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로부터 마크 저커버그, 마윈, 레이쥔까지 뉴밀레니엄 이후 21세기를 장식하고 있는 신흥 부호이자 현시대를 살고 있는 지구촌 젊은이의 롤모델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전통 제조업이 아닌 소프트웨어(SW)와 IT분야에서 기업을 일구고 부와 명성을 쌓았다는 점이다. 매일 세계 언론의 머리를 장식하는 새로운 부호도 SW분야에서 배출되고 있다. 세계 자본의 물줄기는 SW를 향해 흐른다.
◇SW가 발달할수록 줄어드는 전통산업 격차
탈(脫) 제조업 시대. 지금 어느 누구도 미래를 이끌어갈 산업으로 제조업을 꼽지 않는다. 산업혁명 이후 수많은 부를 창출하고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차지했던 위상은 점점 역사속 일이 되고 있다.
분명 제조업은 모든 산업의 기초다.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에너지와 소재, 그리고 이를 이용한 스마트폰과 각종 기기들이 있기에 지금의 IT와 SW 혁명도 가능했다. 하지만 제조업만으로는 한 국가와 기업에 지속성장을 보장할 없다. 결국 대량생산과 단가경쟁으로 치닫는 구조에서 제조업의 무게 중심은 제조원가를 줄일 수 있는 개발도상국으로 계속 옮아가고 있다. 영국에서 미국, 일본, 한국을 거쳐 지금은 중국에 잠시 머물고 있는 제조업 주도권은 이제 다시 인도, 중남미, 북아프리카로 이동할 것이다.
그리고 이 주기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SW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후발주자의 제조업 추격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다. 선발주자 제품에 대한 정보도 과거 보다 더 쉽게 구할 수 있고, IT로 카피하는 기술은 더 진화했다.
SW는 제국을 만들어가고 있다. 컴퓨터가 나온 후 초기 SW는 업무용이 일반적이었으며 그 시장도 B2B(기업간거래) 일색이었다. 하지만 컴퓨터가 보급되고 개인용 하드웨어(HW) 기반이 스마트폰 등으로 점점 발전되면서 SW 영향력은 사회 전반으로 커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애플 iOS, 구글 안드로이드 등은 이미 세계 시장에서 SW는 물론 전 분야에서 지배력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는 이들을 플랫폼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있으며, 단순히 SW로서 역할을 넘어 독자적 생태계 제국을 구축해가고 있다.
IT강국이라는 칭호를 받아 온 우리나라에도 많은 SW와 콘텐츠 기업이 있지만, 어떤 결과물이건 3대 SW 공룡들이 만들어놓은 생태계에 종속된다. 수많은 나라들이 윈도우와 iOS, 안드로이드위에서 움직이고 이를 플랫폼으로 한 HW를 더 재미나고 편리하게 쓸 수 있는 앱을 만든다. 그 과정이 반복될수록 공룡 플랫폼의 덩치와 힘은 거대해 진다. HW는 도구가 됐고 정작 승부처는 SW가 됐다.
이제는 모든 기기에 SW가 들어간다. 사물인터넷(IoT)를 필두로 한 초연결사회가 만들어지면서 PC, 스마트폰은 물론 TV, 냉장고, 부엌가구에도 SW가 들어간다. 지하철, 자동차는 물론이고 산업용 장치설비에도 조작 편리성을 위해 인터페이스를 강조한 SW가 오래전부터 사용되고 있다. SW가 없는 기기는 영혼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같은 흐름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아직 우리 산업구조는 제조업 의존도가 크다. 누군가 긋지도 않았지만 어느새 대기업은 제조업, SW는 중소·벤처라는 선이 그어져 버렸다. 스마트폰, TV, 자동차 등 제품 그 자체 성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여기에 무엇을 담느냐가 경쟁력이 될 것이다.
◇新 생태계 필수경쟁력, SW DNA를 갖자
구글과 페이스북에 이어 새로운 SW 부호 후보로 이름을 올리는 기업은 중국에서 나오고 있다. 제조업 주도권은 영국-미국-일본-한국-중국으로 이동했지만, SW 주도권은 일본과 한국을 건너뛰고 바로 중국으로 넘어갔다.
샤오미, 알리바바로 대표되는 중국 SW기업은 분명 자국 보호정책과 대규모 내수시장이라는 이점을 안고 성장했다. 하지만 이들은 기존과는 다른 접근 방법으로 SW를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샤오미는 우리에게 스마트폰 회사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정작 이 회사의 핵심 수익원은 HW가 아닌 SW다. 레이쥔 샤오미 CEO는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 등 HW를 SW를 팔기 위한 도구로 활용한다. HW 판매를 수익원으로 하는 다른 기업과 딴판이다. 안드로이드 기반 그들만의 OS를 만들었고 ‘미마켓(Mi Market)’이라는 전용 앱스토어도 만들었다. 알리바바는 중국 유통 혁신을 가져왔다. 세계 공장이라고 불리는 중국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제품을 알리바바의 문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이들 모두 전혀 새로운 사업을 했던 것은 아니다. 기존 있던 산업에 SW적 접근을 통해 SW로 구현하는 서비스를 선보인 것이 새로운 것이다.
다른 SW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닌 기존에 있던 것이 SW라는 새 옷을 입으면서 좀 더 편리하고 세련된 서비스로 변한다. 사용자 입장에선 기존에 사용하던 상품과 서비스를 보다 편리하고 빠르게, 그리고 저렴하게 이용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테라노스 사례를 보면 기존 산업에서 차지하는 SW 영향력을 재확인할 수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을 중퇴한 엘리자베스 홈스가 설립한 이 회사는 기존 대비 1000분 1밖에 되지 않는 혈액으로 30가지 질병을 진단해낸다. 빅데이터를 이용해 검사 정확도를 높이면서 기존 혈액채취에 대한 환자 거부감을 덜었다. 혈액검사라는 기존에 있던 것을 변형시킨 사업이지만 주사바늘이 무서운 어린이들의 선택은 안 봐도 뻔하다.
사안을 SW적으로 접근하는 SW DNA는 선택받은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재능이 아니며 별도 훈련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스마트폰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불쑥 불쑥 나타나고 있는 1인 개발자들 중에도 프로그래밍 기술 등 전문 SW지식 없이 사업을 시작한 사례도 있다. 이들은 콘텐츠 완벽성 보다는 본인이 만들고 싶었던 콘텐츠 구현에 집중했다. 오류는 그때그때 수정하고 게임에 필요한 일러스트는 널리 퍼져있는 작가 풀을 이용했다. 게임을 만들기 위해 프로그래머를 고용하고, 그래픽과 음악팀을 만들고, 테스트와 마케팅 인력을 뽑지 않았다.
본인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것이 우선 목표이고 이를 위해 주변 자원을 끌어다 쓴다. 자체 HW 생산라인 없이 그들만의 SW 생태계를 구축하려고 하는 샤오미 전략과 유사하다.
그동안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어왔던 대기업은 이런 전략을 펼치기에 이제 몸이 무거워졌다. 제조업 기반으로 커왔던 만큼 각자 보유하고 있는 자체설비 크기와 수도 엄청나다. 하지만 지금 중소기업에선 SW적인 사고 전환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한 벤처투자 전문가는 “1등은 반드시 따라잡히게 되어 있다”고 말한다. 뒤쫓아 오는 후발주자가 1등이 달리를 경로를 보고 지름길로 따라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지금 제조업이 그렇다. 후발주자는 SW기술을 동원해 선발주자가 개척했던 길을 빠르게 쫓고, 격차를 좁히고 있다. 1등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은 후발주자가 예측하지 못한 곳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해법은 SW에 있다.
■고정관념을 깨는 벤처 경영인의 SW DNA
“제조라인을 꼭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나요? 지금도 주변에 이용할 수 있는 제조설비가 널려있습니다. 제가 꼭 제조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제품에 대한 기술과 아이디어에 집중하고 생산되는 제품은 관리 감독만 똑바로 하면 됩니다.”
얼마전 한 벤처경영인에게 들은 얘기다. 샤오미 전략과 매우 흡사하고 충분히 합리적인 접근이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우리나라 벤처인한테 들었다는 것은 아직까지 생소하다.
우리나라 경영자가 변하고 있다. 과거 창업, 회사 경영이라고 하면 기본적 인프라는 갖춰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물리적 가치는 중요하지 않게 됐다. 제품 생산에 이용할 수 있는 자원과 활용법만 알면 된다. 제품 품질은 대동소이하고, 어차피 품질은 그 제품이 소비자에게 줄 수 있는 차별화된 가치와 영혼 즉, SW 경쟁력에서 결정된다.
가치관 변화는 새로운 공유경제 사례들을 만들기도 한다. A회사는 중국 인증 획득을 위해 B회사가 보유한 중국 금형라인을 함께 이용한다. 최근 불경기로 금형라인 가동률이 떨어졌던 B회사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고, A회사는 중국 인증을 빠르게 획득하니 일거양득이다.
제품 업그레이드와 신제품 개발도 훨씬 빨라졌다. 과거엔 프로토타입 제작이 가장 큰 부담이었지만 지금은 SW기술을 통해 수차례 시뮬레이션을 거치고 오류를 수정하니 프로토타입 단계에서 다시 설계를 고치는 일도 거의 없다.
우리나라 매장은 없지만 해외에서 요거트 아이스크림 프랜차이즈를 정착시키고 있는 C사는 중소기업으로는 힘든 대규모 골프행사 마케팅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회사 주목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외국계 프랜차이즈 다수가 재벌 3세가 들여온 것이라는 사실이다. 미국 유명 대학 동문들이 모이는 골프행사에 수천만원 스폰서 마케팅을 벌이면서 중동, 아프리카 등 개도국 시장에 하나 둘씩 매장을 늘리고 있다. 중소기업으로서는 부담스런 비용이지만, 다른 유명 프랜차이즈가 마케팅과 진출 전략을 대거 수집 분석해 시행오차를 줄이는데 노력했다. 사실상 빅데이터 기반 마케팅을 벌인 셈이다.
경영 패러다임이 변했다. 인프라와 같은 HW 속박을 벗어나면서 회사는 가벼워지고 구성원 아이디어와 기획력은 더욱 탄탄해지고 있다. 미래를 바꿀 SW DNA가 벤처경영인 사이에서 노하우로 퍼지고 있다.
<세계 부호들의 SW DNA>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