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소규모 공인중개소를 운영하는 A씨(32세)는 요즘 골치가 아프다. ‘부동산 중개 애플리케이션’ 이용자가 늘며 사무실에 찾아오는 손님이 줄었기 때문이다. A씨는 중개 앱을 이용하지 않는 게 원인인가 싶어 유료 서비스에 가입했지만 수익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A씨는 “부동산 중개 앱 이용 비용이 만만치 않더라”며 “공인중개소가 중개 앱 운영 기업만 배불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토로했다.
A씨 사례는 우리나라 플랫폼 기업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구조상 플랫폼 기업은 늘고 있지만 여기에 ‘상생’은 없다. 애플 등 미국 사례를 보며 우리나라에도 대기업과 함께 성장하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바랐던 중소기업은 “한국에는 플랫폼 기업이 없다”고 지적한다.
◇왜 플랫폼 기업인가
플랫폼(Platform)은 기차역 승강장, 연단·강단을 뜻한다. 전혀 다른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지만 공통점이 있다. ‘수요자와 공급자가 만나는 공간’이라는 사실이다. 기차역 승강장에서는 기차(공급자)와 승객(수요자)이 만나고, 연단·강단에서는 연설자(공급자)와 관객(수요자)이 만난다. 결국 플랫폼은 수요와 공급을 이어주는 공간인 것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은 ‘인터넷 플랫폼 비즈니스 동향분석 및 정책적 제언’ 보고서에서 “과거 플랫폼 개념은 상품(서비스) 제공자와 수용인원 한계 등 공간 제약성이 강했다면 정보통신기술(ICT) 발전과 함께 플랫폼 개념은 수많은 상품과 인원이 공간 제약 없이 교류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확장됐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플랫폼은 ‘다양한 인터넷서비스·콘텐츠가 생성·유통되는 장으로 애플리케이션프로그래밍인터페이스(API)를 통한 서비스 연동 등으로 이용자, 서비스 제공자 간 소통 기반을 제공하는 장소’로 정의했다.
대표적 플랫폼 기업으로 미국 애플과 구글이 꼽힌다. 애플은 앱 거래 시장 ‘앱스토어’를 조성·운영해 상당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구글 역시 앱 거래 시장인 ‘구글플레이’를 운영한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며 앱스토어와 구글플레이는 절대적 위치를 확보했다.
온라인 숙박 중개업체 에어비앤비도 대표적 플랫폼 기업으로 꼽힌다. 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에어비앤비는 192개국 3만4000개 도시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기업가치가 10조7000억원에 달한다. 국내에서는 다음카카오가 대표적이다. 다음카카오가 제공하는 인터넷 메신저 카카오톡은 국내 3800만명을 포함해 국내외 총 1억7000만명이 이용하고 있다.
최근 수년 사이 플랫폼 기업이 두각을 나타낸 배경은 ‘기술 진화’와 ‘심해진 기업 경쟁’으로 분석된다. 인터넷 기술이 발달하며 다양한 형태 플랫폼 운영과 서비스가 가능하다. 무엇보다 세계적으로 기업 간 경쟁이 심화되며 기존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유망 비즈니스 모델로 플랫폼 사업이 떠올랐다는 평가다.
인터넷진흥원은 “온·오프라인 상품·서비스 기반을 갖춘 전통 플랫폼 기업은 웹·모바일 기반 비즈니스 플랫폼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며 “혁신적 플랫폼을 도입해 ICT 시장 변화를 주도한 공룡 인터넷 플랫폼 사업자 영향력이 비ICT 분야로 확장 중”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에는 플랫폼 기업이 없다?
국내에도 플랫폼 기업이 늘고 있다. 다음카카오 성공이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합병 전 카카오는 창업 초기 적자를 감수하며 ‘가입자’라는 기반을 다졌다. 두터운 가입자층을 확보한 후 카카오는 다양한 수익원을 발굴, 승승장구하고 있다. 다음카카오 외에도 네이버와 같은 포털업체가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했다. 게임 등 각종 콘텐츠 기업과 부동산·배달 서비스 등 모바일 앱 기반 기업이 플랫폼 비즈니스를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플랫폼 기업은 ‘상생’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플랫폼에 참여하는 기업을 ‘함께 발전하는 관계’가 아닌 ‘갑을 관계’로 본다. 앞서 A씨 사례처럼 적지 않은 기업이 플랫폼을 악용해 중간에서 수익을 챙기는 데에만 열중한다. 최근에는 일부 게임 퍼블리싱 업체가 개발사로부터 받는 수수료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단 마케팅 비용을 투입해 플랫폼 기반을 갖춰 참여 중소기업 의존도를 높인 후 수수료를 챙기는 기업이 적지 않다”며 “참여 중소기업은 중도에 발을 뺄 수도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이런 형태의 플랫폼 기업은 중장기 성장이 어렵다. 참여 기업과 시너지를 내기 어렵고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다른 플랫폼 기업으로 참여기업이 쉽게 이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생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 기업이 많이 나오지 않으면 세계 시장에서 우리 산업 경쟁력은 점차 약해질 것이다. 국내 플랫폼 비즈니스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착취 구조를 넘어 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공정한 시장 조성’이 필수다.
인터넷진흥원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독점화되는 플랫폼 비즈니스 특성으로 인한 부작용이 클 수 있다. 공정경쟁이 보장되고 지속성장이 가능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양한 이해 관계자가 한자리에 모여 지속성장을 위한 자율정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정부는 사업자 지속적 공정경쟁을 보장할 수 있는 정책적 기반 조성에 힘써야 한다”고 제안했다.
플랫폼 유형(자료:삼성경제연구소)
<주요 플랫폼 기업 전략(자료:한국인터넷진흥원)>
<서비스 플랫폼 VS 단순 서비스 비교(자료:한국인터넷진흥원)>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