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세돌 9단과 알파고 간 바둑시합은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남겼다.
과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다. 생생한 현장감으로 이번 사건이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오기는 했지만, 사실 지난 2011년 왓슨이라는 IBM 인공지능 컴퓨터가 이미 제퍼디 퀴즈쇼에서 `인간` 세계 챔피언을 이기며 화제가 됐다.
이후 왓슨은 의사, 약사, 변호사, 회계사, 증권분석가, 기자 등 지식노동자 역할 일부를 대신하며 우리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많은 정보를 보유하고 가공하는 정도로는 컴퓨터를 이길 수 없다. 미래 일자리 핵심은 창조력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을 `메이커의 나라`라고 명명하고, 지난해 6월 메이커운동(Maker Movement)을 일자리 창출 중심에 놓는 주요 정책을 발표했다.
정책 골자는 프로젝트 중심 메이커교육으로 상상력을 창작품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술 역량과 창조성을 아이들에게 길러주자는 것이다.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자신이 꿈꾼 것을 직접 만들어 손에 쥐는 경험을 하고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방법을 배우며 차세대 창업가와 창의적 기업가로 성장할 수 있게 된다. 미국은 메이커운동으로 제조업 부활까지 기대하고 있다.
더불어 미국은 다양한 세부정책을 뒀다. 먼저 초·중·고 학생에게 창작활동이 가능하도록 공간과 도구, 강좌, 멘토링을 제공하고 있다.
이와 함께 연방기관, 회사, 비영리기관, 도시, 학교는 1000개가 넘는 메이커 스페이스를 구축한다. 박물관, 과학관, 도서관 시설을 활용해 메이커들이 서로 만나 창작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연방기관 산하 20만명 과학자, 기술자들에게 다음 세대 학생에게 영감을 불어넣기 위해 과학, 기술, 공학, 수학을 뜻하는 스템(STEM) 교육과 메이킹 관련 활동에 총 100만 시간을 자발적으로 할애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창조경제 역시 메이커운동과 뗄 수 없는 관계다. 창의적 생각에 메이킹이라는 행위가 더해져야 창조로 완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전국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창업을 전폭 지원하고 있고 성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미래에도 지속적으로 창조엔진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자라나는 세대에 메이커교육 투자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이제 단순 지식습득형 교육으로는 미래 일자리 보장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명확하다.
학생들에게 창조적 역량을 키워주는 메이커교육을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자유학기제를 이용하는 것이다.
자유학기제란 중학교 초반 3학기 중 한 학기를 택해 오후 정규수업 대신 진로탐색, 주제선택 활동, 예술·체육활동, 동아리 활동을 수행함으로써 꿈을 키우고 끼를 찾아나가는 학교 활동을 말한다.
만일 전국 3200개 모든 중학교에서 자유학기제로 메이커교육을 효과적으로 실시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학생이 아두이노와 같은 소형컴퓨터로 물체를 움직이고, 3D 프린터로 상상한 작품을 출력에 익숙해진다고 가정해보자. 10년 후 이들은 훌륭한 기술자, 과학자, 기업가로 사회에 발을 내딛고 우리나라 창조경제를 견인해 나갈 것이다.
대전에는 모두 88개 중학교가 있다. 이번 학기에 자유학기제를 시행하는 2개 중학교에서 스크래치, 앱인벤터, 아두이노 교육을 시작했다. 몇몇 학교에서는 3D 프린터, 기업가정신 등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학교가 자유학기제를 시행하는 다음 학기에도 메이커교육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많은 강사와 예산, 장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원도 미국처럼 미래 세대를 위해 재능 일부를 기부해야 하며 연구기관은 이를 정책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메이커교육으로 학생 모두가 꿈과 끼를 발현하고 컴퓨터나 기계에 지지 않는 창조력을 갖춘 인재로 성장하길 바란다.
함진호 ETRI 서비스표준연구실 책임연구원 jhhahm@etri.re.kr