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0일부터 금융권 계좌이동제가 본격 가동된다. 계좌이동제는 기존에 이용해온 주거래은행 계좌를 타행으로 바꾸면 기존 계좌에 연결돼 있던 각종 공과금, 급여 이체 등도 별다른 신청 없이 자동으로 이전되는 제도다. 금융위원회는 2013년 11월 말 금융업 경쟁력 강화 방안의 일환으로 소비자 선택권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은행 계좌이동제 실시를 결정했다.
금융결제원 자동이체 통합관리 시스템 ‘페이인포’도 지난 7월 1일 문을 열었다. 페이인포는 자동이체 서비스 안전성과 고객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각 금융사에 등록된 고객 자동이체 등록정보를 페이인포 안에서 일괄적으로 조회하거나 정보를 변경, 해지할 수 있는 통합서비스다. 금융회사 공동 서비스로 금융결제원에서 관련 시스템을 구축, 운영하고 있다.
보름 후인 30일부터는 본격적으로 계좌정보 조회·해지에서 나아가 자동납부 방식을 타 은행으로 일괄 변경할 수 있는 완전한 수준의 계좌이동제가 출범하게 된다.
◇계좌이동제 실시, 은행산업 경쟁 효율성 제고 기대되지만 출혈경쟁 우려도
금융당국은 계좌이동제가 실시되면 은행 간 고객 확보 기회가 다시 열리고 은행산업 경쟁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은행 간 공정한 경쟁 체제가 도입되면 장기적으로는 은행산업 재편도 기대된다는 관점이다.
브랜드 인지도도 각 은행 대응 전략에 따라 개선될 수 있다는 점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기존에는 불분명했던 주거래 고객 혜택과 마케팅이 강화되며 은행의 고객관리 역량 강화도 주목되는 지점이다.
은행으로서는 계좌이동제 장단점이 갈리지만 전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은 금융 고객이다. 거래 계좌정보를 바꾸려 했을 때 일일이 전화를 걸거나 개별 사이트에 접속했던 수고를 덜 수 있기 때문이다. 각 은행이 주거래 고객을 잡기 위해 내놓는 파격적인 혜택을 선택해 누릴 수도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나이스알앤씨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성인 약 2만명 중 30% 이상이 계좌이동제가 실시되면 주거래 은행을 변경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처럼 은행 소비자에게 긍정적인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계좌이동제가 탄생했지만 은행 입장에선 출혈경쟁을 촉발해 결국 ‘제살 깎는 경쟁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초저금리 시대가 지속되는 와중에 저원가성 예금금리는 상승하고 고객을 잡기 위한 과도한 마케팅 비용, 도입 초기 시스템 에러 등으로 은행은 수익성 저하에 직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전상욱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전략연구실장은 “계좌이동제에 대비해 각 은행이 금리 및 수수료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이런 대응책이 은행 수익성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며 “출혈경쟁이 심해지면 계좌이동제의 실질적인 효과가 작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사례…‘결국은 적극 대응한 은행만 살아남아’
영국은 2009년 일찌감치 계좌이동제를 도입하고 활성화를 위해 2013년 제도를 개편했다. 당시 적극적으로 계좌이동제에 대응했던 중소형 은행은 주거래 고객에게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계좌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뒷짐 지고 지켜봤던 일부 대형 은행은 다수 계좌가 유출됐다는 평가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영국 금융결제위원회가 계좌이동제를 시행한 이후 2013년 9월부터 2015년 3월까지 영국 내 계좌이동이 발생한 횟수를 조사한 결과 175만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클레이즈, 로이즈 등 대형 은행은 계좌이동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해 경쟁사에 다수 고객을 빼앗겼다. 바클레이즈는 지난해 12만개 이상 계좌가 폐쇄되며 타 은행 대비 가장 많은 고객을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계좌 유입은 3만9395개였으나 12만2691개가 타 은행으로 돌아섰다. 뒤늦게 심각성을 깨달은 바클레이즈는 올해 4월부터 캐시백 형태 인센티브를 도입했다.
반면에 중소형 은행인 산탄데르, 로이드은행그룹의 자회사인 핼리팩스 등은 계좌이동제에 적극 대응해 수혜를 입은 은행으로 회자된다. 휴대폰, 가스비 등 특정 자동이체 내용에 캐시백을 제공하거나 계좌이동 시 일시금을 제공하는 등 주거래 고객 사수 전략을 치밀하게 짰고 지난해 계좌이동제 실적으로 각각 17만551계좌, 15만6639계좌를 순유입했다.
송치훈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는 유럽 등에서 일반화된 주거래 계좌라는 개념도 희박하고 계좌이동제를 일찌감치 실시한 다른 나라와 금융환경이 달라 수수료 인하 등 인센티브 제공에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저금리, 저성장 국면에 처한 국내 은행의 수익성 악화를 초래할 수 있는 지나친 금리경쟁을 지양하고 다양한 서비스 개발로 경쟁력을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