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前대통령 서거]함께 달린 ICT·과학기술계 인사들이 기억하는 YS

“오로지 개혁만을 외치셨다. 담당자가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모든 권한을 일임했다. 컴퓨터에 대해선 전혀 몰랐지만 배우려는 의지가 강했다. 모시고 일하기에 정말좋은 분이었다.”

22일 김영삼 前 대통령 재임시절 함께 곁에서 일했던 인사들이 비통함을 이기며 김 대통령을 추억한 말이다. 고인은 민주화를 통한 사회 변화와 개혁에 일생을 바쳤고 국가 성장 기틀을 다졌다. 1994년 대한민국 정보통신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정보통신부(지금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들어 ‘ICT강국 대한민국’ 기초를 닦았다. 체신부에 과학기술처와 상공자원부 등 정보통신 관련 기능을 통합한 부처로 재탄생된 정통부는 우리나라가 ICT 강국으로 도약하는 밑거름이 됐다.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함께 달린 ICT·과학기술계 인사들이 기억하는 YS

◇박관용 전 국회의장 “일생을 민주화 헌신…청와대엔 장관 못 오게 해”

“일생을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분이다. 대통령 취임 후에는 민주화를 정책화하는 데 노력하셨다. 민주화 운동 구심점으로 큰 발자취를 남긴 분이 돌아가셔서 참으로 애석하게 생각한다.”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비서실장으로서 김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모셨던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기자와 전화통화에서도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정통부를 출범시킨 것은 오늘의 우리나라 ICT 산업을 육성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의장은 무엇보다 장관이 자기 권한에 속한 일을 주도적으로 해나갈 수 있도록 했다고 김 전 대통령의 집무스타일을 기억했다. 그는 “너무 깊게 관여하지 않았다. 오히려 청와대에 가져 오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왜 대통령이 몰라도 될 것으로 가지고 와서 보고하냐고 나무라기도 했을 정도다. 장관들이 소신껏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줬다”고 안타까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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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현 정보통신부 초대 장관 “정보통신 강국 초석 닦아”

“뒷바라지는 전부 당신(김 전 대통령)이 해줄테니, 잘 추진해서 꼭 이뤄낼 수 있도록 하라고 늘 격려해 주셨다.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정보화 시대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관련 전담 부처에 무한신뢰를 불어넣어 주셨다.”

정보통신부 초대 장관을 지낸 경상현 한국정보방송통신대연합 회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안타까워했다. 1995년 정보화촉진기본법을 제정한 것을 김 전 대통령의 큰 업적 중 하나로 꼽았다. 그는 “1995년에 입법돼서 국가 정보화 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관련 촉진기금도 법제화했다”며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정보화를 이를 수 있는 제도적 틀이 됐다”고 말했다.

또 “정통부는 체신부에서 이름만 바꾼 게 아니다”며 “과학기술처, 상공부로 분산돼 있던 정보통신 관련 일을 모두 한곳으로 모으면서 명실상부한 정보화 시대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국가정보화 초석을 다진 분을 갑작스럽게 잃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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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범 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장관에 모든 권한을 일임…인사 개입 한 적 없어”

“취임과 더불어 늘 강조했던 것이 개혁이었다. 우리나라를 일류 국가로 만들기 위해 정보화와 세계화를 강조하셨다”

이각범 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현 한국미래연구원 원장)은 김 전 대통령이 집권하는 동안 ‘정보화촉진 기본법’과 벤처 ‘산업육성과 지원을 위한 특별법’을 만든 것을 특별하게 기억했다. 김 전 대통령이 “앞으로 세계는 하나가 될 것이라며 1등이 되지 않으면 도태할 수밖에 없다며, 각 산업부문에서 세계화를 추진하도록 했다”고 회상했다. 또 “고위 공직자 재산을 공개하도록 했고 금융실명제도 도입했다. 이 많은 혁신 작업이 재임 시절 이뤄졌다. 장관에게 모든 권한을 일임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했다. 청와대가 기관장 선임 등에 개입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며 자율과 책임에 기초한 김 전 대통령의 업무스타일을 전했다. 대통령 재가를 받아야 하는 대한적십자사 총재 자리도 장관이 추천한 사람으로 했다. 이 전 수석은 “컴퓨터에 대해 잘 모르셨지만 당시 마우스로 더블클릭하는 것을 가르쳐 달라고 해서 알려드렸더니 회의 때 직접 파워포인트를 넘기기도 하셨다”며 “모시고 일하기 너무 좋은 분이었다”고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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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헌 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열린 귀를 가진 대통령”

“아주 세부적인 것까지 다 알지는 못하셨지만 중요한 방향이나 선택은 빠르게 잡아서 결정하셨다. 정보산업이 우리나라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는 것이라고 판단해 정보통신부를 창설하셨다.” 한이헌 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현 한국디지털미디어고등학교장)은 빨려들 것 같은 김 전 대통령 추진력에 수없이 놀랐다. 한 전 수석은 “얼마 전 언론에서 장·차관이 대통령께 업무 보고 하는 것을 무서워한다는 내용을 봤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서로가 다퉈서 보고를 하고 싶어했다”며 “특히 (당신이) 모르는 분야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것을 좋아했고 큰 흐름에서 전문적인 시각을 들으려고 했다”며 김 전 대통령 소통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함께 달린 ICT·과학기술계 인사들이 기억하는 YS

◇박성득 전 정보통신부 차관 “오직 사회 변화와 개혁에만 열정 쏟은 분”

“사회 변화와 개혁에 모든 열정을 쏟았던 분이었다. 그 외적인 일에 대해선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정통부 출범은 변화를 추구하고자 했던 일 중 하나로 봐야 한다.” 박성득 전 정보통신부 차관(현 한국개인정보보호협의회장)은 김 전 대통령의 뚝심을 깊이 뇌리에 새기고 있다. 박 전 차관은 “이동통신 경쟁 체제를 도입했고, CDMA통신 체계 추진사업도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많은 사람들이 반신반의하며 우려했지만 CDMA 방식으로 가야한다고 대통령이 결정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결국, 우리나라는 세계최초로 CDMA 상용화에 성공했다. 김 전 대통령은 매년 21세기클럽(문민정부 시절 장·차관 모임)이 주최하는 신년회와 송년회에 참석했는데, 올해는 얼굴을 보이지 못했다. 박 전 차관은 “뵙지 못하고 서거 소식을 접하게될 줄은 몰랐다”고 안타까워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