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수첩]부실 논란 넘어 무용론으로

[기차수첩]부실 논란 넘어 무용론으로

“자원개발 관련 예산이 터무니 없이 삭감됐습니다. 예년 수준은 아니더라도 사업 검토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최근 만난 정부 관계자에게 해외자원개발 사업 분위기를 묻자 돌아온 답이다. 오래전 비슷한 건으로 만난 공기업 관계자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대답은 비슷했다. “지금은 분위기는 물론이고 업무적으로 신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민간기업이라고 상황은 다를 리 없다. 대기업 임원은 “공기업이 사업에 나서지 않으니 우리도 일단 관망 분위기가 우세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세운 자원개발사업에서 수많은 부실과 비리가 드러났다. 관례적 절차가 비리로 오해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주먹구구 투자로 수조원대 혈세가 낭비된 사실도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자원개발 관련 공기업 전직 사장 등이 검찰수사까지 받으면서 분위기는 싸늘해진지 오래다. 이렇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자원개발 공기업에서 ‘자원개발’이란 단어는 금기어가 됐다. 신규 사업 검토조차 어려운 상황으로 이어졌다.

업계에선 자원개발 사업이 개점휴업 상태로 있는 현 상황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가 높다. 해외 자원개발은 외교·금융·엔지니어링 등 다양한 분야 협력이 필수라고 한다. 정부와 공기업이 사업에 손을 놓자, 민간기업까지 사업에 나서기 꺼려하는 것이 지금 모습이다. 산업부, 외교부, 기재부 등 부처 간 협력 채널도 사실상 단절됐다.

우리나라 한 자원개발 중개기업에 따르면 유가 하락과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국제 자원개발 시장에 수많은 자산이 새 주인을 찾기 위해 매물로 나와 있다. 총 에너지소비 90% 이상을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로서는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이런 호기 앞에서 스스로 문을 닫아 버린 느낌이다. 지난 수개월간 이어져온 자원개발 부실 논란의 끝이 무용론으로 귀결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