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국내 중소 팹리스업체에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문호를 개방한다. 사물인터넷(IoT)용 핵심 칩 파운드리 서비스를 시작한다. 애플과 퀄컴 등 대형 고객사만 상대하던 영업방식을 바꾼 것이다. 중소기업이 중국, 대만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비용을 줄이고 성능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 팹리스 생태계도 생기를 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1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시스템LSI사업부는 조만간 불특정다수 IoT 팹리스 반도체 고객사에 제공할 공정 프로세스디자인키트(PDK)를 공개한다. IoT 파운드리 서비스는 200㎜(8인치) 웨이퍼 공장인 기흥 6라인, 7라인에서 이뤄진다. 두 개 라인 생산용량은 월 웨이퍼 투입 기준 15만~20만장이다. 삼성전자는 자사 제품 생산과 파운드리 서비스를 병행한다.
6라인과 7라인에선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과 스마트카드IC 등 다양한 IoT용 반도체가 생산된다. 주력은 65나노 임베디드플래시 공정이다. 국내 주요 팹리스 업체 몇 곳이 삼성전자 파운드리 서비스를 받기로 합의하고 삼성 공정 파라메터에 맞춰 칩을 재설계 중이다. 상반기 내 완제품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추후 고객사 요구에 따라 130나노 등 서비스 공정 노드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삼성전자는 대형 전략 고객사에만 파운드리 영업을 하며 ‘소품종 대량생산’에 집중했다. 수익성 때문이다. 고객사 숫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지만 많은 물량을 소화할 수 있기에 파운드리 사업 초기부터 이 같은 전략을 고수해왔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연 매출 2조원 이상이 되지 않으면 사업을 쉽게 벌릴 수 없는 인력, 자산 구조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팹리스 업계가 “파운드리 서비스를 열어달라”고 지속 요청했음에도 삼성전자가 이를 들어주지 못했던 이유다.
중소 팹리스 반도체 업계에 200㎜ 파운드리 공장을 열어준 것은 ‘상생’과 ‘동반성장’에 무게를 둔 결정으로 해석된다.
국내 팹리스 업체는 중국 SMIC, 대만 UMC 등에 IoT용 칩 생산을 맡겨왔었다. 그러나 상이한 언어와 문화 차이로 생산 시 엇박자가 나는 경우가 많았다. 팹리스와 파운드리는 수율, 결과물 성능 향상을 위해 긴밀한 스킨십이 필수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서비스를 이용하면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함과 동시에 ‘빠른 조달’ 측면에서도 이점을 갖는다.
팹리스 업계 관계자는 “해외서 칩 생산을 할 때 커뮤니케이션 불일치로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았는데, 이런 문제를 해소할 수 있게 됐다”며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은 완벽하게 검증된 곳이어서 수율 확대, 칩 면적 최소화 등 단순한 원가 외적인 요소에서도 경쟁력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이번 결정으로 파운드리 사업 구조를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로 전환할지 주목한다.
한주엽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