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에서 미래 찾는 유화기업

석유화학업계가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생산에 속도를 낸다. 중국, 중동 등 증설로 범용 제품 시장에서 경쟁이 본격화됨에 따라 진입장벽이 높은 제품 개발로 다시 격차를 두겠다는 전략이다. 각사는 전략 제품을 선정하고 다가올 수년간 투자를 집중한다는 전략을 이행하고 있다.

LG화학은 지난해 기준 1조1000억원 수준인 아크릴 및 SAP사업 매출 규모를 2020년 1조7000억원대로 확대한다는 목표다. 석화 부문에서 투자계획이 확정된 유일한 사업이다. SAP는 수지 제품으로 유아 및 성인용 기저귀, 여성용품, 전선 방수제 등의 원료로 사용된다. 아크릴산은 SAP, 도료, 점착제 등의 원료다.

LG화학은 지난 8월 여수에 아크릴산 16만톤과 SAP 8만톤 규모의 생산라인 증설을 마치고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이 제품은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LG화학이 생산하고 있다. 아크릴산은 독일 BASF, 미국 다우, 일본 NSCL(일본촉매), 미쓰비시 등 일부 메이저 기업만이 고유 공정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시장 진입장벽이 높다.

SAP를 주력으로 선정한 것은 성장에 대한 자신 때문이다. LG화학은 아크릴산 시장규모가 지난해 490만톤에서 2020년 670만톤으로 연평균 5%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SAP는 230만톤에서 340만톤으로 연평균 6.5% 성장한다고 분석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중국 종이기저귀 사용량은 2010년 7.0%에서 내년 37%로 급증할 전망이다. 향후 SAP 수요가 급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아직 중국 등은 자급에 성공하지 못해 향후 주력 제품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한화케미칼은 사우디 석유화학회사 시프켐과 합작사인 IPC에서 지난 4월부터 에틸렌비닐아세테이트(EVA) 생산을 시작했다. 지난 2012년 4만톤 규모 국내 증설을 마친 뒤 3년 만에 EVA 생산량을 다시 늘렸다. 한화케미칼 EVA 생산능력은 국내 16만톤, IPC 15만톤을 합한 31만톤 규모다. 엑슨모빌 26만톤을 제치고 듀폰 40만톤에 이어 EVA 생산규모 세계 2위에 올라섰다. EVA는 투명성, 접착성, 유연성 등이 우수해 신발 밑창, 접착제, 태양전지용 시트 등 다양한 용도에 사용된다.

기저귀에서 미래 찾는 유화기업

한화케미칼은 1985년 국내 최초로 EVA를 생산한 이래 지속적으로 생산능력을 확대해왔다. EVA는 쓰임새가 많아 경기변동에 안정적이고 진입장벽이 높다. 공급과잉 우려가 적다는 의미다. VAM이 40% 이상 포함된 고함량 제품은 한화케미칼을 비롯해 일부 글로벌 기업만 생산하고 있다. 저함량에서 고함량까지 모든 종류의 EVA를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은 한화케미칼과 듀폰뿐이다. 한화케미칼은 PVC 등 기초소재 부문 일부 플랜트 가동률 하락과 영업부진을 겪었지만 EVA실적이 이를 상쇄하며 투자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이외에도 SK케미칼은 고급플라스틱(PPS) 양산에 나섰고 효성은 친환경 고분자 신소재 폴리케노 사업에 진출했다.

이들 기업이 부가가치가 높은 신제품 개발에 속도를 내는 것은 범용 화학 시장 성장세가 둔화됐기 때문이다. 한국석유화합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석유화학제품은 지난해 310억달러 이상 무역흑자를 냈지만 수출금액은 2013년 483억달러에서 지난해 482억달로 소폭 하락했다. 수십년간 효자 수출 종목으로 자리매김했지만 갈수록 흔들릴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한중 FTA에서 중국 정부가 자급률 확대를 위해 신·증설 중인 일부 범용제품(P-X, TPA 등)이 양허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향후 상황이 어둡다.

산업부 관계자는 “화학산업 구조를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 종류를 늘리고 소량 생산 구조로 이끌어 내려고 하지만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면서 “현재 각 기업이 내놓은 성과는 대다수 10년 이상 R&D, 투자 결과물로 이를 감안하면 제2, 제3의 전략 제품을 개발하는 노력이 지속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