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중기·에너지 예산 축소... R&D도 사실상 줄어

정부가 내년 연구개발(R&D) 예산을 사상 처음 동결한다. 2017년까지 국가 R&D 투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 달성이 불투명해졌다.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 예산은 지난해보다 줄여 미래 성장동력 및 창조경제 위축이 불가피하다. 반면에 복지와 고용안정에는 123조원을 투입한다.

정부는 8일 국무회의에서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3.0%(11조3000억원) 늘어난 386조7000억원으로 확정, 11일 국회에 제출한다. 국회는 12월 2일까지 내년 정부 예산안을 처리한다.

정부는 “내년 예산은 재정 건전성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경제 활성화를 위한 재정 역할을 강화할 수 있는 수준으로 편성했다”고 설명했다.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재정 지출 확대가 불가피하지만 3년 연속 세수결손을 기록하는 등 재정 건전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는 사실을 감안해 ‘적정한 수준’으로 예산을 편성했다.

증가율 3.0%는 2010년(2.9%)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난 7월 추가경정 예산에 포함된 세출 6조2000억원과 기금계획 변경 3조1000억원을 포함하면 실질 증가율은 5.5%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12개 세부 분야 중 예산을 축소한 분야는 산업·중소기업·에너지(16조1000억원, 2.0% 감소)와 SOC(23조3000억원, 6.0% 감소)다. 정부 설명대로 SOC 예산은 올해 추경에 이미 반영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줄어든 부문은 사실상 산업·중소기업·에너지뿐이다. 올해 1438억원을 배정한 ‘해외자원개발 성공불 융자제도’는 도덕적 해이, 대기업 위주 지원 지적을 반영해 내년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중소기업청·특허청 모태펀드출자(올해 1770억원) 예산도 추가 정부 출연이 필요 없다고 판단해 전액 감액했다.

R&D 예산은 18조9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0.2% 늘었다. 물가 인상률 등을 감안하면 사실상 사상 처음 예산을 삭감한 것으로 해석된다. 통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2000년 이후 R&D 예산은 매년 10% 이상 증가율을 보였다. R&D 예산 확대를 주창한 박근혜정부로서도 이례적 결정이다. 방문규 기획재정부 2차관은 이 같은 여론을 감안, “지금까지 정부는 R&D 지출을 세계에서 가장 획기적으로 늘려왔다”며 “한 단계 도약을 위한 숨 고르기 시기로 봐달라”고 말했다.

예산을 늘린 분야 중에는 보건·복지·노동, 문화·체육·관광, 국방 분야가 눈에 띈다. 보건·복지·노동에서는 일자리 확대에 가장 역점을 뒀다. 일자리 예산은 15조8000억원을 배정해 증가율 12.8%를 기록했다. 문화·체육·관광에 작년보다 7.5% 늘어난 6조6000억원을 투입해 국정기조인 문화융성을 본격화한다. 국방 예산은 4.0% 많은 39조원을 배정해 북한 위협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내년 재정 건전성 악화는 불가피하다. 재정적자는 37조원으로 올해(33조4000억원)보다 커진다.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0.1%를 기록해 사상 처음 40%대를 넘어설 전망이다. 내년 총수입은 391조5000억원으로 올해보다 2.4%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내년 실질 경제성장률은 종전보다 0.2%포인트 낮은 3.3%로 내다봤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를 살리는 게 궁극적으로 재정 건전성을 높이는 방법”이라며 “국가 부채 증가에 걱정이 있지만 경제를 살리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