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다면, 화면은 클수록 좋다.”
휴대성과 생산성은 노트북PC에서 양립할 수 없는 관계다. 크기가 작고 두께가 얇을수록 무게는 줄어든다. 그 대신 작은 화면에서 다양한 작업을 진행하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15인치대 노트북PC를 쓰다 13인치로 넘어오면 불과 2인치 차이인데도 작업량이나 속도에서 차이가 생긴다. 마치 5인치대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3.5인치로 바꾸면 못 견디는 것과 비슷하다.
휴대성과 성능 측면도 있다. 휴대성을 높이려면 작고 가벼워야 하는데 대부분 하드웨어 부품을 최소화해 가벼운 무게를 구현한다. 성능이 좋아질수록 무게는 더 늘어난다. 군대에서 쓰던 무거운 ‘군장’을 고성능 노트북에 빗대 표현하기도 한다. “군장 메고 간다”는 말도 여기에서 탄생했다.
그렇다면 함께 공존할 수 없는 이러한 요소가 동시에 실현된다면 어떨까. 모순에서 해답을 찾는 변증법적 사고가 필요하다. LG전자 노트북PC ‘그램 15’가 그 해답 중 하나다. LG전자가 쓰는 ‘반전의 혁신, 상상을 현실로’ 라든가 ‘그램 불변의 법칙’ 등도 타당한 카피이기는 하지만 딱 잘라 ‘그램 변증법’이라는 별칭을 붙이고 싶다.
김문기 넥스트데일리(이버즈) 기자 moon@nextdaily.co.kr
◇3부작 그램 프로젝트 끝판왕
‘그램 15’에 대해 얘기하려면 전작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3부작으로 제작된 영화 ‘반지의 제왕’이나 ‘본’ ‘엑스맨’ 시리즈 등과 비슷하다. 전작을 보지 않고는 후속작을 설명할 수 없다.
LG전자는 PC 분야에서 ㎏을 g으로 바꾸자는 의미로 ‘그램 프로젝트’를 시작, 2014년 첫 모델인 ‘그램 13’을 내놨다. 난립하던 노트북PC 선택 기준에서 ‘무게’를 중심에 놓았다. 노트북PC 고정관념을 깨기 위함이다. 980g이라는 가벼운 무게에 디자인과 성능, 편의성까지 야무지게 챙겨 넣었다.
1년 후 14인치로 크기를 늘리면서 무게는 동일한 980g인 ‘그램 14’를 내놨다. 화면 크기를 늘리더라도 동일한 무게를 구현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램’이 단발로 끝나지 않는다는, 허를 찌르는 한 수다.
두 제품은 PC 시장 위축에도 출시 22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기준 누적 판매량 30만대를 돌파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올해 그램 15는 15.6인치 대화면으로 980g 대열에 합류했다. 2016년형 그램 15는 기존 그램 시리즈와 동일한 무게로 설계됐다. 게다가 이미 출시된 그램 13과 그램 14 장점을 뽑아낸 완성형 모델로 업그레이드됐다.
그램 시리즈 크기와 무게를 비교해보면 LG전자가 무게를 줄이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램 13 크기는 303×214㎜, 두께 13.6㎜다. 그램 14는 324×225㎜로 살짝 길어졌지만 두께는 13.4㎜로 오히려 줄었다. 그램 15는 커진 화면 크기만큼 358×228㎜로 늘었다. 두께는 16.8㎜로 소폭 증가했지만 무게는 980g 그대로다.
고정관념을 깨고 무게를 새로운 노트북 기준으로 만든 그램 13, 화면이 커지고 성능이 올라가더라도 무게는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음을 보여준 허를 찌르는 후속작 그램 14, 앞선 시리즈 장점을 흡수하면서 휴대성과 생산성을 모두 잡은 그램 15까지 ‘그램 불변의 법칙’을 완성했다.
◇아메리카노 두 잔 무게
출근 전 스마트폰으로 확인하는 바깥 온도와 실제로 문을 열고 나갔을 때 마주하는 온도는 다를 때가 많다. 영상 온도에 안심하고 나갔다가 매서운 바람에 혼쭐이 나기도 하고, 영하 날씨에 꼭꼭 껴입고 나왔는데 의외로 따뜻할 때도 있다.
그램 15 무게가 딱 날씨와 비슷하다. 1㎏도 안 되는 980g. 물론 가볍다. 다만 글로 백 번 설명해도 수치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집 안에서 스마트폰만 두드린다고 실제 체감온도를 알 수 없다. 직접 잡아보고 들어봐야 진가를 안다.
실제로 들어보면 가볍다. 확실한 체감은 가방에 넣고 다닐 때다. 이전부터 사용해오던 노트북PC도 가벼운 편에 속한다. 1.48㎏의 13.3인치 2013년형 HP ‘스펙터’나 1.58㎏의 13.3인치 2015년형 ‘맥북 프로’를 번갈아 써왔다. 충분히 가벼울 것이라 생각했던 두 제품은 그램 15를 넣고 다니면서 무거운 노트북PC가 됐다. 오랫동안 들고 다니면 확실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특히 버스나 지하철에서 서서 이동할 때 부담 없는 가방 무게를 경험할 수 있다.
사실 그램15는 980g보다 더 가벼운 편이다. 그램 시리즈는 단순 3종 모델이 아니라 색상과 스펙별 수십여가지로 나뉜다. 예를 들어 마그네슘 합금 초기 색상은 검회색 계열이다. 컬러별 상품으로 만드는 데 사용되는 도료 양이 다르다. 쓰이는 도료만큼 무게가 달라질 수 있다. 스펙도 그렇다. CPU나 메모리, SSD 등이 어떻게 쓰이는지에 따라 무게도 소폭 조정된다.
LG전자에 따르면 수백 번 양산 시뮬레이션 결과 중 가장 무거운 980g을 정식 무게로 표시했다고 한다. 무게를 중시하는 노트북PC다 보니 광고된 무게보다 무거운 제품이 소비자에게 전달돼서는 안 된다는 철칙 하에 계산된 수치다. 꼼꼼한 설정이다.
가벼움은 LG전자의 치열한 제품개발뿐만 아니라 LG그룹사 간 적극적 협업으로 이뤄졌다. LG디스플레이는 베젤 두께를 약 30% 줄인 슈퍼슬림 베젤을 적용했다. 상단 9.1㎜, 측면 6.7㎜ 크기를 갖췄다. 15.6인치 노트북PC가 14인치대 제품과 비슷한 크기로 구현될 수 있었던 비결이다.
무게가 가벼워질수록 걱정되는 부분이 바로 배터리다. 물리적 배터리를 줄여 무게를 낮추는 제품도 있다. LG전자는 LG화학 기술력을 빌어 문제를 해결했다. LG화학은 가벼우면서도 밀도를 높여 최장 10.5시간 사용할 수 있는 효율적 배터리 솔루션을 그램 15에 제공했다.
수많은 부품을 효율적으로 배치해야 더 슬림하게 디자인할 수 있다. 초밀집 PCB 설계 기술은 LG이노텍과 협력으로 가능했다.
전체 무게를 덜어내고자 경주용 자동차 등에 쓰이는 마그네슘 합금 소재를 케이스에 사용했다. 마그네슘 합금은 통상적으로 인장강도가 높은데 비해 무게는 가볍다. 방열성능도 높기에 열을 효과적으로 배출할 수 있다. 밴드게이트로 곤혹을 치른 애플도 아이폰6S에서 마그네슘 소재를 추가한 바 있고 올해 출시될 차세대 스마트폰에도 마그네슘 소재가 주로 쓰일 전망이다.
격투기 경기 전 계체량 측정에서 1g이라도 줄이고자 속옷까지 벗고 체중계에 오르는 선수를 간혹 목격할 수 있다. 무대에 오르고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그램 15도 무게를 최소화하려 후면에 부착되는 스티커도 벗어 던졌다. 스티커 무게는 0.2g 정도 수준이지만 이마저도 레이저 가공으로 대체했다.
◇갖출 건 다 갖췄다
가벼운 무게를 뒷받침해주는 간접 요인으로 두뇌 역할을 담당하는 CPU를 꼽을 수 있다. 인텔 6세대 스카이레이크 프로세서는 전력효율을 높여 배터리를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돕는다. 성능도 높아졌다. 그래픽은 한층 더 매끄러워졌다.
인텔 6세대 스카이레이크는 14나노미터(㎚) 공정으로 설계됐다. 33% 더 작아진 패키지 덕분에 전체적으로 얇고 가벼운 플랫폼 형태를 구현할 수 있다. 그램 15로서는 최적 CPU인 셈이다.
리뷰 제품은 인텔 6세대 i7-6500U 프로세서를 탑재했다. ‘U’모델은 저전력 프로세서군으로 얇고 가벼운 울트라북을 대상으로 설계된 CPU다. 내장된 통합 그래픽은 인텔 HD 그래픽스 520이다. 그램13에 장착된 그래픽 대비 40% 성능 향상이 이뤄졌다. 4K 디스플레이를 최다 세 대 지원할 정도로 우수한 성능을 뽐낸다. M.2규격 SSD 512GB 모델을 탑재해 처리 속도를 배가했다. 메모리는 8GB다.
디스플레이는 풀HD IPS 패널을 적용했다. 무게를 줄이고자 더 작은 15인치 패널을 사용할 수 있겠지만 15.6인치 풀 사이즈 크기에 16:9 와이드 비율을 지녔다. 전력효율과 성능, 가격과 활용도를 생각했을 때 풀HD 해상도는 최적 선택이다.
그램 15는 가벼운 무게와 성능 외에도 편의성을 높인 사용자경험(UX)을 추가했다.
우선 고음질 사운드를 경험할 수 있다. 오디오 명가인 울프슨 스테레오 DAC를 탑재했다. 좀 더 명쾌한 음질을 들을 수 있다.
길어진 보디에 맞춘 키보드도 눈에 띈다. 우측에 숫자키패드를 적용해 데스크톱PC 키보드처럼 활용할 수 있다. 평소 엑셀과 표 작업을 자주 하는데 숫자 키패드가 있어 타 노트북PC보다 작업 속도가 한층 더 빨라졌다.
확장성 또한 흡족한 부분이다. 좌측에는 USB 3.0과 표준 HDMI, USB 타입C 포트가 자리잡고 있다. 우측에는 마이크로SD카드슬롯과 오디오 단자, USB 3.0과 USB 2.0 각 1개, 슬림 캔싱턴록이 위치했다. 생각보다 많은 포트가 지원된다. 최근 노트북PC가 더 슬림하고 가볍게 설계되면서 좌우 포트를 생략하는 사례가 많다. 애플 신형 맥북은 USB 타입C 포트 하나만을 남겨두고 여타 포트를 모두 없애기도 했다. 여러 액세서리를 활용하는 사용자라면 눈여겨 볼 대목이다.
하드웨어 측면에서 사용자 배려도 눈길을 끌지만 내부 소프트웨어도 공을 들였다. 그 중에서 ‘LG 컨트롤 센터’는 꼭 열어보길 권한다. ‘전원관리 설정’에서는 컴퓨터 성능과 USB 충전 설정, 배터리 수명 연장 등을 켜고 끌 수 있다. 배터리 교체 시점까지 알 수 있다. ‘인스턴트 부팅’을 선택하면 노트북을 열었을 때 자동으로 부팅되도록 설정해 놓을 수 있다.
보안에도 특히 힘썼다. ‘시큐리티 센터’로 프라이버시 보호뿐만 아니라 도난방지까지 해둘 수 있다. ‘페이스-인’은 얼굴을 인식해 잠금을 해제할 수 있는 기능이다.
◇노트북PC 시장 ‘이노베이터’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국내 시장에서 판매된 노트북PC 중 절반가량이 15인치대 모델이다. 그 다음으로는 13인치대가 많았다. 대체적으로 생산성을 고려한다면 15인치를, 무게 등 휴대가 중시되면 13인치를 선택했다. 무게와 크기가 주요 선택 기준으로 작용했다.
대체적으로 휴대성을 중시하는 소비자는 1.1~1.4㎏ 수준 13인치대 노트북PC를 선택했다. 화면 크기를 선호하는 소비자는 1.6~2.7㎏ 무게를 지닌 15인치대 제품을 주로 구매했다. 핵심은 두 제품 모두 노트북PC라는 점이다. 노트북PC는 결국 휴대기기다. 어느 한 쪽은 아쉽게 마련이다.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혁신’은 모순에서 온다. LG전자가 꽤 그럴싸한 혁신을 가지고 왔다. 무게와 크기라는 양분된 선택지에서 헤매고 있다면 구매 전 ‘그램 15’를 체험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