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태양광 전시회에 참석했다. 그동안 신재생에너지 시장은 유럽이 선도해왔기에 미국 시장 동향에는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 실상은 전혀 달랐다.
기조연설로 나선 토니 세바 스탠퍼드대 교수를 만난 게 가장 충격적이었다. 실리콘밸리는 전통적으로 혁신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산업화해 기존 산업을 와해시켜 왔는데, 이제는 에너지산업과 자동차산업을 파괴할 차례라는 것이다. 토니 세바 교수는 그 시기를 15년 후인 2030년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필요한 도구이자 기술이 바로 태양광, 에너지저장장치(ESS), 전기차(EV), 자율주행차(AV)이며 이런 새로운 분야를 선도할 기업으로 테슬라를 꼽았다.
실리콘밸리가 혁신적인 신기술로 기존 산업을 파괴한 이력을 살펴보자. 먼저 시스코는 미국 통신장비 제조 분야 상징이었던 루슨트를 무너뜨렸고, 대형 서점 그룹인 반스앤드노블을 무너뜨린 아마존은 이제 쇼핑몰 최고봉인 월마트까지 넘어서고 있다. 애플은 워크맨의 소니를, 그리고 수많은 음반제조사와 판매점을 무너뜨리며 음원시장을 장악했다. MS와 애플은 컴퓨팅 원조인 IBM을 위태롭게 했다. 구글은 광고 시장을 장악해 모든 미디어 광고 수입을 줄어들게 하고 있다. 최근엔 숙박업계도 이미 에어비앤비가, 택시업계는 우버가 와해시키고 있다.
실리콘밸리가 주도한 변화는 반도체와 컴퓨팅, 인터넷이라는 이른바 정보기술(IT)이 기반이 됐다. 에너지와 자동차산업은 기술 뿌리부터 다르기 때문에 쉽게 납득되지 않았지만 토니 세바 교수 설명을 들어보면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태양광 발전 산업 역사를 보면 1970년에 와트당 100달러였던 태양광 패널가격은 2013년에는 65센트로 무려 154분의 1로 떨어진 반면에 원유는 배럴당 3.18달러에서, 2013년에는 110달러로 무려 35배 높아졌다. 비교하면 태양광이 5355배의 원가 개선을 한 셈이다. 태양광 패널 가격 하락 추세는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며 시티은행은 2020년에 35센트로 예측하기도 했다.
태양광발전 설치 용량 역시 2000년에 1.4GW에서 2013년에 141GW로 성장했다. 연평균 복합성장률은 43%다. 이런 속도라면 2030년은 56.7TW(테라와트)가 되며 기저부하로 환산하면 18.9TW다. 2030년 세계 에너지 수요량을 16.9TW로 전망하는 가운데 결국 모든 에너지를 태양광으로 대응할 수 있다. 태양광은 정책적 지원이 아니라, 원가가 싸기 때문에 경쟁에서 궁극적인 승자가 될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석기시대가 끝 난 건 돌이 없어져서가 아니라 청동이 나오면서라는 것과 같은 얘기다.
여기에 더해 전기차용 배터리가 전력저장으로도 활용되면서 태양광 가치는 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신재생에너지는 기존 발전원에 비해 발전량 기복이 심해 기저발전으로는 아직 한계가 있지만 ESS와 연동시킨다면 이야기는 180도 달라진다.
배터리 가격까지 떨어지고 있어 ‘신재생+ESS’ 산업은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에너지 체계가 마이크로그리드 등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변화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전망이 적중한다면 8조달러 전력산업은 근원적으로 와해되고 기존 전력회사와 제조회사들은 테슬라와 같은 새로운 회사로 대체될 것이다. 이러한 예측에 점점 더 많은 전문가와 기관들이 동의하고 있다. 석유 시대를 이끌었던 사우디 전 석유부 장관도 그 중 하나다. 워런 버핏도 태양광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고 구글, 애플, 아마존 등도 이미 에너지 산업에 발을 들였다.
우리는 어떠한가. 에너지 신산업 정책이 추진 중이지만, 정작 핵심 요소인 태양광이 빠져 있다. 또 다른 신재생에너지인 풍력도 마찬가지다. 수년 전 국내 많은 중공업 회사들이 풍력발전기 제조에 뛰어들었으나 이제는 하나만 남아 있다. 신재생에너지 보급률은 참담한 수준이다. 신재생이 없는데 ESS를 적극 육성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부와 산업계는 이제부터라도 기존 산업을 와해할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박승용 효성중공업 연구소장 syngpark@hyo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