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전기차 보급 정책 방향은 노르웨이와 전혀 달랐다. 정부는 필요한 자금만 집행할 뿐 전기차 보급·확산은 기업과 관계 기관이 주도하도록 판을 짰다. 일방적 지원보다는 자생적인 시장 환경부터 조성하려는 의지가 보였다. 노르웨이 같은 과감한 지원책이 오히려 시장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더디지만 탄탄한 시장부터 만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자금만 대고, 시장 확산은 민간이
덴마크 전기차 보급 수는 한국과 비슷한 4138대 수준이다. 옆 나라 노르웨이와 비교하면 10%에도 못 미친다. 전기차 보급 활성화 지원책도 노르웨이와 비교해 많지 않다. 덴마크는 여느 다른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2009년부터 전기차 보급 정책을 폈다.
차량 등록세와 소유세를 합쳐 차량 가격 180%에 해당하는 세금을 감면해 왔지만 2016년 1월부터 이런 지원을 중단하는 것이 유력하다. 세금 감면이나 거리 주차장 무료 등 각종 혜택만으로 중장기 시장을 키울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옌스 크리스티안 로드베르그 인서로(INSERO) 이모빌리티프로젝트 팀장은 “노르웨이가 지원하는 과도한 세금 면제나 주차장·충전요금·버스전용도로 진입 등 혜택을 2017년부터 끊게 되면 시장이 받는 충격 때문에 전기차 보급률은 감소하고, 교통체증 증가 등 오히려 전기차에 대한 반감이 생길 수 있다”며 “덴마크는 노르웨이 사례를 보면서 일방적 혜택·지원보다는 자생적 시장부터 창출하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금 감면 중단이나 전용 도로 등 혜택 없이는 전기차 수요가 줄 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기업 주도형 시장이 열리기 어렵다고 봤다.
이 때문에 덴마크 정부는 민간 위주 일방적 지원보다는 보급 속도가 더디더라도 시장성 있는 사업 모델 만들기로 정책을 전환했다. 정부는 사업 모델 발굴과 운영 등 모든 영역을 민간 기업에 맡겼다. 민간이 제시한 사업 평가와 지속적 관리를 위해 수도·지자체 산하 기관을 지정해 운영한다.
지역 내 렌터카 업체가 전기차 기반 사업을 의뢰하면 평가를 거쳐 사업을 승인하고 이후 사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해분 만큼 정부가 지원하는 형태다. 민간 기업이 시장경쟁력을 갖추는 데 일정 기간 동안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대신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충전인프라를 확대해 기본적 시장 인프라를 조성한다. 덴마크 정부는 최근 전기차 전용 주차장에 일반차량 주차 시 범칙금을 부과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덴마크 에너지부는 전기차 지원 사업에 앞으로 5년간 3500만 크로네를 배정하고 올해 49대 전기차를 지자체·민간기업 등에 공급한다.
이미 덴마크에 보급된 전기차 20%가 카셰어링 서비스 모델이며, 대부분 일반인·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장기 리스·렌털 사업이 주를 이룬다. 충전인프라 구축과 운영은 유럽 전력회사 클래버와 E.ON이 담당하고 정부는 개입하지 않는다.
◇다양한 서비스모델 시도…정책적 경험 확대
덴마크에는 전기차 기반 다양한 시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덴마크 AVIS가 닛산 전기차 모델 ‘리프(Leaf)’와 ‘eNV200’ 등 450대를 구입해 국가 전역에 렌털 사업을 활발히 진행 중이고 ‘카투고(Car2go)’ 등 업체도 카셰어링 사업에 전기차를 활용하고 있다.
코펜하겐 전기차 사업 주관기관인 코펜하겐일렉트릭은 AVIS와 같이 전기차 서비스 사업을 추진하는 업체를 지원한다. 이들 업체를 대상으로 전기차를 대여해 시범사업 기회를 제공하면서 사업성을 타진하는 프로그램도 벌인다. 지자체별로 전기차 약 10대가 배정돼 이 같은 용도로 활용 중이다.
메테 호 코펜하겐일렉트릭 컨설턴트는 “코펜하겐에만 약 20개 기업이 사업 모델을 제안해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라며 “2주 가량 차를 타보고 만족하면 계약하고 전기차 관련 사업에 필요한 다양한 컨설팅을 지원한다”고 말했다.
코펜하겐에는 리스·렌털·카셰어링뿐만 아니라 물류·유통에도 새로운 사업모델이 등장했다. 민간기업 주도로 전기차 기반 ‘시티로지스틱스(City Logistics)’ 물류 사업이 추진 중이다. 주요 도시별로 물류교통 체계를 전기차(전기트럭 등)로 교체하는 새 사업모델이다. 도시 물류를 위해 지방·외곽에서 진입하는 차량에 대해 도시 진입 직전에서 전기차로 교체하는 체계다. 도시 인근 집합시설 거점을 활용해 도시 구역별로 물류 분류 후 전기차 한대로 다수 거래처에 옮기거나 배송하는 방식이다.
다수 차량이 도시로 유입되는 것을 막아 교통 체증을 감소시키면서 도시 물류는 전기차를 이용한다. 이와 함께 스마트그리드 기반 충전인프라 도입도 추진된다. 덴마크는 이미 2010년 세계 최초로 자연을 활용한 ‘태양광+풍력’ 기반 충전인프라를 도시 전역에 구축하는 사업을 시도했다. 이스라엘 협력업체 부도로 사업은 중단됐지만 덴마크기술공대 등 산학연이 연계해 스마트그리드 기반 충전인프라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덴마크 보른홀름 지역 풍력발전에서 생산된 전기로 전기차 충전인프라를 구축하는 ‘에디슨(EDISON) 프로젝트’도 진행되고 있다. 단순한 인프라 구축뿐만 아니라, 전기차 수용 증가에 따른 효율적인 에너지 관리가 시도되고 있다.
코펜하겐(덴마크)=
【표】북유럽 국가별 전기차 지원정책
[대박스]
핀란드 전력회사 포텀(Fortum)은 북유럽 충전인프라 사업자 위세를 떨치고 있다. 포텀은 핀란드와 노르웨이, 스웨덴 등 160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하며 북유럽에 풍력발전소 등 각종 발전소를 가동중이다.
포텀은 유럽시장 처음으로 전기차 충전서비스에 시간제를 도입하는 차별화 전략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대다수 국가 충전서비스 시장이 충전에 따른 전기사용량(㎾당) 기준으로 과금하지만, 포텀은 충전·주차와 상관없이 시간에 따라 서비스 이용료를 부과하는 방식을 택했다. 계절·시간에 따른 전력 부하와 상관없이 완속(7㎾)·급속(50㎾)충전기 사용에 따라 분당·시간당 요금제가 적용된다. 때문에 충전을 이유로 전기차 전용 주차장을 점유하는 이용자를 줄이면서, 충전소 이용률은 높이고 충전설비 관리·운영 효율까지 향상됐다.
포텀은 충전인프라 확장에도 차별화를 꾀했다. 충전소에 필요한 전력은 포텀이 제공하지만, 협력사 요구에 따라 다양한 형태 사업 모델을 적용한다. 포텀은 맥도널드·ABC 등 프랜차이즈 업체부터 주차장 서비스·완성차 대리점·호텔 체인·쇼핑몰 업체 환경에 맞게 사업 모델을 다각화했다. 이들 사업장 환경에 따라 충전기도 ABB·GARO 등 다수 제조사로 부터 주문자생산방식(OEM)으로 제공하면서, 운영 환경에 따른 요금제와 정산 방법까지 다양화시켰다.
포텀은 노르웨이 충전인프라 시장 25%를 점유하며 북유럽에 급속충전소 100곳을 포함해 400여 충전소를 운영하거나 구축하며 5000명 이상 정규 회원을 확보했다. 회원이 원하면 월별이나 시간별 정산방법을 선택할 수 있고, 고객 사용패턴에 따라 앱이나 온라인으로 이용 가능한 충전소 위치 등을 안내한다. 또 충전소 별 이용정보를 분석해 해당 운영사업자에 효율적 운영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라미 실버리 포텀 충전분야 지역 매니저는 “킬로와트(㎾) 기준 요금제 보다 분 단위로 바꿨을 때 충전 이용 시간이 줄면서, 기다리는 불편함이나 충전소를 주차장으로 이용하는 운전자도 크게 줄었다”며 “핀란드 전국 39곳 충전소에서 다양한 실증을 통해 서비스 개선점 뿐 아니라 충전기술 개발이나 충전요금 지불 시스템, 겨울철 충전 문제점 등을 연구해 서비스 질을 높여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