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파문으로 ‘클린 디젤’을 향한 기대도 산산조각 날 처지다. 내연기관 기술 발전으로 친환경성이 개선됐지만 태생적 한계를 간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질소산화물(NOx)과 미세먼지(입자상물질·PM) 배출을 차단하려면 추가 비용과 함께 내구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그간 정책적 지원과 수입차 공세에 힘입어 디젤차 비중이 급증했다. 이번 폭스바겐 파문을 계기로 디젤 정책에 근본적 고민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까지 신규 등록된 자동차 중 경유차 비중은 51.9%에 이른다. 올해는 신규 등록 자동차 절반 이상을 경유차가 차지하는 첫해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 이 비중은 48.5%였다. 작년 동기와 비교하면 경유차 등록은 18.0% 증가한 반면에 휘발유와 LPG차 등록은 1.6%, 13.8%씩 감소했다. 레저용차(RV)와 수입차 돌풍으로 승용 디젤차는 28.8%나 증가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디젤 승용차 사랑이 유별난 국가다. 디젤 승용 본고장인 유럽을 제외하면 디젤 승용차 비중은 대개 한 자릿수에 머무른다. 2013년 기준 경유 승용차(RV 포함) 판매 비중은 미국 1.2%, 일본 1.7%, 중국 0.4%에 불과했다. 같은 시기 우리나라 경유 승용차 판매 비중은 35.2%였다. 이 비중이 50~60%대를 넘나드는 서유럽 국가를 제외하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운전자 성향에 정책적 환경이 더해진 결과다. 영세 상공업자, 운송업자가 이용하는 트럭·버스 유류비 지원책 혜택을 승용차 소비자도 함께 보고 있다. 경유에 부과되는 유류소비세와 주행세가 유류비보다 월등히 낮다. 시중 경유 가격은 휘발유보다 10% 내외 낮게 형성된다.
경유차는 휘발유차보다 가속·추월 성능이 뛰어나 급출발, 급가속이 잦은 국내 소비자 성향에도 맞다. 높은 발열량과 엔진 특성으로 휘발유차에 비해 연비와 토크가 높고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다. 높은 토크 때문에 트럭과 버스에 많이 사용됐지만 1997년 전자제어식 엔진이 개발된 후 승용차에도 탑재되기 시작했다.
미국과 일본이 연료에 관계없이 엄격한 배출가스 기준을 적용하지만 우리나라는 경유차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돼 있다. 2005년부터 유럽 경유차 배출가스 기준을 그대로 국내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유럽은 휘발유 승용차 대비 경유차에 약 3배 완화된 배출가스 기준을 적용해왔다. 유로5 기준을 충족하는 경유차는 2009년 9월부터 환경개선부담금도 면제했다. 경유차 사라고 부추긴 셈이다.
미국과 일본은 질소산화물 배출 허용치를 유럽 휘발유차 기준보다도 엄격하게 적용해 시장 진입을 막았다. 휘발유차와 디젤차에 동일한 잣대를 들이댄다. 유럽산 디젤차가 미국 시장에서 고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번 배출가스 조작 파문이 미국에서 터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질소산화물과 초미세먼지 발생을 막고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의지다.
디젤차는 질소산화물과 초미세먼지 발생을 피할 수 없다. 유로6 충족을 위해 후처리장치를 장착할 수 있지만 비용이 든다. 후처리장치 내구 연한도 해결 과제다. 이러다 보니 자동차 회사는 적은 비용으로 디젤차 배기가스를 줄이려는 유혹에 빠진다. 이번 폭스바겐 파문도 이 같은 현상이 낳은 극단적 결과다.
결국 디젤차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도 정책적 고민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폭스바겐 사례는 디젤차 한계를 둘러싼 딜레마를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기 때문이다. 지난 수년간 기준치를 한참 초과하는 오염물질이 그대로 배출됐을 가능성도 높다.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도 결과적으로 디젤차를 우대해온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디젤 엔진을 앞세운 유럽산 차에 내수 시장을 상당 부분 빼앗겼기 때문이다. 디젤차 우대 정책이 환경에 악영향을 끼친 것은 물론이고 국내 산업 보호에도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국산차 업계 관계자는 “경유에 대한 저율 세금은 영세 업자 화물 수송을 지원하려는 취지였지만 당초 취지와 달리 고소득층 신분과시용으로 전락했다”며 “최소 세단형 자동차만이라도 경유차 우대 정책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경유 승용차는 유해가스 배출이 많고 긴 주행거리로 온실가스 저감에도 한계가 있다”며 “유럽 의존도가 심각한 경유차 우대 정책은 자동차 산업 발전 방향과도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