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계획된 한전 스마트그리드 AMI 구축 사업도 해를 넘기게 됐다. 입찰공고와 사업자 선정에 필요한 물리적인 시간을 따지면 두 달여 남은 올해 안 시작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올해 예정됐던 사업분이 2016년에 시작될 수 있을지, 2017년에 완료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AMI 구축은 국책 프로젝트답게 ‘예측 가능한 사업’이 아니라 시작부터 끝까지 ‘종잡을 수 없는 사업’이 된 지 오래다.
한 업체 임원은 “정부의 거창한 로드맵을 믿고 AMI 설계 및 생산에 뛰어들었거나 투자한 기업은 크게 후회하고 있다”며 “2013년 200만호 구축사업 이후 지난해는 기술적 문제로, 올해는 정부 제동이 걸리면서 2년 연속 사업이 진행되지 않는 게 무슨 국책 프로젝트냐”고 되물었다. 그는 일부 업체가 심각한 경영난 직면해 있는 현실을 감추지 않았다.
수천억원 규모 국가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에서 주무부처인 산업부 관리·집행력이 한전에 막히고, 다시 한전 의욕이 정부에 발목 잡히는 볼썽사나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사이 수십, 수백억원을 투자한 기업은 이제 와서 사업을 포기하지도 못하고 진퇴양난이다.
AMI 분야는 스마트미터(계량기)를 포함해 전력선통신(PLC)칩과 모뎀·데이터집합처리장치(DCU), 시스템설계·전기공사업체 등 수십 업종이 참여한다. 대부분 중소기업 영역이고, 관급 프로젝트를 따내지 못하면 기업 유지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영세성이 강한 업종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장 반응은 더 싸늘하게 나타난다.
이에 산업부 관계자는 “목표 수를 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AMI만 보급하는 게 아니라 이를 활용한 다양한 부가서비스도 고려해야 한다”며 “사업 로드맵을 다시 수정하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진행되면서 쌓인 불합리를 파헤쳐 실제 구축 숫자부터 재조정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결국 2020년까지로 수립된 당초 계획의 전면 재조정도 불가능한 얘기가 아닌 셈이다.
산업부는 전국에 깔린 AMI에서 발생된 데이터를 수요반응(DR)이나 가정용 에너지 관리 솔루션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 활용가치를 높이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