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내년 예산안 심사를 본격화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26~27일 공청회 후 11월 30일까지 전체회의를 진행한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11월에 예산안 심사를 마무리하지 못 하면 12월 2일 본회의에 정부 원안이 자동 상정된다.
매년 예산안 심의 때마다 여야 간 공방이 재현되지만 올해는 유독 열기가 뜨겁다. 내년 4월 총선이 있고 박근혜정부가 후반기 국정운영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교과서 국정화와 같은 사회적 이슈까지 맞물려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적지 않은 충돌이 예상된다.
◇야당 “8조원 삭감해야”…여당 “정치 보복성”
정부가 제시한 내년 예산안은 올해보다 3% 늘어난 386조7000억원에 달한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확장적 재정 기조를 유지했지만 재정건전성 악화를 우려해 증가 폭은 크지 않다.
분야별로 보건·복지·노동과 문화융성, 국방, 안전 분야 예산을 늘렸다. 특히 일자리 예산을 대폭 확대했다. 대신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부문은 줄었고 연구개발(R&D)은 올해와 같은 수준에 머물렀다.
정부와 여당은 이번 예산안이 최선이라는 판단이지만 야당은 문제점을 지적하며 삭감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예결위 간사는 “총지출 387조원의 2%인 약 8조원을 삭감하겠다”며 “모든 사업을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제시한 3개 핵심 삭감 사업은 △특수활동비 △문화융성 등 박 대통령 관심 예산 △교과서 국정화 등 반민주 사회갈등 조장 예산이다.
특수활동비는 정부 부처가 사용처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쓰는 예산이다. 안보 관련 비용 내역은 공개가 어렵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에 관리가 안 되는 ‘눈먼 돈’이라는 반론이 나온다. 정부는 특수활동비에 올해(8811억원)보다 80억원 늘어난 8891억원을 배정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증액분 사용처를 확인할 수 없고 편성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전액 삭감을 주장했다.
새마을운동, 문화융성, 4대 강 후속사업 등은 박 대통령 관심 사업이라 과다 편성됐다는 지적이다. 새마을운동 예산 증가율은 전체 예산 증가율(3%)보다 크게 높은 26.9%고 특정 지역에 편중됐다고 주장했다. 찬반 논란이 뜨거운 교과서 국정화 관련 예비비 44억원이 편성된 것과 관련해서도 야당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정치 보복성 예산심사’라고 비난했다.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민생 예산을 하려는 게 아니라 정치보복 예산을 편성하겠다는 것”이라며 “새마을운동은 우리나라 경제성장 원동력이 된 국민운동으로 외국도 본받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 대통령 관심 예산과 법률은 무조건 삭감하고 반대하고 보는 야당을 어느 국민이 ‘발목 잡는 야당’이라고 하지 않겠느냐”고 주장했다.
◇법인세 인상, 부족한 R&D 예산 등 쟁점 수두룩
법인세 문제도 예산안 심사에서 중점 거론될 전망이다. 야당은 재정건전성 악화를 지적하며 법인세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여당은 재정건전성 확보는 필요하지만 법인세 인상은 부작용이 크다며 반대 견해를 고수하고 있다.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국가 채무 비율은 내년 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40%를 넘어선다. 2007년 약 298조9000억원이었던 국가채무는 작년 500조원을 돌파했고 내년 6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최재천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의장은 “정부의 세수확보 노력이 크게 부족하다”며 “법인세 감세 철회를 온전히 성역으로 남겨두고 있는 정부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인세 감세 철회 등 세 개 법안으로 연 평균 7조3000억원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에 새누리당은 기업 경영 환경이 악화되고 있음을 고려해 법인세를 올리는 대신 비과세·감면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도 법인세 인상은 오히려 경제를 위축시킬 것으로 전망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법인세를 인상하면 경제가 위축되는 것은 분명하다”며 “경제를 위축시키면 재정건전성에 부메랑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중장기적 체질 강화로 경제를 성장시켜 세수가 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R&D, 누리과정, 한국형 전투기(KF-X) 등을 두고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매년 5~10% 증가율을 보였던 R&D 예산은 제자리걸음하며 우려 목소리가 높다. 내년 R&D 예산이 올해보다 0.2% 늘어난 18조9000억원에 머물러 창조경제 기조에 역행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KF-X 사업은 미국의 핵심기술 이전 거부로 문제가 불거졌다. 국회 국방위원회는 KF-X 개발계획이 불확실하면 정부가 요청한 내년 예산 670억원을 승인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KF-X 사업 예산은 당초 방사청이 1618억원을 요구했지만 정부 협의 과정에서 670억원으로 삭감돼 국방위에 제출됐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