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중단·지연 반복되는 AMI 사업-정부, 데이터개방 통한 신산업 추동 전환

‘선구축, 후활성화’에서 ‘신산업 활성화 통한 구축 추동’으로.

정부가 우리나라 스마트그리드 원격검침인프라(AMI) 사업 가이드라인을 전면 수정했다. 국가 전력판매 독점 사업자인 한국전력만 활용했던 전력 사용정보를 공공 목적으로 전환했다. 가정 등 수용가에서 납부하는 전기요금에 AMI 구축 사업비가 포함된 만큼, 전기 소비자 중심 인프라 사업으로 발전시킨다는 취지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AMI가 에너지 신산업을 견인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보안 문제·한전 역할 등 해결 과제도 남았다. AMI 구축사업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지 주목된다.

[이슈분석]중단·지연 반복되는 AMI 사업-정부, 데이터개방 통한 신산업 추동 전환

◇한전 소유에서 공공 활용으로

산업통상자원부는 AMI 구축과 사용으로 얻은 각종 데이터를 활용해 에너지 신산업 기초로 활용하겠다는 비전을 내놓았다. 지금까지 AMI로 수집한 수용가 전기 사용량 정보를 전기 수요 예측과 전력 계통 운영 목적으로 활용하려던 것을, 전기소비 패턴을 변화시켜 에너지 요금을 절감하는 수요반응 등 다양한 신산업에 쓰겠다는 취지다. 지역별 경제활동 상황이나 신규 상권 분석을 위해서도 전기 소비 데이터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양방향 통신이 가능한 스마트미터 등 AMI 시장이 세계적으로 크게 성장하면서 전기사용량 정보 관심이 높아졌다. AMI가 구축되면 다양한 환경의 빅데이터가 축적되고 이를 분석하면 부가가치를 크게 키울 수 있다. 산업부는 AMI 보급과 전력 데이터를 정보 생산 주체인 전기 소비자 권리를 보호하면서 소비자를 포함해 전력회사, 공공기관, 연구소, 학계, 민간기업 등 다양한 주체가 정당한 방법과 절차를 거쳐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할 방침이다.

채희봉 산업부 에너지산업정책관은 “전력회사가 보유한 전기 사용량 정보, AMI에서 생산된 실시간 전기 사용정보가 공공 목적으로 활용되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하겠다”며 “정보 생산 주체인 전기소비자 권리를 보호하면서 국가와 사회 그리고 새로운 산업 창출을 위해 활용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전기 소비 데이터 중 개인정보와 관계 없는 지역·용도·시간대별 등 집합적 소비 정보 등을 민간 수요가 있고 공공 성격이 있는 사업 대상으로 우선 개방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국가 차원 AMI 전용 빅데이터 센터를 전력회사가 아닌 외부에 구축해 운영하기로 했다. 다만 한전이 계량정보를 보유하고 관리한 만큼 한전 권리도 존중하면서 공익성을 극대화한다는 설명이다. 데이터센터가 운영되면 한전뿐 아니라 민간기업도 전력사용량 정보를 활용하는 에너지 컨설팅 수요반응, 에너지 효율 향상 등 다양한 에너지 신산업이 창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에너지 신산업 창출 기대

정부 방침으로 한전이 소유했던 AMI 데이터가 개방됨에 따라 다양한 에너지 신산업이 생겨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전 위주 각종 에너지 신사업이 통신사나 중전기기 등 민간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AMI는 단순한 전기사용량뿐 아니라 유효·피상 전력 등 전력 품질을 원격에서 관리할 수 있다. 또 수용가에 설치된 계량기 상태는 물론이고 데이터 적시 수신율과 검침 성공률을 확인할 수 있다. 아낀 전기를 되팔 수 있는 전력 수요반응(DR) 시장 활성화와, 수용가의 전력인프라를 개인이나 전문기업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실시간 요금제가 실행되면 전력 피크를 우회하면서 대규모 전력 저감을 유도한다.

사업 확장성도 뛰어나다. AMI는 현재 전기 에너지에 국한돼 있지만 시스템 고도화로 수도, 열, 가스 등 다른 생활에너지에도 접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AMI는 국가 전력수요 관리뿐 아니라 상업용이나 사회안전망 구축에도 유리하다. AMI와 연동되는 웨어러블 기기나 가전으로 사람 위치정보와 심박수, 가정 전력사용량 패턴을 종합 분석해 이상 징후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지정된 보호자와 담당자에게 실시간 알림서비스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스마트기기 원격제어로 요금 체납자나 화재로 인한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단전도 가능하다. 이 때문에 아프리카나 중남미, 동남아 지역에서 AMI 구축을 서두르는 상황이다. 고객 요청에 따른 일시적인 단전도 가능하고 위약이나 전기 무단 사용 등 고객의 악의적인 행동을 사전에 감지해 조치하도록 돕는다.

송전설비에 구축된 초고압 가스절연개폐장치(GIS)·변압기와 연동하면 대규모 정전사태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학교나 공공시설, 건물, 사업장에 구축하게 되면 집단 에너지 관리로 이용효율을 극대화하고 DR 사업자와 계약해 안정적인 수익도 창출할 수 있다. 이 같은 이유로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는 AMI를 신재생에너지 기반 분산전원용으로 도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정일 전력연구원 연구원은 “AMI는 단순 검침 역할뿐 아니라 마이크로그리드나 스마트가전 시대를 앞당길 핵심 인프라”라며 “가정이나 사업장은 물론이고 양식장, 화훼, 농가, 사회안전망 등에 활용 분야가 무궁무진한데다, 가스나 열, 수도 등 에너지를 빅데이터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안과 한전 역할 재정립은 ‘난제’

정부가 전국 수용가 대상 전기 사용정보 일부를 개방하기로 함에 따라 수용가 정보보안 문제와 사업 주체인 한전 역할에 관심이 모인다. 한전 데이터 일부를 민간 등과도 공유해야 하기 때문에 그동안 한전이 계획했던 스마트그리드 사업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전기 사용량 기반 각종 서비스 신규사업에서 한전과 민간기업 간 경쟁도 예상된다.

그뿐만 아니라 한전 AMI 사업을 준비해온 스마트그리드 업계는 올해 사업을 또 건너뛸 상황에 놓였다. 산업부가 지지부진했던 한전 AMI 사업을 점검한다는 이유로 사업을 보류했기 때문이다. 한전 관계자는 “그동안 우려됐던 한국형 전력선통신(PLC) 성능이나 지중 등 사각지대 문제가 해결되고 올해 예정대로 250만호 사업을 추진했지만 산업부가 AMI 사업에 관여하면서 올해 사업은 불투명해졌다”며 “산업부가 전면에 나선 만큼 신호를 주기 전까지 사업 진행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보안문제도 시급한 과제로 주목된다. AMI는 전기 소비자 고유 사용 데이터를 활용하기 때문에 행여나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보안사고나 민원에 민감하다. AMI는 집단이용자의 다양한 패턴을 분석하고 데이터 가공과정을 거쳐 전문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활용할 수 있다. 결국 제3자에게 개별 정보가 집단 수집되는 만큼 이 과정에서 암호화나 보안이 우선 확립돼야 한다는 시각이다.

윤주연 한국인터넷진흥원 책임연구원은 “투명한 정보처리와 안전한 보호장치 마련은 소비자 신뢰 구축에 필수”라며 정보가 포함된 개인정보 일부 또는 전부를 삭제하거나 다른 정보로 대체함으로써 다른 정보와 결합해도 특정 개인을 식별하기 어렵도록 하는 일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