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과학기술은 지난 50년 동안 세계가 놀랄 만큼 눈부시게 성장했다. 우리 과학기술이 발달해온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모태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있다. 공업기술 인프라가 없던 우리나라는 KIST를 설립해 그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 KIST가 올해 50주년을 맞는다. 과학기술 혁신으로 신성장동력을 키우는 것이 국가 핵심 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KIST 50주년을 맞아 역사와 주요 성과를 조명해본다.
KIST 역사는 1966년 2월 2일 박정희 대통령이 KIST 설립 정관에 서명하면서 시작됐다. KIST 초대 소장으로 최형섭 박사가 임명됐다. 한·미 양국 정부는 연구소 설립과 운영에 관한 ‘한·미 공동지원사업계획 협정서’에 조인했다. 2월 10일 법원에 등기하면서 재단법인으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orea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가 탄생했다.

KIST가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국가와 산업계에 필요한 기술 개발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었다. 6·25 한국전쟁 상처는 당시 완전히 복구되지 못했고, 국민 경제와 생활은 외국 원조에 의존하고 있었다. 국민소득(GNP)은 100달러 이하고 농업이 주산업이며 생활필수품을 생산하는 정도의 산업 활동이 시작되는 정도였다.
1967년 KIST는 우리나라가 세계로 뻗어 나아가는 데에 유리한 전략산업 분야를 찾고 과학기술진흥 장기전망 연구를 시작하고 ‘국가산업발전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데 집중했다. KIST 연구원은 정부 용역사업으로 국가 미래를 내다보는 공업화 방향을 제시했다.
철강공업, 중기계공업, 조선공업, 전자공업, 자동차공업과 군수산업 등의 육성방안, 포항종합제철공장 건설계획, 종합특수강공장 건설계획 작성 등의 조사연구도 담당했다. 이들 연구결과는 포항종합제철과 삼미종합특수강 공장 설립 등 우리나라 산업의 중공업화 계획 수립에 기초 자료가 됐다.
1977년 제4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준비할 때는 실무작업반에 책임연구원 10명이 전문분야별로 참여해 정책을 수립했다. 연구원은 정부가 주관하는 각종 자문회의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해 과학기술 지식을 제공했다. 과학적 접근방식이 중요한 정책수립과정에 크게 활용됐다. 정부가 주도하는 응용·개발연구, 경제기획원 예산업무 전산화, 체신부 전화요금 전산시스템 개발과 운영, 전매청 업무와 관세행정 전산화, 대학입시 예비고사 전산처리 등 정부 각종 행정처리 업무에 전산기능을 도입시켜 행정능률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런 노력은 오늘날 우리나라 철강, 조선, 자동차와 전자산업 등이 세계적 수준으로 성숙하는 토대가 됐다. 이들 산업은 KIST 연구원이 추진해 1980~1990년대에 걸쳐서 성숙한 기초조사로 제안한 육성계획을 국가가 성공적으로 수행한 결과물이다. 개발도상국이던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자본집약적 고부가가치 중공업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KIST 역할이 기초를 이루고 있다.
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