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전길남 KAIST 명예교수

[특별인터뷰] 전길남 KAIST 명예교수

33년 전인 1982년 5월. 경북 구미시 전자기술연구소(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전길남(당시 39세) KAIST 교수와 연구원들이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화면에서 ‘Snucom’이라는 글자가 하나씩 뜨자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서울대와 구미 전자기술연구소 간 컴퓨터 통신이 처음으로 이뤄진 것이다.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인터넷이 개통된 역사적인 순간이다.

프로젝트를 추진한 전길남 교수는 우리나라가 초고속 인터넷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초석을 만든 주인공이다. 그의 이름 앞에 ‘대한민국 인터넷의 아버지’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지난 8일 서울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만난 그는 편한 노타이 차림으로 나왔다. 멀리서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엔지니어’ 다운 모습이었다.

수차례 연락 끝에 만난 그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일본·중국 4개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KAIST 명예교수지만 수업은 없다. 대신 1년에 국내외에서 20번 퍼블릭 강연(스피치)을 하고 있다. 주로 살고 있는 곳이 어딘지를 묻는 기자의 첫 질문에 “사이버스페이스”라고 답할 정도로 인터넷 대가다운 답변을 내놓았다.

손에는 스마트폰 하나가 전부다. 모든 자료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서류 가방은 따로 들고 다니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터넷 대중화에 따른 위협 요인부터 모바일 중심 시대 과제, 국내 SW산업 성장 한계 등 폭넓은 영역에 걸쳐 오랜 기간 쌓인 식견을 드러냈다. 국내 대표 기업 삼성과 LG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어떤 전략을 펼쳐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아낌없이 조언했다.

1982년은 전자신문이 ‘전자시보’란 제호로 첫발을 내디딘 해다. 우리나라 인터넷 역사의 시작점과 동일선상에 있다. 전자신문 ‘33주년 특별인터뷰’로 전길남 KAIST 명예교수를 만났다.

[특별인터뷰] 전길남 KAIST 명예교수

-일본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고, 대학 졸업 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일본이나 미국에서의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왜 한국행을 택했나.

▲사람들이 오해를 많이 하는 것 같다. 미국에서 편한 생활을 왜 접고 한국을 택했는지에 대해 궁금해 한다. 하지만 난 어릴 때부터 대학을 졸업하면 조국에 가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본에서 대학을 마친 뒤 한국에 가려 했더니 지인들이 미국이나 유럽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에 가는 게 더 낫다고 했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싶었다기 보다 한국에 가기 위해 미국에서 공부를 했던 것이다. 부모의 반대도 있었지만 우리나라 발전에 무엇이라도 기여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1979년 정부 초청 과학자로 귀국했다. 당시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던데.

▲당시 우리나라가 처했던 상황을 고려하면 매우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석유 파동 때문에 난방도 제대로 못했다. 심지어 청와대에서도 겨울 점퍼를 입고 있어야 했을 정도로 가난했다. 당시 정부에서 해외 과학자 300명을 유치했다. 미국에 있는 과학자를 오게 하려면 미국에서 누리는 혜택을 한국에서도 보장해 줘야 했다. 당시 우리는 대학교수 월급 2~3배를 받았다. 집과 차도 마련해줬다. 진짜 좋았던 것은 아이들을 원하는 학교에 보낼 수 있게 해준 것이다. 말 그대로 ‘특혜’였다. 과학 선진화를 위해선 인력 유치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당시 정부가 잘 알고 있었고, 또 실천으로 옮겼다.

-요즘 중국이 인력 유치에 적극적이다. 이를 통해 반도체 산업 등 국내 첨단 IT 산업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세련된 방법으로 산업 육성을 하고 있다. 사실 중국에 위협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근본적으로 경쟁이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묻고 싶다. 우리가 지금, 중국보다 앞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우리나라가 오판하고 있다. 냉정하게 볼 때 중국은 이미 기술 강국이다. 중국은 이미 달에도 갔고, 화성에 가는 유인 탐사우주선도 개발 중이다. 우리나라는 언제쯤 가능할 것으로 보는가. 인터넷 산업에서도 중국 알리바바, 바이두, 텐센트 등과 비교해 보면 우리 경쟁력을 바로 알 수 있다.

-중국의 무기, 최대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중국에서 소위 잘나가는 기업을 살펴보면 최고의사결정권자 절반 이상이 미국 실리콘밸리 출신으로 구성돼 있다. 우리나라 네이버엔 실리콘밸리에서 온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글로벌 경쟁력이 뒤처질 수밖에 없다. 미국 정보통신(IT) 첨단 산업단지 실리콘밸리에서 경험이 많다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엄청 크다. 네이버는 국내에서는 최고가 될 수 있겠지만 세계에서 10위안에 들긴 어렵다. 중국 기업은 앞으로 더 승승장구할 것이다.

중국 최대 인터넷 서비스 업체 텐센트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5년, 10년 뒤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세계 최고 기업이 경쟁하게 될 것인데, 텐센트는 지금 반세기 넘게 독점해 왔던 디즈니와 경쟁을 계획하고 있다.

-실리콘밸리를 만들기 위해 국내에서도 시도를 많이 해보려고 한다. 하지만 여의치 않다.

▲미국도 다른 지역에서는 못 만든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만들고자 한다면 얼마나 어렵겠는가. 실리콘밸리처럼 만들기보다 실리콘밸리와 경쟁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야 한다. 요즘 중국 베이징 중관춘에 글로벌 기업이 모여들고 있다. 벤처 기업이 엄청 생겨나고 있다. 베이징대와 칭와대가 실리콘밸리 스탠퍼드대 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 베를린에서도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판교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정부가 컨트롤해서는 안 된다. 벤처 기업과 투자자가 커뮤니티화되고 성공 사례가 만들어져야 한다.

[특별인터뷰] 전길남 KAIST 명예교수

-모바일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터넷 폐해에 대해 많이 언급되고 있다.

▲지난해 5월말 넥슨 개발자콘퍼런스에서 기조 강연을 했다. 발표를 마치고 질의를 받았는데 굉장히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다. 질문 중 하나가 온라인 게임이 우리나라 3대악 중 하나인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소위 가정 폭력, 마약과 같이 취급된 셈이다. 온라인 게임 분야는 우리나라가 SW 산업분야에서 유일하게 글로벌 경쟁력을 갖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SW 중요성을 그렇게 외치면서 왜 유일하게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분야를 죽이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최고 기술자가 모이도록 환경을 조성해줘야 하는 게 정부 역할 아닌가. 잘하는 것을 더 잘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산업으로 가지치기하면서 생태계를 확장해 나갈 수 있다.

-한국이 인터넷 거버넌스 논의에서 동떨어져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보통 표준, 거버넌스와 같은 논의는 미국이나 유럽이 주도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다른 나라는 따라가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인터넷 강국이면서도 이러한 인터넷 사회기반시설(인프라)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오히려 세계 흐름과는 달리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나라 중 한 곳이라서 걱정스럽다. 인터넷 거버넌스를 만드는 작업은 조심스럽다. 수십년 동안 활용될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엔 ‘애플’ 같은 회사가 없다.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재도 없다고들 많이 얘기한다.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창조적인 사람이 있다. 글로벌 기업도 있다. 온라인 게임을 보면 ‘리니지’는 굉장한 SW다. 만든 지 2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인기가 있다. 온라인 게임은 사용자환경(UI), 소프트웨어, 하드웨어가 복합된 어려운 분야다. 하나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다. 3개 분야 모두를 잘해야 하는 것이다. 넥슨, 엔씨소프트와 같은 기업들은 정말 존경받을 만하다. 국내에선 평가 절하돼 있다.

[특별인터뷰] 전길남 KAIST 명예교수

-스마트폰 산업 경쟁이 치열하다. 국내 업체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어떤 전략이 필요한가.

▲스마트폰으로 글로벌 기업이 되려고 하는 목표 자체를 바꿔야 한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 대단하다고 본다. 이렇게 이해하면 된다. 데스크톱 PC 시장은 IBM이 만들었고 델이 후발주자였다. 휴대전화는 모토로라가 시작했고, 노키아가 완성시켰다. 스마트폰은 애플이 시장을 열었고, 삼성이 뒤쫓았다. 삼성은 데스크톱 PC 시장의 델, HP와 같은 존재라고 보면 된다. 결국 PC 시장이 중국으로 넘어갔듯이, 스마트폰 역시 중국으로 넘어갈 것이다. 하지만 시장 포문을 처음 열었던 업체(첫 번째 게임)는 어떻게 전략적으로 가져나가는지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후발주자(두 번째 게임)는 시장을 개척한 업체와 같은 시도를 결코 할 수 없다. 때문에 삼성과 LG는 스마트폰이 아닌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에 도전하든지, 아니면 ‘패스트 팔로어’ 역할에 충실하는 게 맞다고 본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회사는 이 세상에 없다. 삼성과 LG는 기본적으로 하드웨어 회사다. 때문에 사용자경험(UX)이 중요한 스마트폰 산업에서 1등을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한 요구다.

-국내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각하다. 박사 과정 인력을 인도 등에서 데려올 정도다.

▲별로 신경 안 쓴다. 인기는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 아닌가. 한국 사람만으로 구성된 기업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고자 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이공계 학생이 없다면 인도에서 데리고 오는 게 낫다. 한국 사람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 그들이 국내 기업에 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현재 가장 중점을 두고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인터넷을 만들었던 집단의 한 멤버로서 책임도 있다고 본다. 다시 인터넷을 만든다면 이렇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 보안이 형편없다. 앞으로 더 나빠질 것이다. 세계적으로 인터넷 약정 등을 보완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앞으로 10년 이상이 걸릴 것 같다. 인터넷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책 세 권을 합쳐서 약 1000페이지가 넘는다. 30개국 100명 정도가 같이 쓰고 있는데, 이 가운데 30% 이상은 내가 쓰고 있다. 제대로 기록해 놓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후배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30년 정도 교수생활을 했다. 목표가 5년에 한 명 정도 나보다 뛰어난 후배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한 6명 정도는 배출한 것 같다. KAIST 연구실에서 악명도 높았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을 만들어야 했기에 박사과정 교육이 까다로웠다. 탈락률이 50%를 넘었다. 지금은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되겠지만 그런 목표를 세우고 인력 양성에 매진했으면 한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

[전길남 박사 프로필]

△1943년 1월 일본 오사카 출생

△1965년 일본 오사카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1967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대학원 전산학 석사

△1969∼1971년 미국 록스웰 인터네셔널 근무

△1974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 대학원 시스템공학 박사

△1976~1979년 NASA 기술연구원

△1979∼1982년 한국전자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

△1982∼2008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학과 교수, 2008년 정년 퇴임

△2008~현재 일본 게이오대학 특임교수, KAIST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