으로 다시 오르면서 관련 업체들은 R&D투자 여력과 자신감도 확보했다.
각자도생도 좋지만, 서로가 얼마나 힘을 잘 모아 대처하느냐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다. 애플 ‘아이폰’이 특정회사 기술력으로 만들어진게 아니듯, 위기도 함께 넘어야 수월한 법이다.
광주=서인주기자 si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