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33주년 기획]글로벌 안전관리의 대명사 TUV SUD를 가다

우리나라 근로자 산업재해 사망률은 2013년 기준으로 10만명당 12.5명이다. 0.44명인 영국보다 28배나 높다. 유럽국가(EU) 15개국 평균치 1.39명보다도 9배가 높다. 이웃나라 일본 1.9명과 비교해도 실로 비참한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근면함과 성실성을 앞세워 1960~1980년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산업발전 기적을 이뤄냈다. 세계 최강 창조·창의력을 기반으로 오늘날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강국 대열에 우뚝 섰다. 그러나 매년 산업재해로 2000명가량이 목숨을 잃는다. 급속한 산업발전 뒤에 자리잡은 어두운 그늘이다.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는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수년 사이 산업현장에서 유독물질 및 가스누출 사고로 근로자가 잇따라 목숨을 잃었다. 올해도 유독물질 저장탱크 폭발사고로 인사사고가 발생했다.

정부는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법(화평법) 등을 마련해 규제강화에 나섰다. 갑작스러운 규제강화에 산업계는 혼란스럽다. 지나친 규제강화로 산업경쟁력 저하를 하소연한다. 규제를 강화해 사고를 줄일 것인지 경쟁력 유지를 위해 규제를 완화할 것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거세다. 글로벌 안전관리 대명사격인 독일 TUV(기술검사협회) SUD 뮌헨 본사를 방문해 산업재해를 줄일 수 있는 안전관리 대책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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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이야기지만 기술이 진보할수록 유독물질 및 유독가스 유출 등 사고 위험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관리방법도 함께 진화해야 불의의 사고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카르스텐 잔더 TUV SUD 부회장이자 그룹 이사회 멤버의 말이다. 그는 산업기술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유독물질에 의한 사고는 대형화하고 치명적이라 잘라 말한다.

우리나라가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분야만 놓고 봐도 생산 미세공정이 첨단화하면 할수록 인체에 치명적인 유독가스 사용은 지속적으로 늘어난다는 설명이다. 미세화 진척 수준에 따라 독성 화학물질이나 가스 사용량이 늘어나게 되고, 독성 또한 한층 강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를 담아 보관하는 저장탱크나 흘려보내는 배관 시설, 이들에 적용되는 용접기술을 달리 설계·적용해 특별관리하지 않는다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셈”이라고 말한다.

글로벌 기업에서 20여년간 동북아국가 하이테크 건설 및 초고층 건설 위험관리는 담당했던 에드워드 김 TUV SUD 본사 수석부사장은 “안전관리를 별도 인력이나 조직이 아닌 전사적 시스템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이 시스템적으로 안전기준을 상향 평준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산업이 고도화할수록 그에 걸맞은 안전기준 또한 상향 평준화돼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며 “하이테크 분야 선진국과 선진기업이 오랜 기간 경험을 토대로 정립한 기준이 존재하고, 국제표준으로 안착한 안전기준도 다수 있어 후발기업도 관심만 기울인다면 얼마든지 손쉽게 안전기준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무사고 관행을 이유로 안전 시스템 구축을 소홀히 한다면 훗날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TUV SUD는 어떤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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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V SUD 뮌헨 본사 전경

TUV SUD가 저장탱크(압력용기)와 배관 시설안전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회사 기원에서 찾을 수 있다. 이 회사는 올해로 창립 149년째를 맞았다.

1865년 1월 독일 만하임 시내 한 양조장에서 증기보일러 폭발사고로 대규모 인명과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독일 정부는 기술발전으로 야기되는 부작용으로부터 근로자, 환경, 재산을 보호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민간 규제기구 설립을 유도했다.

이듬해 독일 내 증기보일러 생산기업이 힘을 합쳐 검사협회를 만들었다. 독일 최초의 민간 증기보일러검사협회 DUV 만하임이다. 검사협회는 ‘안전에 대한 기업 양심’을 표방했다. 안전을 놓고 어떤 권력이나 이익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독일정신으로 똘똘 뭉쳤다. 자발적인 생산·관리 기준을 만들어 준수하기 시작하면서 산업재해는 급격히 감소했고 안전한 독일은 현실화됐다.

시작은 증기를 만들고 관리하는 보일러 탱크와 배관, 용접 안전도 향상에 주안점을 뒀지만 기술을 축적해 오늘날은 저장소와 배관을 이용하는 모든 물질의 안전성 향상을 지휘감독하는 글로벌 검사협회로 급부상했다. 이 DUV 만하임이 오늘날 TUV SUD의 모태다.

TUV SUD 활동분야는 전기, 전자, 의료기기, 자동차, 승강기, 원자력발전소, 제품안전, 교통안전시스템, 경영시스템 등 기술이 사용되는 모든 분야, 안전이 요구되는 모든 분야로 확대됐다. 독일 최대 시험인증기관이 된 것은 물론이고 전 세계 800개 지역사무소, 직원 2만2000여명을 둔 글로벌 검사기업으로 급부상했다.

1992년 한국시장에도 진출했다. 1994년에는 서울에 한국법인 TUV SUD 코리아를 설립했다. 서울 본사와 경기도 성남, 부산에 사무소를 두고 산업분야별 서비스를 제공한다. 전기전자 제품 시험을 담당하는 서울 구로 시험소와 전기차 및 ESS 배터리 시험 및 인증을 맡는 경기도 수원배터리 시험소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법인 직원은 450여명으로, 제품 시험인증 및 경영 시스템 인증을 비롯해 산업 검사 및 관련 보고서, 교육 및 세미나, 전문 지식 및 정보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수력원자력 등 발전 대기업을 비롯해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굵직한 기업이 TUV SUD 고객이다.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신·증설 라인, 원자력발전소 등 최고 안전기술이 필요한 모든 곳에 TUV SUD의 안전철학을 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원에서 생산된 전력을 저장, 활용하는 에너지저장장치(ESS)로 분야를 넓혀 시험·인증 통합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안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 가치

“단기간에 산업발전을 이루려면 어느 정도 산업재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은 오늘날 절대 통할 수 없습니다. 안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뿐 아니라 바꿔서도 안 되는 절대가치입니다.”

잔더 부회장은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산업·기술 발전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다를 바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성공한 기업이라도 생산현장에서 대규모 재해가 발생하면 그동안 쌓은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은 물론이고 가족과 다름없는 직원이 다치거나 생명을 잃을 수 있기에 안전은 타협할 수 없는 절대가치”라고 힘줘 말했다.

그의 말은 TUV SUD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안전은 타협 대상이 아니다. 최고 수준 안전 컨설팅 서비스 품질경쟁력을 갖춰 놓고 그 서비스를 찾는 고객을 국제기준에 맞게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게 그의 법칙이자 TUV SUD가 추구하는 신념이다.

TUV SUD는 2014년 기준 연 매출 20억6140만유로(약 2조7430억원)로 최근 5년간 매년 6.0~8.5%의 매출성장률을 기록 중이다. 지난해 이익은 1억7230만유로(약 2292억원)로 이 역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10년간 매출이 감소하거나 적자를 낸 적이 없다.

149년 역사의 우량기업이지만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지 않다. 상장하지 않은 이유는 회사 설립목적과 부합한다. 공익을 위해 회사를 만든 만큼 집단 운영체제를 고집하며 단일 기업이나 개인이 회사를 소유할 수 없도록 했다.

발생한 이익을 주주가 나눠 갖는 일도 없다. 베르톨트 개트너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매년 발생한 이익은 반드시 재투자하는 게 이 회사 원칙”이라며 “이익 대부분은 공공서비스 분야에 재투자하고 있고, 매년 인증 및 교육사업 확대 및 고도화에도 충분한 금액을 투자한다”고 덧붙였다.

뮌헨(독일)=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m

[인터뷰]카르스텐 잔더 TUV SUD 부회장 인터뷰

[창간33주년 기획]글로벌 안전관리의 대명사 TUV SUD를 가다

​TUV SUD 카르스텐 잔더 부회장

“150년 전 압력용기 폭발사고 이후 안전을 재조명하는 차원에서 TUV 가 생겨났습니다. 당시 사고피해는 현장 인력과 시설에 국한됐어요. 그러나 오늘날은 대부분 산업현장에서 유독물질과 가스를 다룬다는 점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인근지역, 더 나아가 국가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과거 체르노빌 원전사고나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올해 톈진항 폭발사고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대형 사고는 해당 국가는 물론이고 세계를 혼란에 빠지게 한다. 자연재해가 사고 원인인 때도 있지만 대다수 사고의 원인은 인재로 귀결된다. 안전에 대한 무감각이 화를 자초한 셈이다.

“재해는 국가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기업은 물론이고 정부도 재해예방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게 카르스텐 잔더 TUV SUD 부회장의 지론이다. 또 “재해예방에 투입한 노력과 비용 그 이상의 효과가 발생한다”고 역설한다.

TUV SUD는 증기를 안전하게 담아 관리할 수 있는 탱크와 배관의 용접기술 전파가 사업의 시초였지만 지금은 백수십년간 축적된 기술력을 토대로 복합화력발전소나 원자력발전소, 전자제품 제조시설 등 모든 산업분야로 영역을 넓혔다. 안전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산업 즉, 환경·원자력·가스·화학·철도·전자 및 부품산업 등에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과거에는 주고객이 기업에 국한됐지만 원자력, 철도, 환경 등으로 서비스 분야를 확대한 이후로는 각국 정부도 주고객이 됐다.

“원자력발전소 등 국가 핵심발전시설은 국제 또는 정부 안전도 기준에 따라 건설, 관리됩니다. 하지만 반도체·디스플레이를 포함한 전자·부품 공장은 기업이 정한 자체 기준이 적용됩니다. 기업이 투입비용이나 관리비용 절감을 목적으로 낮은 품질의 안전 기준을 적용하면 공장운영 효율성을 높아지겠지만 안전성은 위험한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미주 지역 비즈니스 총괄이자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권 국가 비즈니스를 담당하는 잔더 부회장은 “여러 국가에서 일하다 보면 첨단시설을 운영하는 기업조차도 비용절감을 위해 안전을 소홀히 하려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제껏 사고가 없었으니 새 공장도 기존 기준으로 지으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들기 쉽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다뤄야 할 독성가스 종류와 양은 많아졌고, 독성 또한 매우 강해졌기 때문에 더 주의해야 합니다. 과거의 탱크용접·배관이음 기술로는 감당할 수 없는 특수가스 이용도 늘고 있어 사고 위험은 더 커지게 마련입니다.”

잔더 부회장은 “최근 불의의 인명사고로 홍역을 치렀던 기업은 상당한 환경개선을 이뤘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은 여전히 무방비 상태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산업재해를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공장설립 초기부터 ‘안전에 안전’을 강조하는 것뿐”이라고 그는 재차 강조했다.

뮌헨(독일)=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m

[창간33주년 기획]글로벌 안전관리의 대명사 TUV SUD를 가다
[창간33주년 기획]글로벌 안전관리의 대명사 TUV SUD를 가다

본사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위치한 TUV SUD 뮌헨 아카데미 트레이닝센터. 각종 산업·환경안전 기술과 인증기준에 관한 교육과 세미나가 진행된다. TUV SUD는 이 같은 시설을 프랑크푸르트, 하노버, 함부르크, 드레스덴 등 20개 지역에 마련해 2500여명의 트레이너가 연 11만명가량을 교육한다. 회사는 아카데미 트레이닝센터를 수년 안에 100개 이상으로 확충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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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뮌헨 소재 TUV SUD 플라스틱 재료연구소. 플라스틱 소재는 화학물질 저장용기와 배관을 비롯해 전자제품, 의료기기, 레저용품 등 산업 전분야에서 폭넓게 사용된다. 사진은 플라스틱 헬멧 안전성을 검사하는 모습. 보안상 이유로 내부시설 사진촬영이 불가능했지만 인체 유해성, 내구성, 방습방수 성능, 전자파 차폐 성능 등을 시험하는 시설과 공간이 연구소 곳곳에 가득 차 있다. 한 실험실에서는 의료기기 글로벌 1위 기업이 제품 상용화를 앞두고 검사를 의뢰한 내시경 장비의 안전도 시험검사가 진행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