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정비업소 ‘범용 고장진단기’ 사용을 활성화하려는 정부 정책이 수입차 업계 외면으로 표류하고 있다. 수입차 업계가 자동차 제작사 정비 정보 공개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직영 정비센터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주장과 충분한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부딪힌다.
9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지난 7월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을 개정 공포한 데 이어 관련 고시 개정을 추진 중이다. 완성차 제조사가 범용 고장진단기 제작에 필요한 정보를 공개하도록 해 직영 정비센터 외 일반 정비업소 이용 편의를 높이는 것이 골자다. 정비 시장 가격 경쟁을 유도해 자동차 수리비를 인하하려는 취지다.
고장진단기는 자동차 센서와 전자제어장치(ECU) 등을 일괄 검사하는 장비로 최근 자동차 전장품 비중이 급증하며 정비업계 필수품이 됐다. 제조사별로 진단 프로토콜이 다른 전용 고장진단기와 다수 제조사 프로토콜 사용이 가능한 범용 고장진단기로 나뉜다. 범용 고장진단기를 제작하려면 자동차 제조사로부터 프로토콜을 넘겨받아야 한다.
문제는 수입차 업계가 이 프로토콜 제공을 거부한 채 2018년까지 유예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이 개정됐지만 정비 업계 실익은 거의 없는 셈이다. 여러 제조사 차량을 모두 수리해야 하는 일반 정비업체에는 범용 고장진단기가 필수다.
7월 개정한 시행규칙에는 전용 고장진단기 데이터 제공 의무만 담겼고 범용 고장진단기 데이터 제공 여부와 범위는 고시에 담기로 한 상태다. 개정 시행규칙은 전용 고장진단기 프로토콜 제공과 함께 정비 지침서 공개, 정비 교육 시행도 의무화했다.
수입차 업계는 고시 개정을 위한 정부와 논의 과정에서 준비 기간 부족을 이유로 적용 유예를 요청했다. 일부 업체는 자국 법과 형평성 문제를 거론하며 대사관을 통해 통상 마찰 위험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육현 한국자동차전문정비사업조합연합회장은 “일반 정비업체는 여러 브랜드 차량을 모두 수리해야 하는데, 브랜드별로 전용 고장진단기를 구매하면 비용이 수억원에 이른다”며 “이 때문에 범용 고장진단기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수입차 업계 외면으로 법 개정이 답보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완성차 제조사가 하루 빨리 범용 고장진단기 제작에 필요한 정보를 공개하고 직영 정비센터 기득권을 내려놔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수입차 업계는 브랜드별로 사업 규모 격차가 큰 만큼 일괄적인 법 적용은 무리라고 주장했다. 정비지침서 제공과 정비 교육 실시 등 의무 사항이 많아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 관계자는 “수입차는 브랜드별로 사업 규모 격차도 크고 모든 의무사항을 일괄적으로 준수하려면 충분한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며 “아직 정부 고시의 구체적인 내용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내부 논의를 거쳐 유예를 요청한 것”이라고 밝혔다.
국토부는 일부 수입차 업계가 제기한 자국 법과 형평성 문제는 마찰 소지가 없다고 봤다.
국토부 관계자는 “수입차 업계가 제시한 타국 법을 살펴본 결과 2018년부터 적용되는 것은 정보의 제공 방법일 뿐 제공 여부 자체와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여러 업계 입장을 조율해 고시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