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A와 B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절친’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들어온 뒤부터 두 사람 사이에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A는 가정 형편과 성적, 성격, 외모 등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소위 ‘엄친아’였던 반면, B는 모든 면에서 평범한 학생이었다. 둘 사이가 소원해진 것은 B가 A에게 부러움과 열등감을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러던 어느 날, 수능시험을 앞둔 A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B는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은’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독일어에는 이런 감정을 표현하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단어가 있다. 손해를 뜻하는 ‘샤덴(Schaden)’과 기쁨이라는 뜻을 담은 ‘프로이데(freude)’를 합성한 이 단어는 타인의 불행에서 느끼는 기쁨을 표현한다.
대체 이런 감정은 왜 생기는 걸까. 일본 교토대 의학대학원 다카하시 히데히코 교수팀은 샤덴프로이데가 생기는 동안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실험을 통해 직접 확인하고 그 결과를 2009년 2월 ‘사이언스’에 발표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다카하시 교수팀은 평균연령 22세의 신체 건강한 남녀 19명에게 가상의 시나리오를 주고 읽으면서 자신을 주인공으로 생각하도록 했다. 주인공은 능력이나 경제력, 사회적 지위 등 모든 면에서 평범한 사람이며 그를 제외한 등장인물은 세 명으로 모두 대학 동창생이다.
시나리오에는 등장인물들의 대학생활과, 사회에 진출한 뒤 동창회에서 다시 만난 이야기가 묘사돼 있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가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안 뇌에서 나타나는 반응을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촬영해 분석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강한 질투를 느끼는 사람에게 불행이 닥쳤을 때 우리 뇌는 기쁨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연구팀이 실험 참가자들에게 건넨 시나리오에는 실제로 있을 법한 우리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주인공을 제외한 등장인물 가운데 유일한 동성인 ‘최고야’ 씨(가명)는 주인공과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고 전공과 장래 희망도 비슷하다. 무엇보다 주인공보다 성적이 좋고 같은 동아리에서 최고의 실력자로 평가받는 ‘에이스’다. 이성 등장인물인 ‘나잘난’ 씨(가명) 역시 출중한 능력을 뽐내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주인공과는 전공도 다르고 속한 동아리나 장래 희망도 다르다. 또 다른 이성인 ‘평범해’ 씨(가명)는 주인공처럼 평범한 사람이며 전공이나 동아리, 진로 희망 모두 주인공과는 별로 관련이 없다.
연구팀은 먼저 실험 참가자들이 설정된 상황을 받아들이는 동안 뇌에서 나타나는 반응을 관찰했다. 그리고 이들에게 ‘등장인물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점수를 매기게 했다. 1점은 전혀 부럽지 않은 것이었고 6점은 가장 부럽다는 것이다.
설문과 fMRI 영상을 분석한 결과, 질투를 강하게 느낄수록 불안한 감정이나 고통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배측전방대상피질(dorsal Anterior Cingulate Cortex, dACC)’이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가자들이 최고야 씨와 나잘난 씨, 평범해 씨에게 느낀 질투 정도는 각각 4점, 2점, 1점 정도였는데, 배측전방대상피질에서 나타난 반응의 크기도 같은 순서였다. 자신과 관련 없는 분야에서 잘나가거나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보다 자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을 때 뇌가 강한 반응을 보이면서 질투를 느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뇌에 나타나는 반응은 ‘고통’이다.
연구팀은 다음으로 최고야 씨와 평범해 씨가 시험 도중 부정행위를 한 것으로 적발됐다거나, 여자(남자)친구가 다른 사람과 바람을 피웠다는 이야기 등을 시나리오에 넣고 역시 설문조사와 fMRI 측정을 했다.
설문조사 결과 최고야 씨가 겪은 불행에 참가자들은 평균 3.3점의 샤덴프로이데 점수를 준 반면 평범해 씨가 겪은 불행에는 1점의 점수를 줬다. fMRI 결과도 비슷했는데, 최고야 씨가 겪은 불행을 읽어 내려가는 참가자의 뇌에서는 기쁨과 만족감을 발생시키는 보상회로인 ‘복측선조체(ventral striatum)’ 활동이 더 많이 활발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하게 질투를 느끼는 사람이 불행을 겪을 때 우리 뇌는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미나 시카라 교수는 지인이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때, 평소 그에 대해 느꼈던 부러움이 클수록 기쁨에 해당하는 생리적인 반응이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를 ‘뉴욕과학아카데미연보’ 2013년 9월 24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불쌍한 노인(연민)과 잘나가는 전문직(부러움), 마약중독자(혐오), 학생(뿌듯함) 등의 사진을 보여주고 그들이 겪는 상황을 묘사했을 때 실험 참가자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물어봤다. 그와 동시에 근전도 측정기를 볼에 부착해 참가자가 미세하게라도 미소를 지을 때 나타나는 전기적인 반응을 측정했다. 생리적인 반응을 포착해 ‘가식’으로 속일 수 없는 ‘본심’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실험 결과는 다카하시 교수팀의 결과와 일맥상통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자기가 부러움을 느끼는 대상이 ‘5달러를 주웠다’는 긍정적인 상황보다 ‘택시가 튄 물에 흠뻑 젖었다’는 부정적인 상황에 더 활짝 웃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말 샤덴프로이데가 본능이라면, 사람은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 걸까. 다카하시 교수팀과 시카라 교수팀의 연구에는 우리가 이 불편한 기쁨에서 벗어나게 해 줄 단서가 제시돼 있다. 두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주목할 부분은 ‘질투의 대상이 어느 영역에 속해 있는지’다. 나와 관련이 없거나 내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분야에 속한 사람은, 아무리 잘나가도 질투를 느끼거나 그 사람의 불행에 기뻐하는 생체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또 돈이 관련됐을 때 질투가 커졌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친구나 잘나가는 전문직이라는 조건에 대부분 질투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를 슬기롭게 해결하면 질투를 해소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카하시 교수는 “전공이나 동아리를 바꾸는 것처럼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분야를 바꿀 수도 있고, 열심히 노력해서 실력을 쌓는 것도 방법”이라며 “궁극적으로는 인생의 목표를 (경제적 성공이 아닌 다른 분야로) 재설정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은 이화여대 뇌·인지과학과 교수는 질투가 인간의 유일한 본성은 아니므로 좌절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사람은 악하고 선한 본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며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돈을 쓸 때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결국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한 속성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악한 속성을 최대한 멀리하는 것이 ‘뇌’도 ‘나’도 행복해지는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