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산업분야에 소프트웨어(SW) 활용성이 높아지고 있다. 200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SW 활용 비중이 하드웨어를 앞서기 시작했다. 그동안 제조업 중심으로 성장해온 우리나라는 기술집약적이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SW산업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나라 SW산업 현실은 초라하기만 하다. 세계 시장에서 자랑할 만한 제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선진국과 기술 격차는 갈수록 벌어진다. SW산업 전반에 걸쳐 해결이 어려운 문제점이 산적해 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SW 경쟁력 강화는 필수다. 문제점을 냉정하게 되짚어보고 창조적인 대안을 찾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어도비, SAP, 시만텍…. 잘 알려진 글로벌 SW 기업이다. IBM, 애플,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의 비즈니스 근간도 하드웨어(HW)가 아닌 SW다. 이들은 SW를 앞세워 세계를 주름잡는 기업이 됐다.
하지만 이 중 어디에서도 한국 기업 이름을 찾기는 어렵다. ICT 강국이라는 수식어에 어울리지 않게 우리는 글로벌 SW 기업과 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1960년대 중반부터 반세기 동안 SW산업에 쏟아온 열정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대목이다.
SW 중요성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SW와 관계가 별로 없을 것 같은 자동차도 ‘소프트웨어로 달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산업 전반에 영향력이 확대되는 추세다. SW가 IT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짊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루라도 빨리 우리가 글로벌 SW 기업을 배출하지 못한 이유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대안을 찾아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진국과 격차 갈수록 벌어져
미래창조과학부와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가 지난 5월 발표한 ‘SW산업 주요 통계’ 보고서에 SW의 중요성이 잘 나타나 있다. 2014년 기준 세계 SW 시장 규모는 1조671억달러(약 1270조원)에 달한다. 반도체 시장의 3.2배, 휴대폰 시장의 2.7배다.
SW산업 부가가치율은 55.9%로 제조업(22.2%)의 2.5배다. 전체 산업(36.0%)보다 훨씬 높다. 같은 금액을 투자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부가가치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취업·고용유발 효과 역시 제조업보다 두 배가량 높다.
우리나라의 SW산업 현주소는 초라하기만 하다. 패키지와 IT서비스를 포함한 국내 SW 시장 규모는 세계 시장 대비 1.03%에 불과하다. 임베디드 SW 분야는 세계 시장의 11.4%를 차지한다. 하지만 이는 스마트폰 등 하드웨어 분야 성과에 기인하고 있다. 즉 패키지처럼 SW 자체의 독립 역량은 아니라는 얘기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에 따르면 패키지 SW 분야 세계 500대 기업 중 국내 기업은 4개에 불과하다. 국내 시장에서는 전체 SW 기업 중 50.2%가 매출액 10억원 미만 중소 SW 업체다. 국내외 할 것 없이 SW 경쟁력이 선진국과 큰 차이가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와 미국 간 SW 기술격차는 분야별로 2.6~3.3년이다. 문제는 이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SW산업 경쟁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저가경쟁에 산업 경쟁력 악화
우리나라 SW 개발자 역량은 세계 시장에서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정부는 SW산업진흥법 등 다양한 정책을 앞세워 산업 육성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SW산업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국내 SW산업 경쟁력이 낮은 배경에는 특정 분야 편중, 저가 경쟁, 불공정 거래 관행, 우수인력과 창의성 부족 등 여러 요인이 자리한다. 누구나 잘 알고 있고 여러 전문가들이 밤을 새워 토론해도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이슈다.
우리나라 SW는 종류 면에서는 임베디드 SW 분야에, 활용 분야로는 게임과 엔터테인먼트 영역에 치중돼 있다. 운용체계(OS)나 미들웨어, 기업용·패키지 SW 분야에서는 눈에 띄는 기업과 제품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발주처 저가 입찰과 과당경쟁이 SW산업계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공공 SW사업 제안서 평가에서는 기술점수 편차가 작아 결국 가격 평가에서 당락이 좌우된다. 가격 중심 평가는 저가 경쟁을 부추겨 업계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친다.
낮은 수익성은 고급 SW 인력이 중소기업을 기피하게 만든다. 정부 SW 인력 양성책도 고급 인력 양성과는 거리가 멀다. 대학 SW 관련 학과는 기피 학과가 된 지 오래다. 국내 SW산업 인력(전산직까지 포함)은 2008년 이후 70만명 중반 수준에서 늘어나지 않고 있다. 인력이 없는 산업은 발전할 수가 없다. 마이크로소프트나 윈도 같은 세계적 기업·제품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눈에 안 보이는 가치 중요하게 여겨야
세계 해킹 대회나 개발자 대회에서 국내 참가자가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국내 SW 인력 개개인의 역량은 뛰어나다는 의미다. 국내 SW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못 갖추게 된 것은 ‘묘목’이 아니라 ‘토양의 질’ 차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문화나 환경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김학훈 날리지큐브 대표는 “SW 개발자 개인 자질은 우수하지만 국내에서 SW를 바라보는 인식, 가치부여 수준을 생각하면 우리나라 SW산업은 발전이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적과 매출 등 외형적 결과를 중요시하는 분위기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눈에 안 보이는 가치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게 근본적 문제점이라고 말했다. 무형 자산인 SW에 제값을 주지 않고 가격을 후려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도 결국은 이 같은 사회적 유산이라는 것이다.
김 대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도 중요하게 여길 줄 아는 교육이 이어지고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며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SW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차라리 하드웨어 경쟁력을 강화하는 게 지금으로서는 더 현실적 대안이라고 덧붙였다.
산업별 시장 규모(단위:억달러, 2014년)자료:디스플레이서치〃가트너〃IHS〃IDC
세계-국내 SW 시장 규모(단위:억달러, %)자료:과학기술정책연구원
미국과 국내 주요 SW 기술 차이 자료: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세계 SW 시장 전망(단위:억달러) 자료:IDC>
<국내 SW 시장 전망(단위:억달러) 자료:IDC>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