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언어를 잃는 순간 사랑을 지속하는 일도 불가능해진다' 진연주 '코케인'

고수들의 바둑은 기풍에 따라 보는 재미가 다르다. `목숨을 걸고 둔다`는 조치훈의 사생결단류 바둑이나 유창혁의 호쾌한 공격바둑, 일본 다케야미 마사끼의 `우주류`라든지, 고바야시의 `지하철 바둑`에 이르기까지 입신入神들의 개성은 제각기 다양하고 창의적이어서 바둑 감상의 재미를 한층 높인다.

개성이 없는 바둑은 아무리 강해도 깊은 인상을 남기기란 쉽지 않다. 이런 점에서 바둑은 개인의 인생이 축약된 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



소설이라는 장르 역시 작가의 개성이 온전하게 발현되고 완성되는 작업이다. 거대한 서사를 바탕으로 쓰여지거나, 인간의 깊고 깊은 심리를 파헤치거나, 의식의 흐름을 소재로 하거나, 철학적 의미를 담든지 간에, 작가가 선택하는 서술의 방향에 따라 다양한 형식으로 나타나고, 이런 형식은 특정 작가의 정체성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소설이란 작품은 또한 독자의 읽기 훈련의 수준에 따라 상반된 반응이 나타날 수 있는 지적 완성품이다. 스토리에 몰입해 하룻밤에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최대한 힘을 빼고 리듬과 사유와 문장을 음미하며 읽어야 하는 작품도 있다.

진연주의 첫 장편소설 `cocaine`(문학동네)은 후자에 가까운 작품이다. 만약 이 소설에서 재미난 스토리를 찾는 독자라면, 읽기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 대신 이성의 힘을 빼고, 글의 즐거움을 느끼고 싶은 독자라면 그는 분명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cocaine`이라는 제목에서 이미 암시하고 있듯, 이 작품은 환각적이며, 이 작가의 기존 단편 작품들 처럼 다분히 실험적이다. `Stream of Consciousness` 기법이 아니라면, 문학평론가 황현산이 적시했듯 `그들에게는 현실이 없고, 때로는 그들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초현실주의를 지향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코케인`은 실존 장소인 `코케인`이라는 카페를 배경으로 했다. 이 곳을 찾는 작가 굴드를 비롯해 몰리와 좀머, 페터, 이안 등 다양한 인물들의 내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작중 인물들의 연결고리는 없다. 단지 카페에 함께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곤 각자의 관심은 스스로의 내면에 있다.

가장 중요한 화자이자 주인공인 굴드는 언어의 틀에 갇히지 않고 계속해서 달아나는 것들을 끊임없이 언어로 표현하고자 한다. 이를테면 정체가 불분명한, 그래서 희미한 것들에 생기를 불어넣어 선명하게 만드는 글을 쓰는 것. 어쩌면 이 작품의 주제이자 소재라고 말할 수 있다.

`~온 몸으로 독은 퍼지고 퍼지고, 눈빛은 흐려지고, 세상의 경계가 풀리고, 온몸에 힘도 풀리고, 관능적이고 신비하고 치명적이라고 했다면 여자는 만족했을까. 사람은 물론이고 사물이나 현상 역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자신의 마음에 가장 흡족한,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여겨지는 언어가 있을 텐데.`(30~31p)

굴드의 글쓰기에 대한 집착은 소설 전반에 걸쳐 드러난다. 아마 작가 진연주의 내면을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지 싶다.

`굴드는 섬세하고 밀도높은 문장력을 구사하고 인물의 폐쇄적인 내면을 의식의 흐름에 따라 정밀하게 묘사한다는 데서 늘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굴드의 인물들은 모두 자폐적이고 소설 전반에서 현실에 대한 시야가 제한되었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그러니까 현실인식에 있어 한계를 드러냈다고 했다. 굴드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굴드가 생각할 때 가장 현실적인 것은 우발성에서 비롯되었다.`(101p)

평론가 황현산은 `실용적인 것이 되지 않으려는, 그래서 `느껴지지 않는` 소설가의 문체가 무위의 주인공들을 공기와 햇빛처럼 감싸서 그들 하나하나를 댄디로 만든다. 그들에게는 자연을 넘어서는 어떤 무기질의 강인함이 있다`고 평했다. 평론가 강지희는 `운명의 가장자리만을 서성거리는 잠재의식 속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서사 끝까지 최소한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성공한다. 무엇보다 마지막에 그가 쌓아왔던 관념들이 역설적으로 치유와 새로운 시작의 계기로 작동하는 순간의 문장들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이 완벽해 보였다`고 해설했다.

진연주의, 아니 굴드의 글쓰기는, 독자로 하여금 어떤 종류의 의무감을 강요하지 않는다. 작품속에서 굳이 감동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아름다움이나 선을 찾으려 하지 않아도 되고, 스토리의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앞 페이지를 다시 펼치지 않아도 된다.

독자들은 단지 긴장을 내려놓고, 약간은 몽롱한 상태에서 해방감을 즐기면 된다. `우리, 큰길 건너편에 있는 까르푸에 갈래요?`라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시사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성률 기자 nasy23@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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