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벤처캐피털 주도권 잡기 시작 `금융위 vs 중기청`

[이슈분석] 벤처캐피털 주도권 잡기 시작 `금융위 vs 중기청`

지난달 30일 전업 신기술금융사의 자본금 요건을 20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완화하는 ‘여신전문금융업법(여전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중소기업 등 다양한 금융 수요를 효율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해 진입 규제를 완화했다는 것이 법을 관할하는 금융위원회 설명이다.

하지만 이면에는 최근 커진 모험자본(벤처캐피털) 시장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한 금융위원회 의지가 반영됐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런 배경에는 시장이 갈수록 커지는 벤처캐피털을 금융의 한 축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이 녹아 있다.

이번 조치에 기존 벤처캐피털 시장 주축을 형성해 온 창업투자회사를 관할하는 중소기업청에서는 ‘부처 이기주의’로 비춰질지 관망하는 분위기지만 내심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상황이다.

벤처캐피털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한 창업투자회사(중기청)와 신기술금융사(금융위)의 본격적인 주도권 경쟁이 수면으로 부상한 셈이다.

공정 경쟁을 통한 벤처캐피털 시장 확대는 반길 만한 일이지만 자칫 모험자본이 가장 필요한 초기기업에 투자가 위축되는 상황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시장 확대 vs 부처 이기주의

현재 벤처캐피털(VC) 관련 정책은 중소기업청, 금융위원회 등으로 나뉘어 있다.

창업투자사·창업투자조합은 중기청 소관 창업지원법·벤특법(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을, 신기술금융조합은 금융위 소관 ‘여전법’을 적용받는다.

이런 상황이 금융위의 ‘신기술금융사’와 중기청의 ‘창업투자회사’로 대변되는 주도권 경쟁으로 나타나는 셈이다.

금융위의 신기술금융사 설립 자본금 완화 움직임은 지난해에도 있었다.

금융위는 지난해 ‘여전법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하며 신기술금융사 설립 자본금 요건을 현행 200억원에서 창업투자회사와 동일한 50억원으로 낮추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여전법상 신기술금융사는 중견·중소기업 구분 없이 투자가 가능해 투자 범위에 사실상 제약이 없고 여신업무도 가능하다. 창업투자회사는 약정액의 일정 비율을 창업·벤처기업에 투자해야만 규모가 큰 기업에 투자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위가 신기술금융사 진입 문턱을 낮추면 창업투자회사가 대거 신기술금융사로 이탈할 수 있다.

당시 제약을 받으면서 신기술금융사와 경쟁해야 하는 중기청 관할 창업투자회사들의 불만이 터졌다. 이런 반발에 잠시 주춤했던 금융위가 한 발 물러선 100억원 카드를 이번에 다시 꺼내든 것이다.

◇신기술금융사도 창투조합 결성?

더 큰 불씨는 신기술금융사도 창업투자조합을 결성할 수 있는 법 개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법적으로 신기술금융사는 창업투자조합을 결성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자본금 기준이 완화되더라도 기존 창투사는 신기술금융사로 전환하기가 쉽지 않다. 기존에 운용하던 창투조합을 해산해야지만 전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러 투자 제약 조건에도 불구하고 기존 창투사들이 신기술금융사 전환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이다.

하지만 이 제약이 사라지면 기존 창투조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신기술금융사 전환이 가능해진다. 각종 규제가 많은 창투사로 남아 있을 이유가 사라지는 셈이다.

창투사는 신기술금융사에 비해 투자대상, 투자의무, 해외 투자규제, 투자금지업종을 비롯한 다양한 규제를 받고 있다.

특히 공모주 청약 부분에서는 희비가 극명하게 갈린다. 신기술금융사들이 기관투자자로 분류돼 공모주 청약을 할 수 있는 데 비해 창업투자회사는 불가능하다. 공모주 청약은 투자자가 단기간에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

◇벤처생태계 붕괴 or 성장

신기술금융사의 영역 확장을 반대하는 시각에서는 벤처캐피털 수요자인 기업의 상황을 강조한다.

벤처캐피털의 특성이 우수한 창업초기기업을 발굴, 육성하는 목적이 있는 만큼 각종 규제를 푼 신기술금융사로의 이탈은 그동안 힘들게 구축해 온 벤처생태계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우려다.

각종 규제가 풀리면 투자자가 안정적이고 단기간 수익창출이 가능한 분야로 몰리는 건 예상할 수 있는 수순이다.

실제로 기존 창투자사들의 주요 투자대상에는 창업자 및 벤처기업, 경영·기술 혁신형 기업으로 한정되어 있는 반면에 신기술금융사는 신기술사업자로만 규정되어 있다. 또 창업투자회사는 금융 및 보험업, 부동산업, 숙박 및 음식점업 등 다양한 투자금지 업종도 존재한다.

반면에 반대 입장에서는 이런 세세한 투자제약 조건이 창투사는 물론이고 다양한 형태의 창업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서비스업 고도화가 이뤄지면서 핀테크 등 새로운 형태의 창업이 봇물을 이루는데 이런 엄격한 제한이 오히려 산업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주장이다.

벤처캐피털 업계 관계자는 “단일 부처에서 일원화된 정책으로 벤처캐피털 업계의 투자와 성장을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근본적으로 하나의 법 아래 벤처 투자 정책이 통합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문제”라고 말했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