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A씨는 가정에서 사용하던 모 외국 가전 기업 냉장고 컴프레셔가 고장 나 해당 기업 AS센터에 전화를 걸었다가 과도한 수리비용에 경악했다. 200만원대에 구입한 냉장고 수리비가 100만원을 웃돌 것이란 이야기를 듣고 나서다. 공임비도 비쌌고 국내에 해당 제품을 수리할 부품이 없어 외국에서 배송 받아야 해 추가 비용이 들기도 했고 부품 자체도 고가였다.
외산 가전 사후관리서비스(AS) 과대 비용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소비자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되는 이슈다. 국내 가전 기업에 비해 전국 AS망이 현저히 적고 공임비, 출장비까지 비싼데다가 부품도 해외에서 수급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추가 관세 등을 포함하면 차라리 새 제품을 한 대 사는 비용과 맞먹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외산가전을 구매하는 소비자도 이를 감안하고 수입가전을 구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내 차에 비해 수리비용이 비싼 수입차를 구매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외산 가전, 제품 무상 수리기간은 국산과 동일하나 공임비·출장비는 더 높아
외국 가전 기업의 제품 무상 서비스 기간은 국내 가전 기업과 동일하다. 국내에서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소비자기본법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비자기본법에 의거해 소비자과실을 제외하면 구입일로부터 1년간 무상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유일하게 독일 가전 기업 밀레만 국내에서 2년 무상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주요 부품 무상서비스 기간도 법에 의거해 월풀, 하이얼코리아, 일렉트로룩스, GE 등은 TV패널 2년, 냉장고 컴프레셔 3년, 세탁기 모터 3년 무상서비스(소비자과실 제외)를 제공하고 있다. 하이얼이 지난해 창립 30주년을 맞이해 TV패널 국내 최장 5년, 냉장고와 세탁기 무상 수리 서비스 기간을 10년으로 늘렸으나 이벤트 기간 종료 후 모두 원상 복귀했다.
삼성, LG가 백색가전 주요 핵심 부품인 냉장고 컴프레셔, 세탁기 모터 등에서 법적 준수 기간을 훌쩍 넘긴 10년 무상 보증 등을 제공하는 것에 비해 외산 가전 무상 부품 수리 기간이 짧은 것은 사실이다. 한번 구입하면 10년 이상은 사용하는 냉장고나 세탁기 제품은 2, 3년이 지난 후 고장이 발생하는 빈도 수가 높기 때문이다.
무상 서비스 기간이 지난 후 가전제품을 수리하면 공임비(수리비), 출장비, 부품비 세 가지 항목을 합산해 총 수리비용을 고객에게 청구한다.
800L 대 양문형 냉장고 기준(제품에 따라 상이할 수 있음) 삼성전자 냉장고 컴프레셔 수리 출장비는 1만5000원이다. 공임비는 6만6000원, 컴프레셔 부품 비용 10만원과 기타 비용을 합산하면 약 20만~25만원이라는 총 수리비 계산이 나온다.
미국 기업 월풀 냉장고 컴프레셔 수리 기본 출장비는 2만원이다. 공임비는 약 15만원 선이고 평균 컴프레셔 부품비가 50만~60만원 수준이다.
월풀 국내 AS센터 관계자는 “냉장고 컴프레셔 교체 비용은 모델에 따라 100만 원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 구비돼 있지 않은 부품은 외국 본사에 부품 수급을 요청하고 배송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해외배송에 수반되는 관세 등도 고객이 지불해야 한다.
◇턱없이 부족한 AS센터·수리 인력
수리비용뿐 아니라 외국 가전 기업은 AS센터 수도 국내 기업에 비해 현저히 부족해 빠른 서비스 응대와 일처리가 쉽지 않다. 밀레를 제외하고는 모두 수입업자가 운영하는 AS센터나 국내기업 AS센터에 외주를 줘 고객 서비스에 응대하고 있다.
국내에서 청소기로 유명한 일렉트로룩스는 협약을 맺은 동부대우전자에 청소기 AS를 맡긴다. 동부대우전자는 자사 제품군과 겹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외산기업 애플, 드롱기, 블랙앤데커, 피앤지 등 외산 가전 수리도 담당한다.
일렉트로룩스 청소기 무상 수리 기간은 1년이고 이후에는 부품별로 가격을 청구한다. 모델마다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10만원 수준 수리비용이 발생한다는게 관계자 설명이다.
영국 청소기 기업 다이슨 AS는 동양매직 AS센터에서 담당한다. 중국 가전 기업 하이얼 TV제품 AS는 TG삼보, 냉장고와 세탁기 등은 동양매직 서비스 센터가 대행한다.
이처럼 대다수 외산 가전 기업은 자체 AS센터를 운영하지 않고 국내 중소, 중견 가전기업과 협약을 맺고 AS 외주를 주고 있다. 본사 차원 철저한 고객 관리가 힘든 이유다.
월풀은 2004년 월풀 전제품 국내 독점 대리점 계약을 맺은 일렉트롬이라는 가전 수입 기업에서 운영하는 AS센터에서 정식 수리가 가능하다. 일렉트롬AS센터는 월풀뿐 아니라 다른 수입 가전 기업 AS까지 담당한다. 서울, 용인, 수원, 광주, 부산, 대전, 군산, 제주, 대구 등 센터는 10개 내외뿐이다.
국내에 진출한 외산 가전 기업 중 유일하게 밀레만 외주 AS가 아닌 자체 AS 인력을 두고 있다. 독일 본사의 철저한 고객 응대와 제품 철칙에 따라서다. 밀레코리아 본사에 배치된 7명 전문 인력이 예약제를 기반으로 ‘24시간 내 AS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외산가전이 대부분 AS를 외주를 주고 있고 대부분 중소, 중견 가전 기업 AS망을 이용하기 때문에 수적으로 삼성, LG에 비해 열세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해당 기업 모든 AS지점에서 수리가 가능하지 않다는 맹점도 있다. 고장 난 부품 재고가 있는 지점에서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
◇점차 줄어드는 국내 외산가전 수요로 AS망 투자 ‘현실적 한계’
‘외산 가전 무덤’이라고 불리는 한국 가전시장에서 갈수록 국내 외산가전 수요는 줄고 있는 추세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국내 드럼세탁기 시장에서 외국산이 80%가량을 점했으나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시장에 뛰어든 후 2~3년 만에 국산 제품 비중이 80%로 뒤집혔다. TV, 냉장고도 비슷한 추세로 변했다.
외산가전 기업이 국내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삼성, LG 등 국내 굴지 가전 기업의 기술력, 마케팅, AS 장벽과 소비자 만족도가 높기 때문이다.
이같이 외산 가전 시장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수입가전 기업이 고객 AS망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것은 현실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수리비용이 아무리 비싸도 수입차 구입을 고집하는 고객이 있는 것처럼 외국산 가전도 마찬가지다. 수입차 수리비용을 잡기 위해 정부가 자동차 대체부품 인증제를 도입하는 것은 수입차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라며 “수입 가전에 대한 수요가 오히려 줄어드는 상황에서 고가 수리비용을 잡을 묘안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