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 사업(B&I:배터리·정보전자소재)에 확실한 강점을 가졌고, 잘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올해 본격 성장세가 예상되는 만큼 ‘주력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야 한다.”
정철길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은 최근 사장단 회의에서 B&I 부문 ‘띄우기’를 주문했다. 회사 측은 “배터리 등 신사업 분야에서 선발 주자와 직접 경쟁이 가능한 ‘플레이어’로서 확실한 이미지를 심어줘야 한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했다.
조용한 성격의 정 부회장으로서 파격적 입장 전환이다. SK이노베이션은 중국·한국 배터리 공장이 최근 대형 거래처를 확보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리튬배터리 분리막(LiBS), 연성회로기판소재(FCCL) 실적도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정 부회장의 가장 큰 고민은 해당 사업을 ‘비주류’로 분류하고, 심지어 매각설까지 나온다는 것이다. 성장사업으로 강점을 인정받겠다는 게 입장 변화의 핵심이다.
SK이노베이션 B&I 사업은 벤츠 전기차 배터리 수주와 설비 투자 등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전기차 배터리 사업은 중국 베이징과 한국 서산이 양대 거점이다. 두 곳 모두 신규 물량 확보로 증설이 예상된다.
SK이노베이션은 2014년 1월 베이징전공, 베이징자동차와 손잡고 ‘베이징 BESK테크놀로지’를 설립했다. 지난해 중국 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 판매 대수는 총 33만1000대로 세계 최다다. 이 가운데 전기차만 24만7500대다. SK이노베이션 배터리를 탑재한 베이징자동차 전기차는 1만7000대나 팔렸다. 7만대를 팔아 치운 1위 기업 비야디(BYD)와 격차가 있지만 추격이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다. 올해 중국 정부는 1회 충전 주행거리 150㎞ 이상 전기 승용차 보조금을 전년 대비 13%가량 인상하고 관용 구매 차량 가운데 전기차 비중을 50%로 높이는 등 수요도 충분하다.
서산 공장은 벤츠 모기업인 다임러그룹용 배터리 생산에 곧 돌입한다. 2017년 출시 예정의 벤츠 전기차 모델에는 SK이노베이션이 공급한 리튬이온 배터리 셀이 들어간다. 공급은 올해 말부터다. 현재 생산 능력의 세 배 규모다. 오는 6월까지 서산공장은 현대·기아차 물량 공급에 주력하고 이후 다임러 공급 물량 맞추기 준비에 들어간다. 증설 없이는 신규 물량 공급은 불가능한 상태다.
LiBS, FCCL 사업도 대형 수요처 확보에 따라 성장이 예상된다. 공급 과잉으로 잠시 문을 닫은 충북 청주 LiBS 생산라인은 지난해 7월 재가동했다. 이차전지 제조사로부터 LiBS 주문과 계약이 잇따르면서 생산량이 늘었다. 청주 생산라인 규모는 연산 7000만㎡다. 전기차 23만대분 배터리에 들어갈 수 있는 양이다. 연산 1억8000만㎡ 증평 생산라인과 더불어 중국, 유럽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세계 1위 공급사 아사히카세이를 바짝 추격하면서 3~4위 업체와 격차도 벌린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2014년 기준으로 글로벌 LiBS 시장에서 점유율 18%를 차지했다.
FCCL은 회로기판 세계 1위 업체인 일본 맥트론을 공급사로 잡고 있다. 맥트론이 이를 가공해 FPCB(연성회로기판)를 휴대폰 제조사에 공급하는 구조로, 글로벌 초대형 제조사와 공급 계약이 진행되고 있다. FCCL 수주 물량도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후발 주자로서 조용한 행보를 보여 왔다”면서 “올해 신성장동력사업 경쟁력을 외부에 알리는 등 이 분야 브랜드파워 제고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최호 전기전력 전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