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기차가 달리는 미국 시장에서 글로벌 완성차업계 전기차 전략이 서서히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차 가격은 내려가고, 배터리 용량은 늘려 주행거리 향상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오래 익숙해진 내연기관 차 고객에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과 함께 완성차 업계 친환경차 대응도 속도를 내는 양상이다. 미국 전기차 시장은 지난 9월까지 약 36만대가 팔리며 글로벌 전기차 시장점유율 약 40%에 육박했다. 올해만 약 13만대가 팔릴 것으로 예상됐다. 20일(현지시각) 찾은 미국 로스엔젤레스(LA)오토쇼에는 모두 20여종의 전기차가 선보였다. 신규 전기차뿐 아니라 기존 롱런 모델의 업그레이드 차량이 대거 공개됐다.
◇전기차 가격 경쟁, 제대로 불붙었다
이번 LA오토쇼에선 출품된 20여종의 순수전기차(BEV)나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 모델의 차량 스팩뿐 아니라 북미시장 판매가격이 공개됐다. 전기차 가격은 지난해 대비 5~10% 가량 떨어지는 추세다. 닛산과 제너럴모터스(GM)·기아차·BMW 이외 현대차·아우디·벤츠 등이 미국 전기차 시장에 가세함에 따라 내년 시장 경쟁은 한층 심화할 전망이다. 미국 클린에너지장관회의(CEM) 산하 다자간 정책포럼인 전기차이니셔티브(EVI)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세계 등록된 전기차는 66만5000여대로 이중 27만5000대(39%)가 미국에서 판매됐다.
중국 일부 완성차업체 제작차를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 모델 대부분이 미국 시장에 뛰어들어 가격경쟁 레이스에 돌입했다. 가장 많이 팔린 닛산 순수전기차 ‘리프(Leaf)’는 배터리 성능을 크게 향상시켰음에도 2016년 업그레이드 모델의 가격을 3만4000달러(약 3900만원)로 책정했다.
미국연방 보조금(약 1000만원)을 지원받으면 2000만원대에 구매 가능하다. 폭스바겐도 대표 순수전기차 모델 ‘e골프’ 가격을 지난해 3만5445달러에서 2만8995달러로 낮췄다. 기아차 역시 2016년형 ‘쏘울EV’ 가격을 3만3950달러(3900만원)로 책정했다. 한국과 비교하면 10% 이상 저렴한 가격이다. 그 밖에 순수전기차 중 미쓰비시 전기차 ‘I-MIEV’가 2만2995달러, 피아트 500e는 3만2795달러로 공개됐다. 1만달러 대 하이브리드카(HEV)도 나왔다. 도요타는 간판 하이브리드카 모델 ‘프리우스C’를 내년 미국시장에서 1만9560달러(약 2200만원)에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배터리 성능·보증기간도 늘어
미국 전기차 시장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차량 가격뿐 아니라 배터리 성능과 주행거리에 따른 보증기간도 대폭 연장되는 분위기다. 가격 인하와 주행 성능까지 시장 신뢰성을 얻겠다는 전략이 깔렸다. 닛산 ‘리프’는 내년도 모델부터 배터리 용량을 24㎾h에서 30㎾h로 25% 늘렸다. 한번 충전으로 172㎞를 달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시장에 나온 순수전기차중 주행거리가 가장 길다. 리프는 2012년부터 지금까지 약 20만대가 판매되며 매년 주행 성능 개선을 위해 모터 등 에너지 효율을 개선해오다 이번 배터리 용량을 확장시키며 초기 모델 대비 주행성능을 150% 향상시켰다.
리프에 추격에 나선 기아차는 ‘쏘울EV’을 앞세워 시장 공략에 나섰다. 27㎾h급 배터리를 장착해 리프 다음으로 긴 주행성능을 확보한데 이어 배터리 보증기간도 미국 내 최장인 10년간 10만 마일(16만㎞)에 달한다. 기아차는 전기차 최적화 설계 기술로 경량화와 구동효율을 높이는 데 집중할 방침이다. 피아트 500e는 1회 충전으로 약 140㎞를 주행한다.
닛산 관계자는 “주행성능 향상으로 미국 뿐 아니라 글로벌 전기차 시장 판매 1위를 유지하게 될 것”이라며 “리프는 오랜 시간 롱런한 모델로 고객 요구에 맞춰 매년 주행거리 성능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아우디 등 친환경차로 경쟁 가세
전기차 시장 후발업체 진입 전략도 눈에 띈다. 순수전기차(BEV)에 비해 시장 위험부담이 적은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모델로 전기차 시장에 가세하고 있다. 현대차는 LA오토쇼에서 ‘쏘나타 PHEV’를 공개했다. 미국 판매가격은 3만4600달러로 9.8㎾h급 리튬이온 이차전지를 탑재해 순수 전기로만 약 43㎞를 주행한다. 배터리 보증기간도 8년간 10만 마일로 소비자 부담을 낮췄다. 아우디도 자사 PHEV모델 ‘A3 e트론’를 미국 시장에 첫 공개했다.
A3 e트론은 8.8㎾h급 배터리를 장착했으며 내연기관과 함께 약 900㎞를 주행한다. 현대차와 아우디는 우선 미국시장에서 PHEV를 출시한후 순수전기차 등으로 라인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자사 최초 친환경차 모델 ‘아이오닉(i-oniq)’ 개발 막바지로, 내년 8월께 아이오닉(i-oniq) 기반 순수전기차(BEV)를 미국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도요타 친환경차 전략도 눈에 띈다. 도요타는 이번 LA오토쇼에서 기존 ‘프리우스’와 ‘캠리’ 뿐 아니라 ‘R4’, ‘아발론’ 등 기존 모든 내연기관 모델을 HEV와 PHEV 모델로 교체해 공개했다. 향후 전 차종을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 모델로 바꾼다는 전략이 담겼다. 도요타는 순수전기차(BEV)보다는 HEV와 PHEV로 친환경차 시장에 우선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로스엔젤레스(미국)=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