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기후변화 체제 수립을 위한 국제사회 논의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오는 30일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196개국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선진국과 개도국이 모두 참여하는 신기후변화체제 돌입을 선포한다. 교토의정서에 기반한 현 기후변화 대응체제 한계를 극복하고 선·개도국이 참여하는 2020년 이후(포스트2020) 새로운 기후변화체제를 마련한다. 협상은 지구온난화 원인인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데 세계 모든 국가가 참여한다는 단순한 프로세스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누가 얼마나 줄이느냐는 곧 누가 얼마나 많은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로 연결되기 때문에 각국 입장이 첨예하게 갈린다. 국제사회가 우리나라에 요구하는 것은 선진국과 개도국 중간자 위치에 적합한 ‘가교’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개도국에는 ‘모범’이, 선진국에는 ‘자극’이 될 절묘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신기후변화체제 협상과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짚어봤다.
◇신기후변화체제 수립엔 동의…구속력·책임엔 이견
신기후변화체제 논의가 시작된 이유는 기존 교토의정서 체제에선 선진국만 감축 의무를 부담했으나 개도국 배출량이 증가하면서 개도국 감축 동참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교토의정서 체제에선 온실가스 배출량 1·2위인 중국(26%)과 미국(16%)이 의무감축 대상국이 아니었으며 교토의정서 제2차 공약기간(2013~2020년) 참여국 배출량도 세계 배출량 15%에 불과해 실효성 문제가 대두됐다.
코펜하겐총회(COP15)에서 2012년 이후 포스트 교토체제 구축 협상이 결렬돼 국제 기후변화 대응체제 위기가 초래됐다. 국제사회는 더반총회(COP17)에서 교토의정서 연장과 2020년 이후 모든 국가에 적용하는 신기후변화체제 형성 협상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2012년 협상을 시작해 2015년까지 완료, 2020년부터 발효되도록 합의했다.
이후 바르샤바총회(COP19)에서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 자발적 기여내용(INDC)’을 스스로 결정해 신기후체계 협상에 앞서 제출하기로 합의했다. 지난달까지 147개국이 INDC 제출을 완료했다. 이번 파리총회(COP21)에선 신기후변화체제를 담은 ‘2015년 합의문(2015 Agreement)’ 타결이 시도된다. 합의문은 핵심 합의문(의정서 형태 등)과 당사국총회 이행 결정문으로 구성될 전망이다.
지구온난화를 막자는 대의에는 이견이 없지만 합의문에 이르기까지 넘어야할 산이 많다. 신기후변화체제 협상 최대 쟁점은 온실가스 감축을 국가 간, 특히 선·개도국 간 간극을 어떻게 둘 것인지에 관한 문제다.
개도국은 역사적 책임,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 원칙’과 개별국가 능력에 기초해 기존 기후변화협약상 국가 분류인 부속서 체제(부속서Ⅰ-온실가스 감축 의무국, 부속서Ⅱ-재원 지원 의무국)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 이에 반해 선진국은 부속서Ⅰ·Ⅱ에 따른 구분이 1992년 기후변화협약 채택 당시 상황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지난 20여년간 변화된 상황을 반영해 수정해야 한다.
국제적으로 법적 구속력이 있는 신기후변화체제 출범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으나 각국이 제출한 INDC 이행에 대한 법적 구속력 부여 여부에는 이견이 존재한다. EU와 군소도서국연합(AOSIS) 등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적극적 노력을 강조하는 국가는 INDC 내용 이행 자체에도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자고 주장한다.
반대로 미국·호주 등은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는 별도 문서로 채택해 유연성을 부여하되 자국 국내법으로 INDC 이행을 확보하는 실용적 접근을 원한다. 신기후변화체제 핵심 합의문 구속력 부여 여부는 내용 협상 후 최종 결정될 전망이다.
◇감축목표 벅찬 한국…책임은 져도 부담은 최소화해야
우리나라는 에너지다소비산업 구조로 세계 7위 온실가스 배출국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배출량이 많은 만큼 온실가스 감축활동에 계속 소극적 입장을 보일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많은 비용이 수반되는 온실가스 감축을 무작정 많이 하겠다고 나설 수도 없다. 온실가스 감축 부담이 늘수록 우리나라 산업·수출 경쟁력에 타격이 올수 있고 온실가스 감축 비용을 전기·가스 등 에너지요금에 그대로 전가해 요금을 대폭 인상한다면 거센 국민 반발과 국가경제에 커다란 불안요소가 될 수 있다.
정부는 지난 6월 우리나라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30년 배출전망치(BAU) 대비 37%로 결정했다. 확정된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BAU 8억5060만톤 보다 37% 준 5억3587만톤이다.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 세계 7위라는 국제적 책임과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 유치 등 그동안 쌓아온 기후변화 대응 리더십 등을 고려하고 에너지 신산업과 제조업 혁신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당초 수립했던 감축 시나리오보다 목표를 상향했다. 정부는 감축목표와 기후변화 적응대책, 산정 방법론 등 내용을 담은 INDC를 유엔에 제출했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대해 이행 당사자인 산업계는 “달성하기 벅차다”고 밝히며 앞으로 국제협상과 세부 정책 수립과정에서 산업계 부담을 최소화하는 이행 방안 마련을 요구했다. 산업계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감축비용을 최소 7조2000억원에서 최대 13조2700억원으로 분석했다. 이는 배출권거래제 참여기업 525개사에 연평균 최대 15억8000만원 비용이 부과된다는 뜻이다. 제철·정유·발전사 등 배출량 상위 10개 기업은 연간 4897억원을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위해 써야한다.
신기후변화체제 수립을 앞두고 산업계는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기술 개발 촉진과 보급 확대에 힘써야 한다고 밝혔다. 이산화탄소포집저장(CCS)기술 조기 상용화와 핵심설비 국산화·상용화를 위한 장기적이고 일관성 있는 지원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에너지절약시설 등 시설투자 지원을 확대하고 국내외 배출권 확보 지원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산업계는 주장했다. 무엇보다 산업 생산과 직결되는 온실가스 배출 규제는 상용화가 완료된 기술(설비) 도입을 유도하는 수준으로 국한하고 신기술과 설비 투자 지원 정책 확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본부장은 “국제무대에서 우리나라의 자발적 온실가스 감축노력을 적극 소개하고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와 높은 무역의존도를 가진 우리 여건을 최대한 반영해 더 이상 부담이 가중되지 않도록 협상에 임해야 한다”며 “제재가 아닌 인센티브에 의한 감축행동을 촉진하는 기후변화체제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INDC가 모두 완전히 이행될 경우(자료:환경부)>
<주요국 INDC 제출내용(자료:환경부)>
함봉균기자 hbkon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