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소송, 잘못 걸리면 쪽박 찹니다. 천문학적인 배상금 때문입니다. ‘억’소리 나는 배상액으로 유명한 삼성과 애플 소송에서, 최초 산정된 배상금은 약 1조1500억원에 이릅니다.
1조원이 얼마나 큰지, 감이 오시나요? 5000년 전 단군 탄생과 함께 이 돈을 은행에 예치했다면, 지금까지 매일 하루에 60만원씩 써도 아직 원금 1조원이 그대로 남아있는 정도라고 합니다. 특허분쟁이 기업 입장에선 ‘생존전략’이 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 특허분쟁이 소송 외에 다양한 영역에서도 늘고 있습니다. 대비할 게 더 많아졌습니다. 특히, 맞짱 전면전이 아닌, 무기 ‘탈취전’이 증가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지난 21일 오후, 서울 역삼동 과학기술회관에서 한국전자정보통신진흥원(KEA) 주최로 열린 ‘미국 특허분쟁에서 살아남기’(How to Survive US Patent Dispute) 세미나에서입니다. 4명의 재미 특허 전문 변호사가 저마다 ‘생존법’에 대해 강연했습니다.
첫 번째 연사자로 나선 글래서 웨일(Glaser Weil)의 안드류 정 변호사는, 특허침해 경고장에는 ‘무응답’이 최선이라고 팁을 줍니다. 경고장을 받으면 바로 전문가와 상의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섣부르게 반박하거나 대응했다간 덫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정 변호사는 경고했습니다.
두 번째로 발표를 진행한 롭스앤그레이(Ropes&Gray)의 스티브 바우크만 변호사는, 소송이 아닌 ‘특허무효심판절차’(IPR·Inter Partes Review) 활용을 ‘강추’ 했습니다.
그는 “IPR는 싸움을 멈춘 후 적의 무기부터 뺏는 것”이라며 “특허침해소송을 당할 경우, 전면전 보단 상대 특허를 무효화할 방안부터 찾으라”고 강조했습니다.
IPR을 활용하면 ‘끝장 소송’보다 훨씬 적은 시간과 비용으로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최근 미국 특허법률 시장에서는 전면전보단 IPR 활용 무효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같은 로펌의 데이비드 천 변호사는 ‘영업기밀 분쟁’이라는 새로운 위험을 소개했습니다.
그는 “꼭 특허가 아니더라도, 타 기업의 아이디어·방법·공식 등을 부당하게 활용, 이익을 취하면 미국 내 형사 처분 대상이 된다”며 경고했습니다. 실행에 옮기지 않더라도, 그 시도와 공모만으로도 법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자나 깨나 불조심’이 아닌, 자나 깨나 ‘정보 조심’인 세상입니다.
DLA 파이퍼(Piper)의 안드류 슈와브 변호사의 발표 주제는 ‘특허 소송비 줄이는 법’입니다.
순간, 청중의 눈이 반짝거렸습니다. 슈와브 변호사는 “IPR와 같은 제도를 활용, 초기에 비용을 쏟아 부어야 총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하지만 맹수의 발톱을 꺾을 기막힌 노하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발표를 마친 후, 그는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로서 중요 노하우를 흘리는 말실수 할까봐 진땀을 뺐다는 게 슈와브 변호사의 고백이었습니다. ‘영업기밀’이 중요한 세상, 맞습니다.
장장 4시간에 걸쳐 ‘특허 생존법’ 강의를 듣는 참석자들을 위해 행사장 외부에 3D 프린터 시연도 마련됐습니다.
다양한 조형물과 컵이 전시됐습니다.
컵의 용처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 컵으로 물은 마실 수 없다”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프린터 출력물이라 아직은 내구성이 떨어집니다. 물을 담을 순 없었지만, 참석자의 시선을 끌기엔 충분했습니다.
이번 행사의 참석자 200여명 대부분은 국내 특허전문 변호사와 변리사였습니다.
미국 내 한국산 특허 ‘살리기’는 계속됩니다.
IP노믹스=양소영기자 sy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