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20년전의 제조업에 대한 경고

이재용 부회장, 20년전의 제조업에 대한 경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1년 전(당시 삼성전자 과장) 일본 게이오대학 경영대학원(MBA)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석사 학위 논문 속 일본 제조업 분석이 지금 한국 제조업 현실과 너무 닮아 흥미롭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이었다. 1994년은 일본 ‘잃어버린 20년’의 시작점이다. 연구주제는 1980년대 일본 제조업의 급격한 산업 공동화 분석이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994년 일본 게이오대 경영대학원에서 수학하며 집필한 석사학위 논문 `일본의 산업 공동화의 분석과 그 대책 - 시스템 다이내믹스 모델을 이용하여 -` 서문 <사진=게이오기주쿠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994년 일본 게이오대 경영대학원에서 수학하며 집필한 석사학위 논문 `일본의 산업 공동화의 분석과 그 대책 - 시스템 다이내믹스 모델을 이용하여 -` 서문 <사진=게이오기주쿠대>

이재용 부회장 석사논문 ‘일본 제조업의 산업공동화에 대한 고찰’은 1985년 플라자합의 후 엔화 강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소니, 마쓰시타(현 파나소닉), 도요타 등 대표 제조기업의 해외진출을 분석했다. 일본 내 산업공동화 이야기다.

플라자 합의는 1985년 9월 미국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미국, 서독, 영국, 일본, 프랑스로 구성된 선진 5개국(G5) 재무장관이 달러화 강세를 시정하기 위해 합의한 조치다. 미 레이건 행정부는 재정적자 기조로 대일·대독 무역역조 현상이 이어지자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 평가절상을 유도했다.

일본은 엔고 현상이 나타나며 소니 등 주요 기업 해외 진출이 이어졌고 장기 불황에 빠졌다. 2012년 아베 신조 총리가 취임하면서 엔저를 기반에 둔 ‘아베노믹스’를 도입하기 전까지 계속됐다.

이 부회장은 서문에서 “급격한 엔고 현상으로 우려됐던 공동화가 일본에 현실화되고 있다”며 “일본 경제는 지금 커다란 변환점을 맞이했다”고 주제 선택 이유를 소개했다.

플라자 합의로 1985년 달러당 251엔이었던 엔화는 3년 뒤 122엔으로 절상된다. 일본 기업은 가격 경쟁력을 위해 중국·동남아시아 등에 진출했다. 마쓰시타가 생산거점을 73개 동남아 공장으로 옮겼고 도시바, 후지쯔, 히타치 등도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등으로 떠났다. 일본 경제는 제조업 공동화로 인한 고용 감축, 소비감소 악순환에 빠진다. 일본 제품 중 진짜 ‘메이드 인 재팬’은 없었다.

이 부회장은 이를 ‘시장 점유율 확대 중심 경쟁’ 결과로 분석했다. “원가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해외진출은 단기적 고성장을 이룰 수 있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며 “엔화 강세, 무역 마찰 등을 가속화시켰다”고 설명했다. ‘잃어버린 20년’은 일본 정부와 산업계 단견에서 시작됐다고 풀이한다.

그는 산업 공동화를 심각하게 바라봤다. “VTR, CD카세트, 팩시밀리 등 일본 주력상품을 만들던 공장이 떠난 지역에서 세수 감소, 실업 증가, 내수 침체의 악순환이 벌어졌다”며 튼튼한 내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런 모습이 일본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라고 전제하며 “한국 등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장기 성장에 참고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의 분석은 공교롭게도 현재 우리 경제와 산업계가 받는 ‘경고’와 완전하게 닮았다. 우리 경제는 최근 미국 양적완화 중단, 세계 경기침체 장기화 등 악재가 겹치며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고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제조업 해외 이전이 이어지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3월 ‘해외직접투자 증가의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2006년 우리나라 해외직접투자(OFDI)가 외국인직접투자(FDI)를 앞지른 뒤 지난해까지 제조업 해외진출로 매년 34억달러의 국내 투자기회가 사라졌다”고 분석했다. 임희정 연구위원은 “국내 산업 활성화를 위한 투자는 감소하고 있다”며 “국내 산업 공동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1일 오전 경북 구미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 김관용 경상북도지사, 김진환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장 등과 함께 센터를 돌아보고 관계자를 격려했다. 이 부회장(왼쪽에서 두번째)이 김 지사(왼쪽에서 세번째)와 센터를 돌아보고 있다. 2015.07.21 <사진=경상북도청>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1일 오전 경북 구미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 김관용 경상북도지사, 김진환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장 등과 함께 센터를 돌아보고 관계자를 격려했다. 이 부회장(왼쪽에서 두번째)이 김 지사(왼쪽에서 세번째)와 센터를 돌아보고 있다. 2015.07.21 <사진=경상북도청>

제조업 1위 기업 삼성전자도 전체 매출의 90%를 해외에서 일구는 등 해외 시장에 기반을 둔 지 오래다. 전체 38개 생산거점 중 국내는 5개뿐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베트남 국내총생산(GDP) 14%를 차지하고 베트남 수출품 1위를 스마트폰으로 만들 정도로 큰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평택에 15조원 규모 반도체 공장을 짓는 등 내수 투자도 병행하지만 해외 투자 확대는 이어지고 있다.

산업 공동화 우려는 우리 산업 전반에 드리워진 우울한 경제의 뒷면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자동차는 한국이 해외생산 51%로 일본 42%보다 높고, 가전제품도 약 80%로 일본의 약 두 배에 달했다”며 “해외시장 개척과 국내 인건비 상승 등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제조업 공동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21년 전 이 부회장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던 일본은 장기 불황을 극복하고 있다. 엔화절하와 제조업 일본 회귀, 강력한 내부 혁신, 위기 극복을 위한 국민 결집 등이 해법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중국 보아오포럼을 마치고 29일 서울 공항동 김포국제공항 국제선 청사로 입국하고 있다. 2015.03.29 /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중국 보아오포럼을 마치고 29일 서울 공항동 김포국제공항 국제선 청사로 입국하고 있다. 2015.03.29 /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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