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O BIZ+]분할 발주 도입, 일본 실패 사례에서 배운다

정부가 공공정보화 사업 진행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질적 병폐 해소를 위해 설계와 구축을 나눠 발주하는 분할발주 도입을 추진한다. 법적 근거를 마련해 강제화하는 움직임도 있다. 기관·업계 모두 분할발주 도입 취지는 공감하지만 설계와 구축을 분리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우려도 있다. 효율적인 도입방안 마련을 위해 우리나라보다 10년 앞서 분할발주를 도입한 일본 사례를 일본 총무성 전자정부전문위원 도움을 받아 분석했다.

일본 정부가 공공정보화 사업에 분할발주 제도를 도입한 것은 10년 전인 2005년이다. 분할발주를 도입한 배경은 우리나라와 유사하다. 당시 일본 정부는 공공정보화 사업 저가 수주에 따른 품질저하, 주사업자 횡포, 공공기관 담당자 정보화 역량 부족 등을 겪고 있었다. 분할발주 제도도입 후 고질적인 문제점들이 해소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돌발변수가 생겨났다. 설계와 구축이 연결되지 않았다. 10년이 지난 현재 일본에서는 일괄발주로 회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리나라 공공정보화 시장 상황과 일본 상황이 차이가 있긴 하지만 발생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면 성공적인 분할발주 제도 도입이 가능하다.

◇분할발주 도입 배경인 저가사업은 유사해

일본 공공정보화 분할발주 도입의 가장 큰 배경은 저가 수주다. 대기업은 정보화 사업이 발주되면 저가로 수주했다. 사업을 장악한 후 제안요청서(RFP) 작성 역량이 부족한 공공기관 발주 담당자를 이용해 기능 추가 등으로 계약금액을 높였다. 일본 공무원 직제에는 전산공무원이 없다. 일반직 공무원은 정보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매우 낮다. 대기업은 스스로 검수 기능까지 수행, 기득권을 행사했다. 일본 정보는 문제 해결을 위해 분할발주 제도를 도입했다.

우리나라는 전산공무원 직제가 존재하고 설계·구축 사업 전 업무프로세스재설계(BPR)·정보화전략계획(ISP)으로 사업 예산을 수립한다. 일본 구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분할발주를 도입하던 시점에서 나타난 저가사업 문제가 국내 공공정보화 시장에서도 재현된다. 무조건적인 공무원 순환 보직 제도와 형식적인 BPR·ISP 관행 때문이다.

염종순 일본 총무성 전자정부전문위원은 “일본은 다수 업체로부터 제안 금액을 받아 평균 금액으로 사업예산을 책정하는 형태여서 저가 입찰로 인한 저가 예산이 편성된다”고 말했다. 동일한 저가 사업이지만 ‘갑’인 공공기관이 먼저 저가로 사업을 발주하는 우리나라와 배경은 다르다.

◇설계와 구축 연속성 확보 노력 필요

일본 공공정보화 사업은 분할발주 도입 후 기본설계와 상세설계·구축으로 나눠 발주했다. 초기 발주 투명성이 확보돼 일부 문제가 해소됐다. 시간이 지나자 2단계 사업자가 앞서 진행한 기본설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나타났다. 기본설계 자체가 부실해 2단계 사업에서 기본설계를 다시 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염 위원은 “결국 2단계 사업자가 1단계 사업까지 수행하게 됨에 따라 중복 비용이 발생, 사업 금액을 늘리거나 구축사업까지 부실하게 만드는 사례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와 시스템통합(SI)업체가 체계적인 개발방법론을 보유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성과물에 대한 표준이 없어 사업 수행업체나, 현장책임자에 따라 성과물 품질이 다르다.

반면 우리나라는 전자정부프레임워크를 비롯해 다양한 표준 개발 프레임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기본설계부터 표준 프레임워크를 적용하면 상세설계나 개발에서도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 국내 IT서비스기업 관계자는 “우리나라도 설계와 개발시 표준 방법론을 형식적인 수준에서만 적용해 문제가 된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성공적 분할발주, 해결할 과제 많아

일본 공공정보화 시장에서 다시 일괄발주로 회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분할발주가 기대했던 정보시스템 개발 효율성 제고와 예산 절감에 효과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품질저하와 중복 투자비용이 발생해 문제를 악화시켰다는 주장이다.

일본 분할발주 실패는 공공정보화 시장의 근본적 문제 해결 없이 발주 제도만 개선했다는 데 있다. 공공기관 발주자 역량, 효율적인 프로젝트 진행, 표준 개발방법론 적용 등이 선행되지 않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 협력도 과거와 그대로다.

우리나라도 성공적인 분할발주 도입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먼저 공공기관 담당자의 정보화 역량 강화다. 전산공무원은 존재하지만 순환보직제가 적용돼 프로젝트를 장기간 끌고 갈 담당자가 없다. 해당 사업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도 부족하다.

대기업 횡포를 억제하기 위해 개정 SW산업진흥법을 시행했지만 여전히 하도급 문제가 발생한다. 대기업 사업 배제가 아닌 대·중소기업 협력의 장을 만들 수 있도록 법 재개정도 요구된다. 전자정부 프레임워크나 효율적인 개발방법론에 대한 우수성을 인정해 적용 시 인센티브 부여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설계와 구축이 연속성을 가질 수 있도록 지침도 마련해야 한다.

김진형 SW정책연구소장은 “1단계 요구사업을 하지 않으면 구축 사업 예산을 배정하지 않는 제도 도입도 검토 중”이라며 “향후 관련 부처와 협의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표]한국과 일본의 공공정보화 분할발주 관련 환경


자료:기관 및 업계 종합

[CIO BIZ+]분할 발주 도입, 일본 실패 사례에서 배운다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