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상회(三星商會)와 경일상회(京一商會).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모태다. 공교롭게도 두 회사 모두 1938년 설립됐다. 지금은 글로벌 브랜드 순위 100위에 드는 세계 굴지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이 두 상회가 처음 장사를 시작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놀라운 성과다.
삼성과 현대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잘 키운 중소기업 하나가 수출 대한민국 효자노릇을 톡톡히 할 수 있다. 지속 가능하고 균형 잡힌 기업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산업 허리역할을 하는 우리 중소·중견기업을 잘 육성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 수출입은행은 ‘해외 온렌딩’이란 금융상품을 내놓았다. 일견 생소해보이는 이 제도는 수출입은행이 미리 약정을 맺어놓은 중개금융기관(시중은행)에 정책자금을 제공하면 해당 중개금융기관 심사를 거쳐 대상 수출중소기업에 대출하는 간접금융제도다. 수출중소기업에 친화적인 금융상품이자, 수출중소기업, 중개금융기관, 수출입은행에 모두 유리한 ‘윈-윈-윈’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대기업이나 중견기업보다 신용등급이 높지 않은 중소기업에는 시중 수많은 금융상품이 접근 가능성이 낮거나 생각보다 금리가 너무 높아 그저 ‘그림의 떡’인 때가 많다. 더군다나 10여곳에 불과한 수출입은행 지점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시중은행은 수신 등 기존 자체 재원만으로는 금액이나 금리 측면에서 급증하는 수출중소기업 수요(Needs)를 충족시킬 수 없었고, 중소기업 해외현지법인 사업자금 등 기존 시중은행 대출상품으로도 이런 니즈를 감당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해외 온렌딩 상품 출시로 시중은행은 심사와 사후관리에 적정 수준 수수료를 받을 수 있고, 수출중소기업은 경쟁력 있는 금융상품을 제공받을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수출입은행은 시중은행 전국 지점망을 이용한 정책자금 공급으로 금융거래를 원하는 수출중소기업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게 됐다.
수출입은행법을 보면 장차 수출 강소기업,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성장할 국내 수출 중소기업 지원 책무를 수출입은행에 요구하고 있다. 정치권이나 국민 여론도 중소기업 지원 비중을 늘릴 것을 강하게 주문하고 있다.
사실 해외 온렌딩은 한 건에 수백억원씩 승인·집행되는 중형급 이상 프로젝트와는 거리가 멀다. 건당 적으면 수억원에서 많아야 20억~30억원을 넘기기 어려운, 그야말로 수출중소기업 수출을 위한 운용, 수입, 해외사업 및 시설자금 등을 지원하는 금융상품이다.
해외 온렌딩은 중개금융기관 영업, 심사기능 등 도움을 받는 등 경쟁이 아닌 협업이 전제되고 있는 만큼 ‘수출입은행은 시중은행 등 일반 금융기관과 협력 및 보완에 힘써야 한다’는 수출입은행법에도 부합된다.
수출중소기업은 가까운 중개금융기관 영업점을 방문해 수출입은행 해외 온렌딩 대출을 신청하면 중개금융기관 및 수출입은행 심사·확인 등을 거쳐 해당 기업에 대출이 집행된다. 지금은 우리은행과 부산은행에서만 가능하지만, 신규 중개금융기관과의 온렌딩 약정 체결과 온라인 전산망 구축 완성으로 내년부터는 대다수 시중·지방 은행에서 수출입은행 해외 온렌딩 취급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세계시장을 누빌 대한민국 강소기업을 키우기 위해 오늘도 금융이란 씨앗을 산업생태계 밭에 뿌리는 일을 멈춰선 안 된다.
풍성한 수확이 이뤄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토양이 나쁘거나 재해를 만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거두더라도 수많은 글로벌 강소기업을 수확하는 날을 고대한다.
정성스레 물과 거름을 주면서 이들 중소기업이 제2의 ‘삼성상회와 경일상회’가 될 것이란 기대감으로 말이다.
문준식 수출입은행 부행장 mjshik@koreaexim.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