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3주년 특집2] `기술의 등대` 현대·기아차 중앙연구소

# 경기도 의왕시에 자리 잡은 현대·기아차 중앙연구소는 현대차그룹 차세대 먹을거리를 책임지는 연구조직이다. 엔진 효율 향상부터 친환경차 및 자율주행차 개발, 운전자 편의 향상 등 광범위한 영역을 담당한다. 핵심 소재부터 완성차에 이르기까지 미래 기술 진화 방향을 예측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기술의 등대’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 시장 개척 작업도 이곳에서 출발한다.

[창간 33주년 특집2] `기술의 등대` 현대·기아차 중앙연구소

지난 2009년 설립된 중앙연구소에는 190여명이 근무한다. 현대·기아차 연구개발 거점인 남양연구소가 양산 차 개발에 집중한다면 중앙연구소는 미래 선행 기술을 담당한다. 초기에는 요소 기술에 집중했지만 최근에는 시스템 단위로 검증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 양산 수준의 핵심 기술을 개발한다.

중앙연구소는 △신소재연구팀 △환경에너지연구팀 △지능형자동차연구팀 △인간편의연구팀으로 구성된다. 신소재연구팀은 차량 무게를 줄일 수 있는 경량 소재 개발에 집중한다. 대표적 경량 소재인 알루미늄 특성을 더욱 높이고 접합 신기술 등을 개발하는 것이 주력이다. 환경에너지연구팀은 수소연료전지차 원가를 낮추는 데 가장 중요한 백금 촉매 저감 및 대체 기술 개발을 주도한다. 장기적으로 디젤 엔진에 들어가는 백금 소재보다 적게 만드는 것이 목표다. 차량 썬루프에 태양광 전지를 접목해 전기를 얻는 기술 개발도 담당한다. 최근 글로벌 완성차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자율주행 기술 개발은 지능형자동차연구팀이 맡는다. 인간편의연구팀은 인간공학을 바탕으로 차세대 사용자경험(UX)과 휴먼-머신인터페이스(HMI)를 고도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중앙연구소를 총괄하는 임태원 상무는 “중앙연구소 임무는 미래 자동차 진화 방향에 따른 그룹 차원 기술적 진로를 설정하는 등대 역할과 핵심 기술을 양산 수준까지 고도화하는 것”이라며 “적은 인력이지만 책임감과 연구의 질을 높여 차세대 기술을 선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상무는 2013년 현대자동차가 세계 최초로 양산에 성공한 투싼 수소연료전지차(FCEV) 개발을 주도한 인사다. 그 당시 경쟁사 5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연구 인력을 이끌고 FCEV 양산을 이끌어냈다. 인력 규모보다 연구 질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직접 증명한 셈이다. 이 같이 도전적 연구개발 철학이 중앙연구소를 지배한다.

가장 당면한 과제는 연비 향상을 위한 요소 기술 개발이다. 현대·기아차는 2020년까지 평균연비를 25% 개선한다는 목표 아래 내연기관 효율 향상과 친환경차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원가를 얼마나 낮출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중앙연구소가 엔진 마찰을 저감시켜 소모되는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하는 배경이다. 또 백금 촉매 저감 및 대체 기술은 수소연료전지차 원가를 낮춰 판매를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2020년을 전후해 상용화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자율주행 기술 개발도 중요하다. 교통혼잡 구간에서 안전한 자율주행과 협로구간주행지원 등은 이미 중앙연구소 연구차량에 탑재돼 시스템 안정화 작업을 하고 있다. 중앙연구소는 차세대 자율주행 시스템 핵심으로 카메라 센서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는 카메라 센서와 레이더 및 라이다 센서를 혼용하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카메라 센서로 주변 상황 인식을 수렴한다는 전략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더욱 편리한 자동차를 만드는 것도 과제다. 향후 글로벌 자동차 업체 간 차별화 포인트로 사용자경험(UX)이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기술을 접목해야 편리하고 안전하게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조작 버튼 크기와 위치를 표준화하고 새로운 입력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 중앙연구소 역할이다. 실제 중앙연구소가 연구하는 선행기술을 모두 적용해 테스트하는 ‘R카’에는 자연스런 터치 방식으로 멀티미디어 기기를 제어할 수 있는 ‘원형 조작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중앙연구소는 연구인력 중 SW 인력이 3분의 1을 차지한다. 향후에는 그 비중을 더욱 높인다는 전략이다. 차량 전장화에 대비하고 자율주행 및 운전자 인식 기술을 고도화하는 것은 모두 SW 혁신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임태원 상무는 “기존 연구 영역은 물론 새로운 먹을거리 발굴을 위해 SW를 중심으로 연구인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것”이라며 “자동차에만 머물지 않고, 기존에 확보한 제어 및 설계 기술을 바탕으로 보조 로봇 개발 등 신시장 개척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고 강조했다.

중앙연구소 인간편의연구팀 임무는 ‘사람을 연구하는 것’이다. 현대·기아차가 미래 먹을거리로 개발하고 있는 기술은 바로 사람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음성인식, 운전자 상태 감지 등을 통해 운전자와 소통하는 차세대 인터페이스 개발과 자동차 제어 기술을 근간으로 한 보행 보조 로봇 개발도 인간편의연구팀이 주도한다.

최서호 인간편의연구팀장은 “앞으로 자동차 업계의 중요한 차별화 포인트는 바로 운전자 사용자경험(UX)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좌우할 것”이라며 “운전자가 시선은 도로에 두고, 손은 스티어링휠을 잡은 상태에서 각종 기능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조작할 수 있는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는 운전자가 언어를 이용해 자동차와 ‘소통’하는 것이 지향점이다. 애플과 구글 등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자연어 기반 음성인식을 상용화했지만, 자동차는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운전자 안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차량 제어는 온전히 자동차 업체가 기술 주도권을 쥐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 팀장은 “음성을 통한 차량 제어는 현대·기아차가 독립적으로 개발하고 있으며 최근 관련 선행 연구를 강화하고 있다”며 “향후 10년 내 상용화가 예상되는 운전자 상태 감지 시스템도 순차적으로 양산차에 적용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환자 등 보행이 힘든 사람을 보조하는 로봇 개발도 결국 자동차 회사가 인간을 연구한 결과물이다. 로봇 설계 및 제어 등 핵심 역량은 자동차 연구개발 과정에서 축적된 노하우가 담겼다. 최근 미국에서 최초로 공개된 외골격형 착용 로봇 ‘H-LEX’ 개발도 인간편의연구팀이 주도했다.

최 팀장은 “H-LEX는 현재 임상 실험을 진행 중이며, 이 결과를 바탕으로 시스템을 안정화하고 대량 생산을 위한 원가 절감이 남은 과제”라며 “자동차 설계와 제어 기술을 바탕으로 사람을 더욱 이롭게 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데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앙연구소가 선행 개발 중인 차세대 기술은 실험용 차량에 탑재돼 시스템을 검증하고 양산 가능한 수준까지 기술을 고도화하는 작업을 거친다. 실제로 중앙연구소에서 직접 체험한 파일럿 모델 ‘R카’는 우리가 미래에 만날 자동차를 가름하기에 충분했다.

◇자율주행 기술

R카에는 전면 윈드실드와 차량 앞 뒤 범퍼 등에 카메라, 레이더 및 라이다 센서가 다수 장착돼 있다. 이 센서들은 차량 주위를 인식해 안전한 자율주행을 돕는다. R카는 교통 정체 시 단일 차선을 유지하며 교통 상황에 맞춰 자동으로 주행하는 교통혼잡구간지원(TJA) 기능과 차량이 주행하기에 좁은 구간을 자율주행으로 빠져나오는 협로구간지원(NPA) 기능이 장착됐다. 고속도로 및 일반 도로 자율주행도 가능하다.

◇친환경 기술

R카는 배기가스가 전혀 없는 투싼 수소연료전지차를 기반으로 한다. 중앙연구소는 수소연료전지차 원가를 낮출 수 있는 촉매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붕에는 태양광 전지를 장착해 전기를 직접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검증한다. 차량 내장재에 사용된 친환경 소재는 ‘먹지 않는’ 식물 자원을 활용해 100% 재활용이 가능하다.

◇ 안전 및 편의 기술

스티어링휠 바로 뒤에는 운전자 시선을 모니터링해 상태를 감지하는 센서가 장착됐다. 눈동자 떨림까지 인식해 심정지 등 긴급 상황 시 차량을 안전하게 정지시키는 기능(ESS)도 가능하다. 뒷범퍼 속에는 음성 센서를 장착, 소리로 주변 상황을 인식하고 운전자에게 경보를 보내는 기능을 테스트한다. 또 헤드업디스플레이(HUD)에 증강현실(AR)을 접목해 주행 경로 안내는 물론 주변 상황에 맞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중앙연구소가 특허를 취득한 원형 터치 제어 시스템도 시선을 끈다.

양종석기자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