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용 기술에서 출발한 무인항공체 ‘드론’이 최근 민간 분야에서 다양한 활용도로 신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고성능 카메라를 달아 항공 촬영을 하는 것은 이미 보편화됐으며 공공안전과 재난방재, 유통·물류, 레저 업계에서도 다양하게 응용되고 있다.
급성장하는 민간 드론 시장은 현재 DJI로 대표되는 다양한 중국 업체와 미국 3D로보틱스, 프랑스 패럿 등 해외 업체가 시장을 대부분 선점했다. 아쉽게도 국내 민간 드론 산업은 이제 걸음마를 떼는 수준. 국내 제조업 기반과 품질 경쟁력을 바탕으로 국산 드론 개발을 위한 노력 또한 치열하다. 드론용 전문 부품부터 창공을 가르는 완제품까지 차세대 산업 동력이 커가는 드론 개발 현장을 둘러봤다.
인천시 송도구 스마트밸리 한 켠에 자리한 ‘드로젠’은 고성능 스포츠 드론 ‘로빗(LOBIT)300GT’와 ‘로빗320R’를 개발, 최근 첫 일본 수출 실적을 올렸다. 드론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자재와 부품이 국내에 전무한 상황에서 부품업체와 협력해 전용 부품을 직접 개발하고 생산해 일군 성과다.
빠른 제품 개발과 비용 절감을 위해 드론 산업이 발달한 중국 등에서 소재와 부품을 수입할 수 있었지만 최대한 국산 부품을 고집했다. 차별화된 품질 경쟁력은 물론이고 장기적으로 자체 드론 부품 공급망과 생태계를 갖추기 위해서다.
이흥신 드로젠 대표는 “동체 프레임을 이루는 카본 소재를 고르기 위해 중국산과 국산을 비교해 보니 무게와 가격에서 딱 30%씩 차이가 났다”며 “테스트 결과 국산 카본으로 만든 프레임은 50m, 100m 상공에서 떨어뜨려도 큰 손상이 없었지만 중국산 카본은 종이처럼 찢어지는 것을 보고 국산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빠른 속도로 비행하는 스포츠 드론 특성상 우수한 내구성을 택했다는 설명이다.
상당히 비싼 취미활동인 드론은 기본 구입비용 외에도 낙하와 충돌 등으로 수리가 필요한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핵심 부품 등을 담고 있는 동체 프레임이 무사하면 그나마 적은 비용으로 수리해 다시 사용할 수 있다.
이 대표는 “성능·품질 문제도 있지만 원활한 추가 부품 조달이나 납기 차원에서도 부품 국산화는 반드시 필요했다”고 강조했다. 납기 일정을 정확히 맞추는 국내 업체와 달리 중국에 외주 생산을 맡겼다가 한두 달씩 납기가 지연되며 낭패를 보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드론 사업에 뛰어들기 전 드론 커뮤니티에 공동제작 형태로 로빗을 공급하던 시절 이 대표에게 ‘택배 사기꾼’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다.
◇취미로 시작해 일본 수출까지…이용자 입장 대거 반영
미국, 중국, 일본 등 해외 시장에 비해선 아직 규모가 작지만 취미활동을 위한 국내 드론 수요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대부분 해외 수입품이라 원활한 제품·부품 수급이 어렵고 제대로 된 고객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동호인 사이에선 기성 제품에 개선점을 반영한 공동제작 형태 기체 제작이 종종 이뤄졌다. 이흥신 대표 자신도 취미생활로 드론을 시작해 외산 제품 품질과 성능, 비용 등에 아쉬움을 느끼고 직접 개발에 나선 경우다. 현재 드로젠에서 함께 드론을 개발하고 있는 임직원 9명 대부분이 드론 한두 대는 직접 조립하고 만들어본 경험이 있다. 본격적으로 법인을 설립하고 뛰어들기 전까진 각자 퇴근 후 저녁 8시에 새벽 6시까지 조립하고 다시 출근하는 일상이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처음 시동을 걸자마자 멀리 하늘로 나아가서 돌아오지 않는 제품도 있었다. 바람이 바다 방향으로 불고 있었지만 갑자기 떨어질 것을 우려해 배터리가 모두 소모되는 30분 동안 대피해야 했다.
드론 커뮤니티에선 이용자 사이에 인기를 끌며 응원도 있었지만 미숙한 배송 처리에 비난도 적지 않았다. 제대로 된 사업 체계를 갖추기 위해 법인 설립과 양산을 결정한 이유다.
◇국내 부품 전문업체 제조 노하우가 성능 좌우
제품 성능 향상과 양산 준비에는 국내 부품업체 협력이 큰 도움이 됐다. 프레임 가공과 금형 사출, BLDC모터 설계, 프로펠러 제조 등 각 분야 전문 업체가 개발에 참여함으로써 기존 기술력과 노하우를 드론에 접목할 수 있었다.
로빗 개발 초창기에는 캐노피 제작을 위한 금형을 직접 깎아 수작업으로 만들었다. 고속으로 직진 비행이 가능하도록 측면에 홈을 파고 공기역학적 디자인도 가미했다. 하지만 양산 준비에 들어가자 디자인이 발목을 잡았다. 대량 사출 장비로는 복잡한 디자인을 그대로 구현하기 어려웠다.
이 대표는 “제조업 경험과 전문성이 부족한 상태에서 개발 단계와 양산 단계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소회했다. 개발 자체도 어려웠지만 개발한 제품을 자동화된 설비에서 만들 수 있도록 조정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았다는 설명이다.
동호인 공동제작 수준에서 사업성을 갖춘 본격적인 양산 단계로 발전도 쉽지 않았다. 금형 제작 등 비용 부담은 물론이고 드론용 부품을 맞춤형으로 대량 생산해 줄 전문 업체 물색에도 어려움이 컸다.
드론을 신사업으로 준비하고 있던 중소 부품업체 이에스브이(ESV)와 손잡고 드론 제조라인을 꾸렸다. 수소문 끝에 전국 각지의 기술력 있는 전문업체를 찾아 공동개발 참여를 설득했다.
카본 소재 기반 프레임 가공은 인천 임가공 전문업체 CMS 도움을 받았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장비 부품 등 관련 분야 28년 업력을 가진 회사다. 이광한 CMS 대표가 매일 밤 직접 드로젠을 찾아 제품 개발을 조언했다. 제조 설비 스펙을 고려한 부품 크기 조정 등 개발 단계에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제조업 양산 노하우를 보탰다.
드론용으로 자체 개발한 BLDC모터는 전북 BLDC모터 전문업체가 공급을 맡았다. 충분한 물량 보장이 힘들어 발주가 쉽지 않았지만 수차례 설득 끝에 만족스러운 품질의 모터를 안정적으로 수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프로펠러는 부천 사출전문업체가 생산하고 있다. 향후 꾸준한 수급이 필요한 부품인 만큼 직접 공장을 찾아 설비 현황을 확인했다. 탄성과 강도 등 최적의 비행 성능을 낼 수 있도록 유리섬유 혼합 비율과 외형 설계 등 일일이 테스트를 거쳤다.
핵심부품인 플라잉컨트롤(FC)보드와 내부 소프트웨어도 자체 개발 마무리 단계다. 연내 제품에 탑재되면 몸통뿐만 아니라 머리까지 토종 스포츠 드론이 날아오르는 셈이다.
◇안전사고 예방 위한 개발 환경도 필수
개발실 곳곳에는 흙먼지를 수북이 뒤집어 쓴 흉터투성이 반조립 상태 드론이 눈에 띈다. 비행 테스트 중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나무와 충돌하는 등 고난을 겪었다.
드로젠이 입주한 스마트밸리 주변은 아직 개발이 한창 이뤄지고 있어 다소 황량한 분위기지만 드론 개발에는 유리한 입지라는 평가다. 인적이 드물고 넓은 벌판이 곳곳에 있어 성능 검증 중인 드론을 안전하게 날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드론 개발 과정에 아찔했던 상황도 수차례 겪었다. 자체 개발한 모터 출력을 테스트하던 중 프로펠러가 힘을 이기지 못하고 깨져나가며 곁에 있던 개발자에게 날아간 것이다. 다행히 큰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손등과 팔목에 상처를 입었다.
드론 개발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김병석 이에스브이 부장은 “드론 사업을 함께하면서 제일 먼저 배운 것이 바로 날아오는 드론 피하기”라며 “성능이 뛰어난 만큼 사소한 오차가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안전사고 예방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