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LG전자가 잇따라 스마트TV에 스트리밍 영상 서비스(OTT)를 기본 탑재한 새로운 미디어 서비스를 선보인다. 고품질 방송 콘텐츠로 스마트TV 사업을 차별화하겠다는 포석이다.
케이블TV, IPTV 등을 중심으로 형성된 전통적 유료방송 시장 구조는 크게 흔들릴 것으로 전망된다. TV 제조사나 OTT 사업자가 직접 시청자에 방송 콘텐츠를 제공하면 중간 유통망 역할을 해 온 플랫폼 사업자가 쇠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시장 진입 규제, 망 중립성, 플랫폼 중립성, 코드커팅(유료방송 가입 탈퇴) 등 다양한 쟁점을 놓고 공방이 예상된다.
◇방송 시장, 경계가 사라졌다
OTT는 다양한 영상·음성 콘텐츠를 범용 인터넷망으로 전송해 재생하는 서비스다. 그동안 국내 방송·통신 업계는 다양한 OTT 플랫폼을 선보이며 시장 주도권 쟁탈전을 벌였다.
CJ헬로비전 티빙, 에브리온TV, 지상파 콘텐츠연합플랫폼(CAP) 푹, IPTV 3사 모바일 IPTV 등이 대표적 OTT 서비스다. 최근에는 인터넷 포털과 LG전자, 삼성전자 등 TV제조사까지 OTT 시장에 가세했다. 미국 최대 OTT 사업자 넷플릭스는 내년 초 한국 시장 진입을 선언하며 토종 업체와 무한 경쟁을 예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스마트TV와 OTT 서비스에 네거티브·최소·자율 규제를 적용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스마트 미디어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해 산업 진흥에 장애가 되는 규제 장벽을 제거하겠다는 방침이다. OTT 서비스를 상용화할 수 있는 사업자라면 누구나 방송 콘텐츠 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셈이다.
유료방송 업계는 이 같은 정부의 스마트미디어 육성 방안을 환영하면서도 시장 진입에 관한 최소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증받지 않은 OTT 사업자가 시장에 난립하면 시청자 피해를 유발하는 것은 물론이고 방송시장 질서를 붕괴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스마트TV OTT는 제조사와 통신사, 방송채널사용사업자 간 망중립성·플랫폼 중립성 분쟁이 발생할 여지가 높다고 우려했다.
유료방송 관계자는 “LG전자·삼성전자는 스마트TV 자체를 OTT로 활용하면서 방송 시장에 진입했다”며 “방송 사업자와 분쟁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플랫폼·망중립성 논란 촉발되나
TV 제조사가 OTT 서비스를 직접 운영하게 되면서 망중립성을 둘러싼 논란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스마트TV OTT가 일반 TV와 달리 유료 채널·콘텐츠를 제공하면서 접속 트래픽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2년 KT가 삼성전자 스마트TV가 과도한 트래픽을 초래한다며 망을 차단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KT는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하는 서비스를 방치하면 통신 서비스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물론이고 최악의 경우 블랙아웃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망중립성은 유무선 통신망 사업자가 △합리적 정보 제공 △합법적 콘텐츠·기기 이용 △네트워크 트래픽 전송 비차별 △합리적·합법적 목적 네트워크 관리 등을 허용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통신사가 운영하는 IPTV 업계는 스마트TV OTT 망중립성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현재 스마트TV OTT의 정확한 트래픽 수치가 파악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국제적으로 망중립성 논의가 계속되는 것을 감안하면 당분간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IPTV 관계자는 “OTT 애플리케이션 하나로 망중립성 문제를 판단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오히려 스마트TV OTT가 제한된 PP 채널 수를 제공한다는 것을 감안해 플랫폼 중립성 준수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플랫폼 중립성은 플랫폼 운영 사업자가 콘텐츠 사업자를 차별하면 안 된다는 원칙이다. 예를 들어 A라는 플랫폼 사업자가 B라는 특정 콘텐츠에 특혜를 주면 플랫폼 중립성에 어긋난다.
LG전자와 삼성전자는 종편PP와 CJ E&M 콘텐츠를 핵심 방송 프로그램으로 제공하며 각각 50개, 33개 채널을 제공한다. 유료방송 업계는 TV 제조사가 앞으로 OTT 사업 범위를 확대하면 콘텐츠 파워가 미미한 중소PP는 협력 대상에서 제외돼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OTT는 방송법 적용을 받지 않는 중소PP 편성 비율을 강제하기도 어렵다.
LG전자 채널 플러스에 입점한 한 PP 관계자는 “제조사가 규모가 큰 PP를 중심으로 입점 여부를 타진한 것은 사실이지만 PP 스스로 협력 여부를 결정했다”며 “향후 스마트TV OTT 생태계가 확대되면 중소PP도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드커팅 현실화되나
유료방송 셋톱박스를 배제한 스마트TV OTT가 방송 시장에 미칠 파급력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코드커팅’ 발생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코드커팅은 유료방송 시청자가 가입을 해지하고 인터넷TV, OTT 등 새로운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현상이다.
미국은 넷플릭스, 구글 크롬캐스트 등 OTT 사업자가 등장한 이후 매년 ‘코드커터(가입 해지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인터넷 사용에 익숙한 20·30대 연령층을 중심으로 OTT 서비스 수요가 증가하는 것을 감안하면 한국에서도 코드커팅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은 높다.
유료방송 업계는 스마트TV OTT나 미국 넷플릭스가 한국에 코드커팅 현상을 유발할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20% 수준에 불과한 국내 유료방송 월 요금을 감안하면 가입 해지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스마트TV OTT가 무료로 방송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을 감안해 한국도 미국처럼 코드커팅 현상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했다.
삼성전자 TV 플러스는 케이블TV, IPTV 등 유료방송 플랫폼에서 월 1만원대 패키지 요금으로 볼 수 있는 CJ E&M 인기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한다. LG전자 채널플러스는 별도 유료방송 요금 없이 종편PP 채널 등을 시청할 수 있다.
유료방송 관계자는 “그동안 돈을 내고 구매했던 콘텐츠를 무료로 시청할 수 있다는 강점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을 것”이라며 “양 사 모두 지상파 채널은 제공하지 않지만 지상파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20·30대를 주요 타깃으로 삼으면 세컨드TV로서 판매량을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내년 초 한국 상륙을 선언한 넷플릭스도 코드커팅 현상을 예고하고 있다. 이달 초 일본에서 정식 서비스를 개시한 넷플릭스는 최저 650엔(약 6500원)으로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을 선보였다. 한국 디지털 유료방송 요금이 월 1만원대인 것을 감안하면 35% 이상 저렴하다. 한국에서도 이보다 낮거나 비슷한 요금으로 서비스를 개시할 것으로 보인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