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가 28일 20대 총선에 적용할 선거구획정안을 가까스로 국회에 최종 제출하면서 획정안 처리 문제가 ‘필리버스터 정국’ 분수령으로 떠올랐다. 여야는 테러방지법 처리를 둘러싸고 무한대치 중이지만 더 이상 선거구 획정은 미룰 수 없다는 공감대를 갖고 있다. 선거구획정안 처리만을 위한 원포인트 본회의 가능성도 점쳐진다. 극단적 대치상황에 돌파구가 뚫릴지 주목된다.
획정위는 이날 오전 총선일을 고작 45일 남겨두고 국회에 선거구획정안을 제출했다. 이미 제출 법정시한을 139일이나 넘겼다. 국회는 소관 상임위원회인 안전행정위원회를 거쳐 29일 본회의에 이를 상정할 계획이다.
박영수 선거구획정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획정위의 대내외적 한계로 법정 제출 기한인 작년 10월 13일을 훌쩍 넘길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박 위원장은 “선거를 불과 40여일 앞두고 있다는 절박감과 선거구 변경이 대폭 일어날 경우 야기될 혼란을 우려해 기존에 일부 불합리한 선거구가 있더라도 조정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향후 의미 있는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이번에 노정된 문제점을 제대로 진단하고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라며 “조속한 시일 내에 선거구가 확정돼 20대 총선이 바르고 공정하게 치러질 수 있기를 국민과 함께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대 관건은 야당이 진행 중인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이다. 지난 23일부터 시작된 무제한 토론은 28일까지 엿새째 이어졌으며, 이변이 없는 한 29일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야당이 무제한 토론을 중단하는 전제조건이 없는 한 표결 처리는 불가능한 상태다.
여야 모두 여러 차례 협상 테이블에 앉았지만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선거구획정안이 국회에 제출되면서 필리버스터 대치 정국을 푸는 열쇠가 될지 관심이 쏠린다.
야당 주도 필리버스터는 이미 테러방지법를 전국민적 이슈로 키우면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테러방지법 우려 조항과 개선점을 국민에게 알렸고, 또 필리버스터에 나선 의원들 역시 이목을 끌면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필리버스터를 무조건 끌고 가는 것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29일 선거구획정 합의처리 약속을 깨고, 결국 4·13 총선 일정에 차질이 생긴다면 필리버스터로 어렵사리 획득한 정국 주도권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야당 스스로 필리버스터를 중단할 때 까지는 타협이나 양보는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선거구획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만큼, 당초 예정대로 29일 이를 처리하기 위해 필리버스터가 중단되면 곧바로 테러방지법을 표결하고,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북한인권법, 사이버테러방지법과 함께 획정안을 담은 공직선거법도 처리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선거법이 본회의에서 처리되면 그동안 정부와 여당이 강조해 온 ‘노동개혁 4개 법안’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나머지 쟁점 법안은 휴지 조각이 될 가능성이 높아 추가 방안 모색이 필요한 상황이다.
여당의 이런 시나리오에 야당은 이미 국민적 이슈가 된 필리버스터에 대한 국민여론을 살피면서 최종결정을 내릴 공산이 크다. 선거구획정을 미루더라도 필리버스터 연장이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중단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 필리버스터정국이 가져올 후폭풍 또한 만만치 않은 만큼 정치적 계산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
끝내 여야가 돌파구를 마련하기 못해 본회의가 개의되지 않는다면 총선 연기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29일은 4·13 총선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기 위한 ‘마지노선’이다. 29일 본회의가 필리버스터 정국의 최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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