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0년 11월 28일 저녁, 10여명의 학자가 스물여덟 살 젊은 청년의 천문학 강의를 듣기 위해 런던 그레셤 대학 강의실에 모였다.
그 청년은 바로 17세기 영국 건축가이자 천문학자인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 1632~1723)이다.
세인트 폴 대성당을 비롯한 런던 53개 교회를 설계한 인물이다. 젊은 학자들이 모인 그곳에서 유용한 지식을 모으기 위한 단체를 만들기로 의견을 모았고 이것이 바로 왕립학회 시작이었다.
창립회원으로는 과학자 존 윌킨스, 철학자 조지프 그랜빌, 수학자 존 월리스, 현미경학자 로버트 훅 등이 있다.
처음에는 실험적 학문 정립이라는 목표에 맞게 회원 개개인이 경비를 들여 진행한 실험이나 연구를 발표하고 그것을 시연하는 활동이 주를 이뤘다.
처음에는 ‘왕립’이라는 것은 이름뿐이었지만 1662년 왕실 허가를 받아 왕립학회로 발돋움했다.
왕립학회 정식명칭은 ‘자연과학 진흥을 위한 런던왕립학회’(The Royal Society of London for Improving Nature Knowledge)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아이작 뉴턴, 벤저민 프랭클린, 찰스 다윈, 제임스 와트, 마이클 패러데이 등 세상을 바꿔놓은 과학자가 바로 이 왕립학회 회원이었다. 무려 80여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1665년에는 세계 최초로 과학 학술지 ‘철학회보(Philosophical Transactions)’를 발간했다. 동료 평가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왕립학회는 국제적 분쟁이 끊이지 않았던 시절에도 철저하게 국제화된 기관이다. 독일 출신 헨리 올덴버그가 ‘철학회보’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이탈리아 마르첼로 말피기, 네덜란드의 크리스티안 하위헌스와 같이 영국 국적이 아닌 사람에게도 왕립학회 문은 열려 있었다.
왕립학회는 뛰어난 가문의 자제가 아니어도 회원이 될 수 있었다. 부와 명예보다는 창의성과 성실함을 더욱 높게 평가했다. 뛰어난 관찰력과 성실함으로 미생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앤터니 반 레이우엔훅(Antonie van Leeuwenhoek, 1632~1723)은 초등교육밖에 받지 못했다.
런던의 트래펄가 광장에서 버킹엄 궁으로 이어지는 가로수 길에 왕립학회 건물이 있다. 건물 외벽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에는 라틴어로 이렇게 쓰여 있다.
“그 누구의 말도 취하지 마라.”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객관성을 다시 일깨우면서, 왕립학회를 방문하는 과학자는 경외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왕립학회가 올해로 설립 355년이 됐다. 여전히 왕립학회는 건재하고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고 있다.
현재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호킹, 팀 버너스-리와 같은 과학자들이 모여 있다. 350년이 넘는 왕립학회에서 활동한 회원은 8000명 정도다.
왕립학회에는 100여개 위원회가 있다. 중요한 과학 연구를 발굴하고 훌륭한 성과를 가려 정부기관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다.
위기도 있었다. 양의 피를 수혈하는 기이한 생체 실험으로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고 재정적 어려움에 빠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아이작 뉴턴이나 험프리 데이비와 같은 뛰어난 인물이 등장해 왕립학회 명성을 되살리기도 했다.
지난 11월 17일부터 왕립학회와 영국 국립과학관의 소장품 180여점이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서 특별 전시되고 있다.
‘뉴턴과 세상을 바꾼 위대한 실험들’이라는 이름으로 근대 과학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회다.
아이작 뉴턴의 데드 마스크, 윌리엄 허셜의 천체망원경, 영국 왕실의 혼천의 등 현대과학의 근간이 된 영국 근대과학 탄생을 다양한 전시물을 통해 체험할 수 있다. 영국 왕실 소장품이 해외에서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만큼 이번 기회를 통해 전시회에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이 전시회는 내년 2월 28일까지 진행된다.
심우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