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성차 업계 차세대 기술 개발은 부품 업체와 협업으로 이뤄진다. 부품 업체들이 신기술을 뒷받침할 완벽한 품질의 부품을 공급하지 못하면 완성차 업체의 신시장 개척은 허울뿐인 구호가 되기 십상이다. 독일이 폴크스바겐을 중심으로 한 대중 브랜드부터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 프리미엄 브랜드를 중심으로 자동차 산업을 주도할 수 있는 배경도 세계 최고 부품업체들이 탄탄하게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이 바로 보쉬와 콘티넨탈이다. 지난해 세계 자동차 부품 시장 매출 1, 3위를 차지한 이들의 혁신 전략은 우리 부품업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쉬]
독일 보쉬는 세계 최고 자동차 부품 회사다. 이 회사 역사가 곧 자동차 기술 발전 역사다. 130년에 이르는 역사 속에 ‘세계 최초’ 수식어가 가득하다. 지금도 세계 자동차 중 보쉬 기술이 들어가지 않은 차를 찾기란 불가능하다. 지금은 필수로 인식되는 전자식 차체자세제어장치(ESP), 연료 효율을 높여주는 가솔린·디젤 고압 분사장치도 모두 이 회사가 최초로 개발했다.
보쉬 기술 개발 방향을 보면 미래 자동차 기술 혁신 이정표가 나온다. 보쉬는 올해 연례 기자간담회에서 ‘연결성(connectivity)’을 화두로 내세웠다. 차와 사물 연결, 차와 사람 연결을 넘어 차와 다른 교통수단까지 연결하는 ‘미래 이동성’이 핵심 가치다. 그 중심에 전장부품과 소프트웨어(SW) 기술을 뒀다.
◇‘한발 빠른 혁신’으로 써온 130년 역사
보쉬 역사는 1886년 로버트 보쉬가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정밀기계 및 전기공학을 위한 워크숍’을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임차 건물에 제철설비를 갖춘 소규모 회사였다. 마그네토 엔진 점화장치에 이어 1902년 세계 최초로 고압 엔진 점화 시스템을 개발해 다임러에 납품했다. 이후 내연기관 효율 향상 핵심인 점화와 연료분사 시스템은 이 회사 대표 먹거리로 자리 잡았다.
1927년 디젤 연료 분사 펌프 양산을 시작했다. 독보적인 기술로 1930년대 수많은 유럽 트럭·농기계 제조사가 보쉬 제품에 의존했다. 1967년 양산을 시작한 ‘제트로닉’은 세계 최초의 전자식 가솔린 분사 시스템이다. 당시 폴크스바겐이 미국 캘리포니아 환경 규제를 충족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전통적인 내연기관, 섀시 부문에서도 일찍이 전기·전자 기술을 도입했다. 1978년 도입한 브레이크잠김방지장치(ABS)는 1987년 트랙션컨트롤시스템(TCS), 1995년 전자식 차체자세제어장치(ESP)로 이어졌다. ESP는 차량이 미끄러지는 순간 인명을 구하는 혁신 기술로 평가받으면서 자동차 기술 혁신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1997년 양산을 시작한 고압 디젤 분사장치 ‘커먼레일시스템(CRS)’은 디젤차 연료 소비량과 유해가스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가솔린직분사(GDI) 기술과 더불어 내연기관 효율 향상 분야 대표적인 기술로 자리 잡으면서 세계 자동차 제조사 ‘러브콜’을 받았다.
◇전자·SW가 미래 먹거리 핵심
보쉬는 올해 ‘자동차부품 기술 사업 부문’을 ‘모빌리티 사업 부문’으로 개편했다. 전통적 기계 중심의 ‘과거 자동차’를 넘어서겠다는 의지다. 첨단 전자제어·통신·연결 기술이 집약된 지능형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차 대 사물(V2X) 통신, 자율주행 자동차로 미래 이동성 사업을 준비한다. 올해 ADAS용 센서 판매량 목표는 1억개 이상이다.
자율주행차에서 레이더·카메라 센서는 ‘눈’을 담당한다. 수많은 센서에서 모은 정보를 한데 융합하고 차량 제어 판단을 내리는 데는 고도의 소프트웨어(SW) 기술이 필요하다. 보쉬는 ADAS 부문 매출이 매년 30% 이상 늘고 있다. 이 분야 개발 인력은 2년 전보다 50% 이상 확대됐다. 회사 전체 개발 인력 중 5분의 1 이상이 SW 전문가다.
통신은 자율주행차 ‘시야’를 넓혀준다. 센서로 눈앞의 도로 상황을 인지한다면 클라우드 서버로 내려받는 지도·지리 정보는 보이지 않는 길을 미리 인지할 수 있게 해주는 ‘천리안’ 역할을 한다. 수시로 변하는 도로 정보 역시 클라우드 방식으로 실시간에 가깝게 반영한다. 보쉬는 올해 자동차 기술 분야 연례 기자간담회에서 이 기술을 적용한 자율주행 콘셉트카를 시연하기도 했다. 운전 주도권을 쥔 자율주행차와 운전자 간 소통을 도와줄 차세대 휴먼머신인터페이스(HMI) 개발도 본격화했다.
친환경차 대안으로 급부상한 플러그인하이브리드자동차(PHEV)에서도 ‘커넥티비티 솔루션’이 유용하다. 전기모터와 내연기관을 번갈아 사용하는 특성상 구동 방식을 자주 바꿔줘야 하기 때문이다. 보쉬는 통신 기반으로 주행 상황을 예측해 미리 구동 모드를 전환하는 ‘예측형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시연했다.
보쉬는 전자·통신 기반 연결 기술로 미래 교통망 전체를 아우르는 사업 모델을 꿈꾼다. 자체 개발한 SW와 한 개 칩카드로 카셰어링, 기차와 버스, 수영장과 도서관을 모두 이용하는 ‘슈투트가르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콘티넨탈]
1871년 고무 업체로 출발한 콘티넨탈은 핵심 기술인 타이어 외에 다양한 전장 부품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연구개발과 적극적인 인수합병으로 자동차 부품 시장을 주도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 제동 시스템과 엔진 부품 등 핵심 부품 시장 진입 속도를 높였다. 이 과정에서 자국 내 부품업체는 물론이고 다임러-크라이슬러와 모토로라 전장 사업 부문을 인수하는 등 외부 혁신 역량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콘티넨탈의 인수합병은 현재진행형이다. 갈수록 중요해지는 전장 부품과 SW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최근에는 차량용 SW 업체 일렉트로비트 인수에 6억달러를 투입했다. ‘교통사고 제로(0)’ 비전 달성을 위한 SW 개발 역량 강화 전략이다. 엘마 데겐하트 콘티넨탈 회장은 “일렉트로비트 인수는 콘티넨탈 미래를 위한 가장 중요한 결단 중 하나”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콘티넨탈은 지난해 전체 매출의 6%가 넘는 21억유로를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27개국 127개에 달하는 세계 연구개발 거점에서 혁신에 동참했다.
◇에너지 효율 향상, 안전 기술, 지능화에 초점
콘티넨탈 차세대 기술 혁신은 △경량화 및 전기동력화를 포함한 에너지 효율 향상 △자율주행 및 운전자보조시스템(DAS)을 위한 안전 기술 △지능형교통시스템 기반이 되는 정보 관리 3대 부문에 집중됐다. 당면 과제인 내연기관 효율 향상에 이어 중장기적으로는 자율주행과 교통 시스템 전반을 아우르는 인프라 기술에 주력한다.
콘티넨탈 주력 사업은 ADAS 부문이 포함된 섀시안전사업본부다. ADAS 부문에서는 인지(Sense)-계획(Plan)-제어(Act)에 이르는 자율주행 단계별로 SW 역량을 강화해 부품 원가를 낮추는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카메라와 레이더 센서를 함께 사용하던 비상자동제동(AEB) 시스템을 레이더 센서로만 구현할 수 있는 기술로 원가를 낮추는 방식이다. 콘티넨탈은 레이더 센서만으로 2016년 NCAP AEB 평가에서 최고 등급을 받을 수 있는 기술 수준을 목표로 한다. 더 나아가 2017년에는 레이더 센서 및 하나의 카메라 센서만으로 모든 ADAS 기능을 구현한다는 목표다.
콘티넨탈은 차량 효율 향상의 또 다른 방법으로 차량 경량화를 위한 차세대 소재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알루미늄에 이어 3세대 경량 소재로 나일론을 주목한다. 기존 소재보다 최고 50% 가벼운 나일론 소재를 올해부터 속속 상용화하고 있다.
휴먼머신인터페이스(HMI) 혁신에 기반을 둔 운전 편의 장치 개발도 핵심 과제다. 헤드업디스플레이(HUD)에 증강현실을 접목한 ‘AR-HUD’도 SW 기반 차세대 안전 기술로 주목된다. AR-HUD는 운전자가 실제로 보는 시야에 맞춰 다양한 정보를 운전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주행 상황에 따른 경로 안내와 어댑티브크루즈컨트롤(ACC) 상황, 차선이탈경보(LDWS) 등이 운전자 시야에 맞춰 제공된다.
콘티넨탈은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카를 위한 전기동력 기술 개발에도 주력한다. 내리막과 오르막을 포함한 주행 여건에 맞춰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는 48V 시스템과 연료 분사 시스템을 개선한다.
자율주행 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연결성’ 기술 확보도 주요 과제다. 주행 조건과 고도까지 반영된 정밀 지도와 주행 경로를 바탕으로 최적 연비 주행을 돕는 ‘e호라이즌(eHorizon)’은 자동차와 인프라 간 연결성에 기반을 둔다.
콘티넨탈 차세대 전략은 자동차 업계가 시급히 필요한 효율 향상을 근간으로 전기·전자 및 ICT를 융합해 이동성 자체를 혁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과정에서 SW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엘마 데겐하트 콘티넨탈 회장은 “엔진 효율 향상과 안전 기술 개발 등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SW”라며 “현재 콘티넨탈 SW 개발 인력은 1만3000명 수준이지만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노버·복스베르크(독일)=
양종석기자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