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폰 돌풍이다. 반년 치 휴대폰이 일주일 만에 팔린다. 언론이 집중 조명한다. 우체국에는 줄이 늘어서고 알뜰폰 인식이 바뀐다. 이동통신 3사보다 훨씬 저렴한 요금제에 관심이 쏠린다. 저가요금 경쟁이 일고 가계통신비가 뚝 떨어질 것만 같다. 정말 그럴까.
◇알뜰폰, 연초부터 무서운 돌풍
우체국 알뜰폰은 3개월마다 새로운 요금제를 내놓는다. 지금까지는 큰 반향이 없었다. 하루 500대 정도 팔린 게 고작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대박이 났다. 1월 4일 출시 후 닷새 만에 4만명 가까이 가입했다. 평소보다 열다섯 배 이상 많은 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그 중심에는 에넥스텔레콤 ‘제로요금제’가 있었다. 기본요금을 없앴다. 50분 무료통화도 줬다. 공짜폰(폴더폰)도 2800대 풀었다. 50분만 쓴다면 완전 공짜인 셈이다. 6000원을 내면 음성 230분, 데이터 500메가바이트(MB)를 제공했다. 이동통신망을 빌려 쓴다는 점, 우체국 유통망을 이용한다는 이점을 최대한 활용한 파격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홍보 효과’다. 4~8일 우체국 알뜰폰 가입현황을 보면 인기요금제 외에도 1만명 이상 가입했다. 제로요금제에 끌려 우체국을 찾은 사람이 다른 알뜰폰에 가입했다는 의미다. 에넥스 등은 평소 반년 치 물량이 일주일 만에 나가자 부랴부랴 새로운 휴대폰을 도입하기도 했다. 한 알뜰폰 업체 관계자는 “제로요금제의 가장 큰 성과는 알뜰폰을 일반인에게 알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통사는 관망 중…“저가요금 경쟁은 시기상조”
이동통신시장을 권투에 비유하면 이통사와 알뜰폰은 ‘체급’이 다르다. 알뜰폰이 가장 가벼운 ‘라이트 플라이급’이라면 이통사는 ‘슈퍼헤비급’이다. 애초에 게임 상대가 아니다. ‘미들급’쯤 되는 업체는 죄다 이통사 자회사고 그나마 CJ헬로비전이 SK텔레콤에 인수되면 이통사 맞수가 될 만한 알뜰폰 업체는 없다.
이통사는 사태를 관망한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알뜰폰 돌풍에 관심이 없다. 위협이 안 될 것으로 판단했다. 기껏해야 저가요금제 사용자를 조금 잃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본다. 일인당평균수익(ARPU)이 높은 가입자만 뺏기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다. 오히려 20% 요금할인(선택약정)에 더 민감하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알뜰폰 돌풍은 통화량이 적은 극히 일부 고객에게만 영향을 미친다”며 “특별한 대비책을 준비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통사가 관망하는 이유는 또 있다. 돌풍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알뜰폰 구조상 제로요금제나 3만원대 무제한 요금제를 지속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근거는 분명하다. 알뜰폰은 이통사에서 이동통신망을 빌려 쓰는 대신 ‘도매대가’를 지불하는데 지금처럼 계속 했다가는 십중팔구 지출이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한 마디로 적자라는 뜻이다.
제로요금제는 50분 동안 통화료가 무료다. 통화료를 알뜰폰 업체가 대신 내준다. 만약 모든 가입자가 50분 이하만 통화한다면 무조건 적자다. 에넥스는 과거 가입자 통계를 볼 때 그럴 리가 없다고 강조한다. 50분 넘게 통화하는 사람이 많을 게 분명하고 그러면 이익을 낼 수 있다고 자신한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뚜껑은 열어봐야 안다. 3만9900원에 음성과 데이터를 무제한(10GB) 제공하는 요금제는 당장 적자다. 도매대가와 무제한요금제 추가대가, 요금청구서 대행비까지 내고 나면 105원을 손해 보는 구조다.
◇알뜰폰 경쟁 중요…틈새시장과 LTE요금제 공략해야
그렇다면 알뜰폰 돌풍은 결국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인가. 제4 이동통신 역할을 해야 하는 알뜰폰은 이대로 무기력하게 ‘반짝 활약’에 만족할 것인가.
알뜰폰 업계는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 답이 있다고 본다. 알뜰폰 간 경쟁이 심화되면 제로요금제나 무제한요금제 등 차별화된 상품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이통사가 내놓기 어려운 틈새상품이 나오기 쉽다. 알뜰폰은 지난해 말 이동통신시장 점유율 10%를 돌파하면서 성장정체가 올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소비자 욕구를 읽은 과감한 틈새상품을 내놓으면 의외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알뜰폰의 가장 큰 약점은 롱텀에벌루션(LTE) 상품 부족이다. 전체 이동통신시장에서는 LTE가 69%를 차지했으나 알뜰폰에서는 14.3%에 불과하다. 대부분(80.8%)이 3세대(G) 이동통신이다. 특히 젊은 층을 끌어들이려면 LTE 상품 보강이 필수다. 문제는 고가 위주인 LTE 단말기 수급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또 3G에 비해 비싼 LTE 도매대가도 부담이다. 알뜰폰 LTE 도매대가를 인하해 달라는 요구가 나올 전망이다.
알뜰폰 업체 관계자는 “아무리 고객 호응이 좋아도 손해를 보면서까지 요금제를 내놓을 순 없는 일”이라며 “틈새시장을 노린 다양한 상품과 LTE요금제 확보가 알뜰폰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