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혜냐, 재앙이냐’
정유업계가 국제 유가 급락장세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당장은 도입 원료비 절감으로 이익이 늘지만 저유가가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이어져 석유제품 소비 감소로 이어지는 국면을 맞을 수 있다. 지난 2014년 저유가 때 조단위 이상 적자 악몽이 꿈틀댄다.
10일 정유업계는 지난주 두바이유 현물가격이 11년 9개월 만에 최저치인 배럴당 27.96달러까지 곤두박질치자 30달러 아래 가격이 얼마나 지속될지에 골몰했다. 업계 일각에서 20달러선 붕괴 가능성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TI) 선물과 런던 ICE 선물시장 북해산 브렌트유도 배럴당 33달러선으로 떨어지면서 세계 3대 유종 모두 강한 하락세에 시달리고 있다.
정유업계를 긴급점검한 산업통상자원부는 세계 석유재고치가 계속 늘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 갈등이 석유수출국기구(OPEC) 공급 경쟁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어 국제 유가약세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정유업계는 1분기까지는 저유가로 재고손실이 늘겠지만 그 보다 더 많이 늘어난 정제마진으로 수익성 수혜를 입을 것으로 내다봤다. 유가하락세가 석유제품 수요 위축으로 이어진다면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
정유사 수익성 지표가 되는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지난해 10월 배럴당 6.8달러에서 11월 8.7달러로 상승한 뒤 12월 8.6달러를 유지했다. 특히 12월 셋째, 넷째주 각각 배럴당 9.4, 9.0달러를 기록하며 연중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 이 시기 국제유가가 본격 하락세를 탄 것을 감안하면 영업이익은 대폭 늘어났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정유업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최대 32~34%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유종 간 가격 경쟁으로 두바이유 공식판매가격(OSP)도 하락해 정제마진은 배럴당 3.5달러 인상요인까지 더해졌다.
정유업계는 지금까지 상황은 좋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유가하락→경기 침체→수요 침체 사이클로 들어간다면 최악을 맞을 수도 있다. 중국 경기 불안이 가중되고 있고 브라질, 베네수엘라 등 신흥산유국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유가 하락으로 인해 재정위기를 맞았다. 글로벌 경기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석유제품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백영찬 현대증권 연구원은 “유가 하락이 원료비용 절감, 수요 증대효과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 산유국 재정 위기로 번지면 석유제품 소비 급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국제 유가와 정제마진을 감안하면 정유업계 1분기 실적은 분명 좋겠지만 이후 상황은 글로벌 수요 곡선과 맞물려 예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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