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정육점 앞, 태연과 아빠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맴돈다. 금방이라도 눈에서 레이저가 발사될 기세다.
“저는 꼭 1++를 먹고 싶다고요. 자르르 흐르는 윤기, 살코기 사이로 수줍게 고개를 내미는 고소한 육즙, 입속에서 솜사탕처럼 한순간 녹아내리는 그 1++ 한우요!”
“1++라고 다 좋은 게 아니라니깐. 우리나라에서 한우 등급은 마블링(marbling) 즉, 근육 속 지방조직에 따라 크게 좌우된단다. 물론 색깔, 조직, 탄력 등도 등급을 매기는 기준이 되지만 결정적 역할을 하는 건 마블링 양이야. 1++ 한우 지방도는 19% 이상이고, 우리나라처럼 마블링을 중요시하는 일본 최고급 와규는 지방도가 무려 22~31%나 되지.”
“그래서요? 지방이 많으면 어때요.”
“그런 얘기가 아니라, 문제는 마블링이 잘 녹지 않고 몸에 축적되는 포화지방산이라는 거야. 포화지방산을 많이 섭취하면 혈액 내 콜레스테롤 농도가 올라가면서 혈관이 좁아지고, 결국 고혈압, 동맥경화증 등 여러 심혈관질환을 유발할 가능성이 커지지.”
“아이고, 몸에 안 좋을 만큼 실컷 먹어나 봤으면 좋겠네요. 어린이날이랑 생일에만 스테이크를 먹는데 그걸로 병에 걸리겠어요?”
“그 말도 일리는 있어. 2013년을 기준으로 한국인 1인당 연간 소고기 소비량은 10.3㎏ 정도거든. 소고기 포화지방산이 몸에 좋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1년에 평균 37.4㎏을 먹는 미국인이나 35.1㎏을 먹는 호주인에 비하면 3분의 1도 안 되는 양을 섭취하는 거라서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고 보기는 어렵지. 하지만 문제는 건강만이 아니야.”
“또 뭐가 문제인데요?”
“마블링이 많은 소를 키워내려면 옥수수 같은 곡물사료를 먹여야 하는데, 우리나라 옥수수 자급률은 1%도 채 안 되기 때문에 국제 곡물가격이 오르내릴 때마다 농가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단다. 또 원래 풀을 먹어야 하는 소가 곡물사료를 주로 먹다보면 위장병과 지방간 등 질병이 잦아지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 다량의 약을 먹여야 한다는 것도 문제지. 그뿐만 아니라 마블링 양을 늘리기 위해 30개월 이상 사육하다 보면 20개월 남짓을 키우는 미국과 호주 소보다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가 된단다.”
“헐, 고소한 마블링에 그렇게 많은 사연이 있는 줄은 정말 몰랐어요!”
“이렇게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마블링을 중심으로 하는 현행 한우 등급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어. 우리처럼 마블링을 중요시하던 일본은 최근 소고기 본연의 맛을 내는 올레인산(불포화지방산 일종) 중심으로 등급제를 바꿔가고 있는데, 이처럼 지방보다는 고유 맛이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 실제로 우리 정부도 단순히 마블링 양보다는 마블링 입자크기와 균일한 정도 등을 더 많이 고려하는 방향으로 등급 기준을 바꾸는 것을 고려하고 있단다.”
“등급 기준이 바뀌면 1++ 한우 맛도 바뀔 수가 있는 거네요?”
“그렇지.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단다. 갑자기 등급 기준을 바꾸면 지난 수십 년 동안 1++ 기준에 맞춰 품종 개량을 해온 한우업계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으니 말이야.”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요. 아빠, 우리는 오늘 정육점에서 어떤 등급 한우를 사야하는 걸까요? 포화지방산은 많지만 그래도 마블링 덕분에 고소함을 만끽할 수 있는 1++ 한우를 사야할까요, 아니면 좀 질기고 맛은 떨어지지만 지방 함량이 적은 2등급이나 3등급을 사야 하는 걸까요?”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요즘 소고기를 ‘숙성’시켜 먹는 게 유행이란다. 숙성을 하면 기름이 적은 부위도 야들야들 맛있어 지거든. 2~3등급으로 1++ 맛을 즐기면서 건강까지 챙기겠다는 거지. 그래서 40~50일 정도 천천히 말리면서 건식숙성(Dry aging)한 소고기를 전문적으로 파는 식당이 인기를 끌고 있고, 집에서 간단히 습식숙성(Wet aging)하는 방법도 입소문을 타고 있지. 방법은 간단해. 마블링이 없는 소고기를 사다 2~3㎝ 두께로 썰어서 공기가 통하지 않게 꽁꽁 싸맨 다음 김치냉장고에 열흘 이상 보관하면 된단다.”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