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돕는 행위는 타고난 본성에서 나오는 것일까 아니면 후천적 경험에서 비롯된 행위일까. 근세철학의 합리론과 경험론을 떠올리게 하는 인간 행동의 동기에 관한 새로운 뇌과학적 분석이 나왔다.
설선혜 부산대 심리학과 교수와 스위스 취리히대 연구팀으로 구성된 국제공동연구팀은 이타적 행위(돕는 행동)를 뇌 연결성 분석으로 규명했다. 돕는 행동에 관여하는 뇌 영역에서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일정한 패턴을 찾아내 겉보기에는 같은 돕는 행동이라도 그 이면에는 숨은 다른 동기(motives)가 있다는 점을 처음 밝혀냈다. 이 논문이 지난 4일자 ‘사이언스(Science)’에 실렸다.
논문 주제는 ‘뇌의 기능적 연결구조가 인간의 숨은 동기를 밝히다(The brain functional network architecture reveals human motives)’이다. 인간의 ‘돕는 행동’에 숨겨진 동기를 뇌 과학적으로 예측해 낼 수 있음을 밝히 첫 사례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동기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알기 어렵다.
기존에 인간의 사회적 행동에 관한 뇌 과학 연구는 행동과 관련된 뇌 영역이 어느 부위인지 확인하고, 그 영역의 활성화 정도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왔다. 동일한 행동일 때는 관련 뇌 영역의 활동과 활성화 정도도 동일한 경우가 많다. 동일한 행동 뒤에 숨겨진 다른 동기를 확인하기가 어려운 이유다.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행동의 이면에 숨겨진 동기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인간 행동의 동기가 무엇인지를 알아낼 수 있는 직접적 방법이 없었다.
심리학에서 남을 돕는 행동의 동기는 크게 ‘공감(타인의 아픔에 공감해 돕는 것)’과 ‘상호성(타인에게 받았던 도움에 보답하기 위한 것)’을 꼽는다. 하지만 이 또한 드러난 행동만으로 남을 돕는 동기가 둘 중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연구팀은 스위스 성인 여성 34명을 대상으로 과학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돕는 행동의 동기에 따라 이 행동에 관여하는 여러 뇌 영역 간 신호를 주고받는 방식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을 확인했다. 즉 뇌 연결성 패턴을 분석해 숨겨진 동기를 읽어낼 수 있음을 밝혀낸 것이다.
연구진은 34명에게 뇌 활성화를 측정할 수 있는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장치(fMRI)를 달았다. 이어 각각 돕는 행동의 동기 유발 조건(공감과 상호성)을 달리해 fMRI 화면으로 그 차이점을 분석했다.
분석 방법은 서로 다른 뇌 영역 간 커뮤니케이션 분석 통계모형인 DCM(Dynamic Causal Modeling)기법을 이용했다. 이를 통해 동기에 따라 여러 뇌 영역들이 서로 커뮤니케이션하는 패턴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뇌 연결성 패턴을 특정 알고리즘으로 프로그램화했다. 새로운 실험 참가자의 뇌 연결성 패턴 정보를 프로그램에 입력하자 참가자의 이타적 행위의 동기를 상당히 정확하게 예측해낼 수 있었다.
이 실험에서 연구팀은 이타성의 개인 차이에 따라 공감과 상호성으로 인한 돕는 행동에 차이가 난다는 점도 확인했다. 이기적 성향의 사람은 ‘공감’을 높일 수 있는 조건을 주면 돕는 행동이 증가했지만, ‘상호성’에는 상승 효과가 없었다.
반면, 이타적 성향의 사람은 ‘공감’은 물론 ‘상호성’ 동기를 유발에서도 돕는 행동이 더욱 증가했다.
설선혜 교수는 “뇌 연결성 패턴을 통해 사회적 행동의 숨은 동기를 읽어내고 예측할 수 있음을 밝힌 학계 최초의 연구”라며 “인간의 이타적 동기에 대한 신경학적 이해뿐 아니라, ‘우리는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답을 찾는 새로운 틀을 제안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말했다.
부산=임동식기자 dsl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